[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우리의 민주주의는 노인들을 얼마나 존중해왔나
젠더 갈등·반중 정서·민주당 반감 등 청년보수 대거 거리로
탄핵반대 집회 현장 나가보니 노인과 청년들 서로 함박웃음
새삼 각성… 거리의 노인들은 '의식 뒤떨어진 사람들'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많은 이가 윤석열 대통령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탄핵안이 가결되고 난 뒤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었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계속 상승해 오히려 최고점을 향해 달려갔다. 거리에서도 무언가 다른 에너지가 나타나고 있었다. 탄핵 반대 집회는 모일 때마다 무서운 기세로 불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서부지법에서는 경찰 병력마저 뚫고 폭력 사태를 벌이기까지 했다. 검거된 구성원 절반이 2030 남성이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탄핵 반대 집회 시위대의 연령층은 노년층이 대다수였던 과거와 달리 갈수록 젊어지고 있었다. 무엇이 이 보수 청년들을 정치적으로 급진화시킨 것인가. 나 역시 이 의문에 나름의 해답을 찾고자 한남동 관저 앞과 1월 18일의 서부지법 집회를 찾았다.
이들은 왜 집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일까? 민주당에 대한 반감, 젠더 갈등 등 다양한 원인이 지목되었지만 나는 한 가지 다른 핵심적인 이유로 중국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공산당 OUT’ 같은 피켓을 집회 현장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청년 세대는 중국의 팽창이 한국에 커다란 수혜가 되던 시기가 아니라, 중국과 한국이 제로섬 경쟁을 시작하고 세계적 지정학적 갈등이 본격화될 무렵에 성장기를 보냈다. 그 결과, 보수 청년들은 중국의 위협에 맞서 한국이 내적으로 단결하고 외적으로 기존 우방국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품었다. 하지만 여전히 탄핵소추안의 ‘가치 외교’ 논란 등 민주당의 안보관은 의심스러웠다. 반대로 12월 12일의 대통령 담화문에서 중국이 명시된 것은 자신들의 위기감에 대통령이 공감을 표해준 것으로 다가왔다.
이것만으로 집회 현장에서 보수 청년의 급진화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감정을 뒤흔드는 추가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나는 집회 현장의 길가에서 노인들과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숱하게 보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집단 사이에 소통은 거의 없던 걸 생각하면 이는 정말로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리고 보수 청년들은 냉전의 절정에 청년기를 보내며 생존을 위한 단결의 가치를 체화한 노인들과 빠르게 정서적 공감대를 쌓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약자로서 노인들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대다수 노인은 그리 부유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회의 소외 계층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소위 ‘태극기 시위대’라 불리던 광장의 노인들은 좌우 양당의 주류 정치에서는 모두 조명되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8년의 기다림 끝에 세대를 건너뛰어 2030세대의 합류를 마주했을 때 전에 없던 환희를 느꼈다.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인간으로서 노인들과 대화한 청년들은 과거 노인층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다. 요컨대 이것은 한국인의 유교적 무의식을 자극하는 일종의 영적 체험이었다.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은 노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관에서부터 부정선거 의혹에 이르기까지, 노년층이 주류 정치와 무관하게 발전시켜온 서사와 세계관을 그대로 흡수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반대 진영에서 ‘극우화’라 부르는 변화가 일어난 메커니즘이었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은 아마 이것을 ‘충효화’라고 부르고 싶어 할 것이다.
이 현상을 실제 무엇이라 명명하든 간에,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가 외면하던 노인들이 정치적 격변의 중심에 섰고, 청년층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음은 명확하다. 나 또한 이들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외면하고 살아왔음에 반성한다. 우리 사회는 386세대를, X세대를, MZ세대를 이야기하며 늘 미래만을 얘기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폐허에서 일으켜 세운 노인들은 한쪽 진영에서는 ‘무엇을 해도 표를 던져주는 텃밭’으로, 다른 진영에서는 ‘의식이 뒤떨어진 이들’로 간주하며 그 업적에 걸맞은 예우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광장과 거리에서, 휴대전화의 화면에서 계속 하나의 의문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노인들을 얼마나 존중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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