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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일보 [2025 신춘문예 소설] 경고문 쓰는 여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1. 2. 17:04

[2025 신춘문예] 경고문 쓰는 여자

조선일보 단편소설 당선작

차영은

입력 2025.01.01. 00:40업데이트 2025.01.02. 16:27
 
 
 
 

독서할 때 물이나 커피가 필요하다는 건 이해하지만, 공공 자산을 망가뜨리는 시민에게는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혈세로 복원하는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현장 적발이 최선이다.

사람들은 책에 물과 커피와 스무디까지 쏟아놓고 살며시 도망간다. 뒤늦게 연락하면 민원으로 역공을 받는다. 생사람 잡는다고. CCTV를 돌려보고 신원을 파악하는 건 인권 침해라고.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 중이라며 치료비를 요구하기도 했다.

나는 사서지 경찰이 아니다.

새로 쓴 경고문이다.

경고문

2024년 3월 2일. 전시된 레코드판에 물을 쏟은 43세 A씨는 150만 원을 물어주었습니다.(희귀본 레코드판 3개, LP 플레이어 수리비, 진열장 원목 판 교체 등)

2024년 3월 14일. 책누리마루에 앉아 책을 읽던 23세 B씨는 커피를 쏟아 옆자리 이용자에게 1도 화상을 입혔고, 옷을 더럽혀서 20만 원을 물어주었습니다.

테이크아웃 잔 금지

뚜껑 없는 텀블러도 금지

게시일 2024년 3월 20일~

책누리마루도서관장(직인생략)

A씨와 B씨의 일은 당연히 실화다. 경고문을 붙인 뒤로 현재까지 유사 사례는 없었다.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경고문을 읽게 하라.

나는 도서관 대출대에 앉아 가시권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오백 밀리 생수 페트병을 들고 오는 사람들은 비교적 안전하다. 그들은 생수를 책상 위에 올려둘 때 뚜껑을 닫는 편이다.

텀블러가 요주의 대상이다. 텀블러 위는 캔 음료 뚜껑처럼 입을 댈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고 뚜껑이 있다. 뚜껑을 여는 건 괜찮지만 뚜껑을 돌려서 컵처럼 마시는 건 안 된다. 습관적으로 뚜껑을 돌려서 컵처럼 마시다가 내용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가 텀블러 뚜껑을 딸깍 연다. 고개를 꺾는다. 마신다. 뚜껑을 다시 딸깍, 닫아야지?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외치는 와중에 여자가 뚜껑을 돌린다. 내가 뛰쳐나간다. 경고문이 붙은 기둥을 가리켰다.

왜 웃으세요?

여자가 물었다.

제가요?

네, 너무 반가워하셔서.

경고문 한번 읽어보세요.

나는 웃음기를 거두고 대출대로 돌아왔다.

여자는 눈치가 빨랐다.

나는 금지할 때 가장 자유롭다.

내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매번 부딪혀 실금이 생겨나고 있다.

지혈이 필요하다.

경고문을 열여섯 장 인쇄해서 4층짜리 도서관 각 층에 네 장씩 붙였다. 여전히 허전했다. 한 장을 더 인쇄해 가위로 반을 잘랐다.

3층의 음향감상실로 갔다. 43세 A씨가 물을 쏟은 자리에 A씨의 사례를 붙였다. 경고문에 ‘이곳에서’라는 문구를 빨간 글씨로 써넣었다.

다음은 1층에서 2층까지 이어지는 책누리마루다. 계단을 개조한 독서 공간이다. 무해해 보이는 이름과 달리 한 달에 두세 건씩 음료 사고가 났던, 사고 다발 지역이다. 23세 B씨가 커피를 쏟은 자리에도 나머지 반쪽 경고문을 붙였다. ‘이 자리에서’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이제 조금 안심이 된다.

경고문은 나의 반창고다.

도서관은 지어진 지 이제 일 년이 되었다. 도서관은 천 세대 규모의 신축 아파트단지 입구에 있다. 도서관은 책처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맨 위층의 오른쪽 모서리는 책 페이지를 접은 듯 꼭짓점이 사선으로 잘려 나간 형태의 4층 건물이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교보문고 입구처럼 계단을 독서 공간으로 만든 책누리마루가 먼저 보인다. 1층에는 어린이도서방과 영어누리방, 수유실이 있다. 2층에는 청소년 도서를 볼 수 있는 꿈누리터, 노트북 책상 30석, 인문사회과학 도서와 대출대, 3층에는 정기간행물 열람실과 음향감상실, 문학 도서, 그리고 책장 사이 빈 공간마다 일인용 소파가 놓여 있다. 4층은 강의실인 배움누리터, 사무실, 옥상 공원인 하늘바람누리정원이 있다. 밖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접힌 책 모서리처럼 보이는 그곳이다. 답답할 때 바람 쐬라고 만들어놓은 곳인데 거기 애들이 모여 있다는 신고가 가끔 들어왔다.

공용 공간이니 타인에게 피해가 갈 행동은 삼가 주세요.

이 정도의 문구로만 조치했다. 이용객의 불편 신고가 있던 것도 아니고 ‘모여 있지 마세요’라고 쓸 순 없었다. 최근에는 한 중학생이 거기서 폭죽을 터트렸다. 왜 터트렸냐고 물으니 학생은 답했다. 답답해서요. 학생은 혼자였다. 불꽃을 혼자 터트리는 게 재미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불꽃마저도 추진력 없이 픽, 힘없이 사그라들어서 소리가 크지 않았다. 나는 불꽃이 전깃줄에라도 닿았으면 큰일 날 뻔했으니, 다시는 터트리지 말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여기 불꽃놀이 가능’이라는 광고를 하는 게 될까 봐 경고문 부착은 보류했다.

도서관은 가운데가 뚫려 있고, 계단이 지그재그로 관통한다. 내가 일하는 곳은 2층 대출대로, 도서 대출 등 각종 업무가 들어오는 허브 역할을 한다. 학습이 아닌 독서 친화 도서관이라, 휴대전화나 노트북의 스피커 사용은 금지하지만 마우스 클릭 소리나 책장 넘기는 소리, 소곤거리는 소리는 허용한다. 그렇지만 금지할 소음은 기어코 생겨났다.

경고문

2024년 5월 ×일 오후. 1층 책누리마루와 어린이도서방 사이의 대출자가반납기 옆 공간에서, S중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학원 등원 전 닭가슴살 샐러드와 귀리 주먹밥을 먹었는지, 주말 미적분심화반 입반 테스트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전화상으로 오 분 간 물었던 이용객이 있었습니다. 통화 내용은 3층 독서 공간에서도 또렷하게 들리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도서관 가운데가 뚫린 구조라 말소리가 크게 울리오니, 일상적 대화나 전화는 도서관 바깥에서 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게시일 2024년 5월 16일~

책누리마루도서관장(직인생략)

일러스트=유현호

도서관장이 취임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대출대로 찾아왔다.

도서관이 서낭당 같네. 뭐가 주렁주렁.

안녕하십니까.

경고문을 자네가 썼다고? 자잘한 건 좀 떼어버려.

이용객들이 경고문을 숙지하게 하려면, 이 정도는 붙여야 합니다. 아니면 도서관 인력을 늘려주셔도 되고요.

효과 있나?

그럼요. 음료 사고 경고문은 특히 반응이 좋아요. 반응이 좋다는 건, 사고가 없었다는 얘깁니다. 경고문 날짜가 옛날일수록 효과가 좋다는 뜻이죠. 경고문은 개정판을 안 내야 좋은 거니까요.

말은 잘하네. 한 층에 세 장은 넘지 않도록 하게.

관장이 경고문을 세어보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대로 놔두었다.

정기간행물 열람실은 성인들이 주로 드나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신문 도난이었다. 신문이 없으면 바로 민원이 들어오니까. 그런데 거기서 캔맥주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왠지 모를 굴욕감을 느끼며 잡지를 보고 있는 중년 남성 이용객에게 가서 말했다.

약주를 드시면 어떡합니까?

이거 무알콜이에요.

‘제로 0.0%’ 문구가 보였다.

사람들 보기에 좀 그렇잖아요.

창밖에 보이는 밤거리가 좋아서 기분 좀 내려고.

무알콜 음료도 안 돼요, 생수나 뚜껑 있는 텀블러만 가능합니다.

나도 경고문 봤어요. 음료 안 된다는 말은 없던데?

선생님, 음료 종류가 많은데 그걸 어떻게 다 씁니까.

경고의 첫 번째 목적은 재발 방지요, 두 번째는 면피다. 어쩌면 순서를 바꿔도 무방하나, 두 목적은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용객도 경고문을 면피의 근거로 이용할 줄은 몰랐다. 나는 음료 사고 경고문의 개정판을 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LP판이 그렇게 비싼가?

요즘 들어 관장이 대출대로 자주 왔다. 경고문을 떼지 않은 것은 역시나 모르는 눈치였다. 관장이 취임 한 달을 훌쩍 지나서야 음료 사고 경고문을 읽은 모양이었다.

자네 경고문 보고 내가 죄지은 것마냥 뜨끔하더라. 현상수배 전단인 줄 알았네.

나는 칭찬인지 비판인지 알 수 없어 경청하고 있다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우리 도서관에 경고문이 선술집 차림표처럼 많이 붙어 있는데 정작 없는 곳이 하나 있네.

문제가 없는 곳 아닐까요?

영어방.

영어누리방은 관심 밖이었다. 일층 안쪽에 있어 가시권에서 벗어난 데다, 아이들은 주로 보호자와 함께 영어 동화책을 읽으러 오니까 신경을 덜 썼다.

영어누리방에 가 보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엎드려서 책을 읽었다. 페이지당 두세 문장에 불과하지만 모두 영어다. 나보다 집중력이 좋았다.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아이는 턱을 치켜든 채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서 낭독했다. 발음이 좋았다.

아이들은 페트병에 담긴 물감색 음료나, 빨대 컵에 든 물을 마셨다. 어른이 문제였다. 어른 열에 셋은 텀블러 뚜껑을 열어 두었다.

영어누리방을 나오니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영어방 앞 벤치에 앉은 어른들도 어쩐 일인지 숨을 몰아 내쉬었다. 흡연실에 온 줄 알았다. 공기청정기가 옆에 있었다면 한숨 속 이산화탄소 농도 탓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팬이 쌩쌩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대출대로 돌아가서 문구를 작성했다.

No Lid, No Read.

뚜껑 없이는 읽지도 마라.

관장이 다시 왔다.

영어방이 살벌한 걸 모르네? 뚜껑이 문제가 아니라고.

관장은 며칠 전 영어누리방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학부모들끼리요?

애들끼리. 우리 도서관 영폭 1호 사건인데. 경찰서 갈 수도 없고.

애들 치고받는 걸 저희가 어떻게. 어린이집도 아니고요.

형님이 대학생 때 데모하다가 수배자가 됐어. 우리 집안이 좀 리버럴하거든. 집에 가는 길 전봇대에서 형님 얼굴이 붙은 수배 전단을 보고 가슴이 어찌나 떨리던지. 전단 떼서 주머니에 넣고 달리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형님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도망자가 된 기분이 들어서. 나도 괜히 모자에 마스크 쓰고 숨어 다녔다고. 서고에 처박아두고 잊었던 기억을 자네 경고문이 끄집어냈네. 저번처럼 서늘하게, 다시 한번 써 보겠나?

경고문

2024년 6월 1일. 영어누리방 의자 세 칸을 차지하고 엎드려 책을 읽던 6세 A군은 나머지 의자 한 칸에 앉은 7세 B양의 어깨를 밀쳐 B양이 의자에서 넘어졌습니다. B양은 A군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려 A군은 두통을 호소했습니다. 두 이용자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고 통원 치료 중입니다.

영어누리방 이용자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드립니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입니다.

게시일 2024년 6월 5일~

책누리마루도서관장(직인생략)

그때 웃으셨던 분 맞죠?

영어방에 새 경고문을 붙이고 나서 어떤 여자가 대출대로 찾아왔다. 여자의 말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경고 좋아하시는 분 맞는 것 같은데.

여자가 텀블러 뚜껑을 여는 시늉을 하더니 경고문이 붙어 있는 기둥을 가리켰다. 여자는 영어방 경고문을 쓴 사람을 찾아왔다고 했다. 영어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이라며.

영어누리방, 와 보긴 하셨어요?

그럼요. 사건 이후로 매일 갑니다.

우리 이준이는 비영유예요.

서가에 비영유라는 색인이 있었나, 잠시 고민했다.

여자의 아들은 집에서 영어교육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한다고 했다. 영어방 이용자들을 생태계 피라미드로 표현하면, 꼭대기 포식자 자리에는 영미권에 살다 온 아이들, 그 아래는 영어유치원 출신, 바닥에서 플랑크톤 역할을 하는 건 비영유 출신이라고 했다.

이준이는 소곤소곤 읽는데, 옆에 누나가 엄청 크게 읽어서 집중이 안 됐대요. 그 누나는 발음이 좋아서, 그게 듣기 싫었다고.

양 갈래 어린이의 발음이 떠올랐다. B양은 일곱 살이고 양 갈래 어린이는 서너 살 정도로 이준이보다도 어렸던 것 같았다.

경고문으로 겁주시는 거 별거 아니잖아요. 책누리마루에서 화상 입은 사람이 우리 애 아빠예요. 가해자가 들어놓은 자동차보험에 일상배상책임 특약이 있었대요. 가해자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이런 것도 보험 처리가 되네요, 하하.’ 사과 한마디도 없이.

23세 B씨가 사과하지 않았다는 말에 무력감을 느꼈다. 경고문 원작자인 나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경고문 마지막 문장만 좀 지워주세요.

뭐였죠? 직인 생략?

여자는 마지막 문장을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말하는 동안 경고문 파일에서 마지막 문장을 찾았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입니다.’ 뭐가 잘못됐나요?

우리 애가 그 아이를 밀친 건 영어 때문이었어요. 영어에 돈 쏟아붓는 사람들 잘못이지,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나는 마지막 문장 위에 이면지를 오려서 반창고처럼 붙였다. 그러고는 대출대로 가서 경고문 파일에서 마지막 문장을 지우고 새로 인쇄해 왔다. 기존의 경고문을 떼고, 수정판을 새로 붙였다. 새 경고문이 더 간명했다. 슴슴하긴 했지만.

관장은 영어방 경고문이 밋밋하다고 말했다. 미취학 아동들 사이의 일을 범죄 보고서처럼 쓸 순 없었다. 처벌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준이와 B양의 부모는 상대방 치료비를 어린이보험으로 처리했다고 들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최대한 드라이하게 썼는데요. 내가 말했다.

싸움이 안 나도록 써야지. 왜 싸웠는지가 경고문에 없어.

관장님, 애들 싸움 막으려면 영어방 문 닫는 수밖에 없어요.

애들이 영어로 싸우나?

그건 저도 모르죠.

영어 때문에 싸우나?

그런 면은 있죠.

영어방이 우리 메인도 아닌데……. 관장은 말을 마치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겼다. 관장의 표정이 하드커버 책 표지처럼 딱딱해졌다.

자네 말야. 경고문에 ‘직인 생략’이라 쓰기 전에 나한테 미리 보여준 적이 없더라.

당연했다. 경고문 한두 장까지 관장의 결재를 받다 보면 경고문 부착 시점도 늦어지고 문구도 모호해져서 효과가 반감될 게 뻔했다. 무엇보다 전에 있던 관장이나 현 관장이나 경고문은 제대로 읽지 않았고 관심도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관행인 줄 알고, 죄송합니다.

권한 남용이지만 내가 묵인했으니 괜찮네. 난 좀 리버럴해서.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혁신 도서관 사례 공모한다는데, 출품 준비 좀 해보게.

입사 일 년도 되지 않은 내게 맡기는 건 이례적이었다.

아이디어 있나?

관장이 재차 물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은 책과 같다고 하잖아요.

사람 불러서 강연 듣는 그거 뭐더라, 사람책? 한물간 걸 한다고?

제 컨셉은 상황책입니다. 우리 도서관이 통째로 책이 되는 거죠.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기만 해도 생활의 지혜를 얻는 거예요.

먼저 도서관 경고문의 종류를 늘리기로 했다.

신문을 가져가시면 다른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습니다. 절대 가져가지 마세요. CCTV 감시중

신문 열람대 옆 경고문이다. 그 옆에는 안내문을 하나 더 붙였다. ‘이 경고문과 어울리는 책을 추천해 주세요. 선정되신 분께는 커피 쿠폰을 드립니다.’

추천 목록에는『임꺽정』『레미제라블』『1984』가 많았다.

음료 사고 경고문에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바다의 뚜껑』『물이 몰려온다』가 추천되었다.

영어방 경고문 추천 도서 가운데 높은 호응을 얻은 책은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쓴 고풍스러운 펜글씨체였다. ‘뿌이뿌이뿌이’ ‘찢었다’ ‘맞말’ 등 호응이 가장 많이 쓰여 있었다. 출판 이십여 년이 지난 그 책은 서고에 없었다. 절판된 지도 오래였다.

 

이용자 추천 도서들의 절반 이상은 서울대 권장 도서, 고교생이 읽어야 할 도서, 사서 추천 도서와 겹쳤다. 영절하,를 제외하고.

(경) 혁신 아이디어 도서관 우수상 수상 (축)

책누리마루도서관장

도서관 정문에 걸린 현수막이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하는 족족 다 잘된 건 처음이었다.

수상 소감문 하나 써오게.

관장의 메시지였다.

이제는 경고문이 아닌 글을 쓰는 게 어색할 지경이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글을 써서 보냈다. 관장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잊지 않았으며, 마지막 문단을 이렇게 끝맺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역사학자 E. H. 카는 명저『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와 미래의 대화는 어디서 이뤄질까요?

책누리마루도서관의 경고문이 대화의 장입니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구청 소식지에는 내가 쓴 소감문이 게재되어 있었다. 문장에서 주어는 관장 자신으로, 수상의 영광을 돌리는 대상이 직원들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나는 관장을 도운 ‘직원들’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게 끝이었다. 관장은 언제 서재를 배경으로 프로필 사진까지 찍은 모양이었다. 내가 쓰지 않은 부분은 딱 한 군데였다.

책누리마루도서관장 (직인생략)

그 문구를 보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화룡점정. 소감문의 미학을 관장이 완성했다. 마지막 문구로 인해 글은 완전해졌다.

조지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 쓰는 동기로 네 가지를 꼽았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정치적 목적, 역사적 충동. 관장은 소감문을 최소한으로 교정함으로써, 최소 두 가지는 증명했다. 순전한 이기심과 미학적 열정.

나는 관장실로 찾아갔다.

소감문이 그렇게 나갈 줄은 몰랐어요. 내가 말했다.

순진한 거야, 순진한 척하는 거야?

관장은 내가 철모르고 날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도서관 수상소감이 신입 사원 이름으로 나간 거 본 적 있나?

제가 썼잖아요.

자네는 자네가 가진 것보다, 자네를 더 크게 생각하는구만. 젊은 친구가 왜 그리 때가 탔어?

관장이 나를 향해 손소독제 스프레이를 두 번 뿌렸다. 공기 중에 퍼진 알코올이 콧속으로 들어오자 나는 손바람을 일으켰다.

우수상도 제가 쓴 보고서로 탄 거고요.

뭔가 이상하지 않았나?

저도 제가 이렇게 잘 쓸 줄은 몰랐어요.

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나, 의문스럽지 않았냐고.

제 실력을 믿고 맡겼다고 생각했죠.

자네는 아무 권한이 없어.

제가 잘하니까, 묵인하신 거 아닌가요?

묵인도 내 권한이야.

관장은 그 말을 하고는 껄껄 웃었다.

경고문에 있어선 필경사가 아니라 작가에 가깝지 않았습니까?

내가 나대는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봐. 그런 사람이 리버럴리스트를 욕먹이거든. 고생했네.

관장이 나가보라는 듯 턱짓했다.

나는 관장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2층의 책 소독기 쪽으로 갔다. 나도 때가 탔으니 소독해야 할까. 2층에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종종 책을 소독한다. 책이 자외선을 쬐며 책장을 파르르 떠는 걸 멍하니 바라보면 머리가 비워진다.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책 소독기 앞에 나란히 서서 책장들이 바람에 파닥파닥 떨리며 소독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이지?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물었다.

나비는 무슨 얼어 죽을,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가 아니라 낯선 여자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비까지는 아니고…… 나방!

나는 웃었다. 아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이 엄마도 돌아보았다. 이준이 엄마였다.

네가 이준이구나.

내가 말했다.

이준이 엄마가 내게 목례했다.

누구셔?

이준 군이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서 근무하시는 책 선생님이야. 인사 드려.

그제야 이준 군은 뭔가 의심이 풀린 듯 꾸벅 인사했다.

이준 군이 참 똑똑한 것 같아요. 어른은 아이의 거울 맞는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그녀는 이준 군이 그랬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고, 네에, 하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떴다.

책 소독기에 반납된 책 몇 권을 넣고 소독했다. 소요 시간은 일 분. 세탁기나 전자레인지처럼 내용물을 꺼내 가라고 요란한 알림음을 내는 대신, 책 소독기는 조용히 작동을 멈췄다. 나는 일 분 소독을 세 번 반복했다. 책을 꺼내서 책 수레 위에 다시 얹었다. 어쩌면 나도 관장에게는 책 한 권에 불과했을지도 몰랐다. 필요하면 대출하고, 다시 반납하는. 그러다가 언젠가는 아무도 찾지 않는 책이 되어 서고에 처박히고, 결국 폐기될 것인가.

그런데 그 책이 대출되고 싶지 않다면?

“이 사람에게는 빌려지지 않겠습니다.”

책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나?

선생님, 경고문 좀 고쳐주세요.

이준맘이었다. 나는 이준맘을 점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로 인해 나는 최초로 경고문을 정정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꽤 열린 사람으로서 기꺼이 정정을 받아들였지만. 무슨 일이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이준이가 위협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 애가 요새 폼이 올라왔거든요. 영어책 한 권을 소리 내서 읽고 있으니까 누나 형들이 막 밀어내고 책을 빼앗고.

많이 다쳤나요?

조금요. 지난번에 지웠던 ‘어른은 아이의 거울입니다’ 그걸 다시 살려주세요. 아무리 애들이지만 동생을 끌어주지 못하고 질투나 하고, 부모들이 못 가르친 탓이에요.

이준맘의 입장이 바뀌어서 의아했지만 어찌됐건 경고문 원상복구야 어렵지 않은 데다, 원작자의 권위까지 세워주는 제안이니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경고문을 바꾸고 나서 며칠 뒤 관장실로 불려갔다.

내가 잘못 생각했네. 이 도서관의 메인은 영어방인 것 같아.

영어방 이용자 증가율이 도서관에서 가장 높다고 했다.

자네는 여기서 뭘 하려고 하나?

사서로 일하러 왔죠.

거짓말. 어쨌든 청원 경찰이나 유치원 선생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지금은 날 따라오는 게 좋아.

나름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만.

일러스트=유현호

대학 선배 중에 같이 데모했던 형이 국회도서관장이야. 책도 안 읽는 양반인데. 그 형이 출마하면, 내가 거기로 갈지도 몰라.

정치하시려고요?

국회도서관장이 무슨 힘이 있나. 정치는 아무나 하나.

국회도서관장은 원내 제2당의 추천으로 임명된다. 도서관 경고문은 이용객들이 도서관 생활 양식을 개선하도록 돕고, 그들의 목소리도 반영한다. 그것이 도서관의 정치라면 어느 정도 성공이었다. 그런데 관장의 정치적 목적이 도서관 밖을 향할 줄은 몰랐다.

관장의 얘기를 곱씹을수록 입맛이 떨어졌고 술이 당겼다.

관장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관장은 글을 거의 쓰지 않고도 조지 오웰이 말한 글 쓰는 동기 네 가지 가운데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에 이어 역사적 충동은 거의 이뤘다고 볼 수 있었다. 도서관의 일상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경고문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도서관 이용객에게는 살아있는 역사요, 미래의 이용객들에게도 역사적 사료가 될 테니까.

이제는 관장에게 정치적 목적이 남았다.

퇴근 후 도서관 근처 아파트단지 상가로 갔다. 치킨집에 혼자 가서 뼈 없는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와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밤거리가 좋죠?

옆 테이블에 홀로 앉은 남자가 맥주잔을 들이켜며 말했다. 간행물실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던 남자였다. 남자의 테이블 위에는 소주 두 병이 놓여 있었다. 빨간 뚜껑과 녹색 뚜껑.

휘발유, 경유 뭘 넣어드릴까?

남자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싱거울 텐데.

정말 괜찮습니다.

하긴, 기름이 뭐가 중요해. 결국 전기차 시대가 왔잖아요? 그럼 짠이라도 합시다.

내 생맥주 500cc 잔과 남자의 소맥 잔이 살짝 닿았다.

접속!

남자의 외침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리는 새 시대로 들어섰다 이거지. 일론 머스크가 사람 두뇌에 칩을 심은 세상이야. 자식 같아서 한마디 하자면, 도서관은 젊은이가 갇혀 있을 곳이 아녜요. AI 시대에 책은 곧 멸종한다고.

선생님은 왜 도서관에 오세요?

책 말고 가끔 신문 보러. 신문을 왜 돈 주고 봐요? 신문 있는 방이 뷰가 좋거든. 아무튼 내가 말했어. AI 쪽으로 나가보라고.

남자가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고는 뚜껑을 열어 보였다.

이 안에 뭐 있게?

텀블러 안에서 소맥 냄새가 훅 끼쳤다.

선생님, 저도 주유 좀 부탁드립니다. 휘발유 가득.

본인은 책누리마루도서관의 사서로서 독서율 제고와 도서 문화 진흥에 미력하게나마 힘썼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제 노력이 도서관 이용객이 아닌 관장의 영달을 위해 새어나가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정치는 꿈도 꾸지 마십시오.

도서관을 정치의 발판으로 삼지도 마십시오.

관장은 제가 올리는 모든 글을 결재했습니다. 겉표지는 일반 서류로, 내용은 관장의 탄핵소추안으로 문서를 만들어 결재를 올리려다가 참았습니다.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제 말이 틀렸다면 벽돌책으로 제 머리를 깨십시오.

내가 관장에게 보낸 메시지를 아침에야 발견했다. 관장은 답장하지 않았다. 내 메시지는 대체로 맞는 말이었지만 너무 비장했다.

출근해 보니 도서관에 있는 모든 경고문이 제거되어 있었다. 대출대로 갔다. 경고문을 누가 떼어냈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한 동료는 떼어낸 경고문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때마침 관장이 왔다.

깔끔하고 좋지?

리버럴과 무질서는 다를 텐데요?

이게 내 질서야. 따라오게.

나는 관장이 내 머리를 깨부수면 기꺼이 맞을 각오를 했다. 녹음기를 켰다. 관장실로 들어갔다. 관장이 처음으로 내게 비타민 음료 한 병을 내밀었다.

자네 경고문 읽고 초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네.

내 문자메시지 이야기였다. 나는 일단 모르는 척했다.

경고문은 왜 떼셨나요?

없어도 잘 돌아가니까.

우수상 현수막은 안 떼셨던데.

지방선거부터 시작하려 하네. 구청장부터.

예?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자네 문자 받고 나서. 관심 있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이어졌다. 관장은 손가락을 튕겨서 딱, 소리를 냈다.

대출대로 돌아가서 경고문을 다시 인쇄했다. 혼자서 경고문을 다 붙였다. 오후에는 다 떼어져 있었다. 며칠 동안 그것을 반복했다. 관장은 경고문 하나하나 다 결재를 올리라고 했다.

자네가 쓴 경고문 읽어보고 괜찮으면 직인을 찍어 주겠네.

관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진작 이렇게 할걸.

나는 관장의 붓 기능을 머지않아 멈추려 했다. 그런데 관장은 그 붓을 이미 꺾은 지 오래였다. 나만 뒤늦게 알아챘다.

나는 퇴사했다.

도서관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끼이익, 팍,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 옥상 쪽을 돌아보았다. 불꽃이 수직으로 솟아오르더니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가다 공중에서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하늘바람누리정원에 누군가 서 있었다. S중학교 학생처럼 보였다. 이번엔 네가 해냈구나. 축하한다. 행인들이 도서관 옥상 쪽을 바라보았다. 학생이 폭죽 두 발을 터트렸다. 불꽃이 사라질 때까지 까만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한 번은 봐줘도 두 번은 안 된다.

몇 분만 늦게 퇴사했다면 새 경고문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집 근처 도서관에 갔다. 입구에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 발맞춰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자아실현의 장이 되겠습니다’라는 포부가 걸려 있었다. 1층 어린이실, 2층 간행물실과 컴퓨터실, 3층 학습실, 4층은 문헌정보실이다. 4층으로 갔다.

책을 훼손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의 자산입니다.

경고 대상이 전 인류인가. 너무 광범위했다. 게다가 인간의 양심―개인마다 기준이 다르며, 아예 없는 사람도 있다―에 호소했다. 이런 경고문은 직무유기이자 배임 아닌가.

문헌정보실 입구에는 테이크아웃 음료 반입을 금지한다는 문구와 함께 음료 거치대가 있었다. 얼음이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크림 덩어리가 떠 있는 프라푸치노가 방치되어 있어서 컵 분리수거 장소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나는 신간 코너에서 얇은 에세이 한 권을 꺼내 들고 책상으로 갔다. 대각선 건너에는 이용객이 테이크아웃 잔 형태의 컵형 텀블러에 담긴 음료를 스테인리스 빨대로 마시고 있었다. 빨대가 답답했는지 뚜껑을 열고 마셨고, 결국 음료가 책상 위로 쏟아졌다. 아이스티였다. 이용객은 젖은 티셔츠를 가린 채 뛰쳐나갔다. 책상 위의 아이스티 물줄기는 어느새 에세이 책등 아랫부분을 적셨다.

책을 들고 대출대로 갔다.

텀블러 뚜껑 열고 드신 분이 음료를 흘렸어요. 이 책 빌릴 이용객은 무슨 죄인가요?

내 말에 사서는 건조하게 감사하다고 답했다.

뚜껑 없는 텀블러, 컵 전부 금지하세요. 경고문도 바꾸시고요.

다음 날에도 문헌정보실 경고문은 그대로였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간 음료 사고 경고문을 붙였다. 자기 표절을 했다. 사고 날짜와 내용만 내 사례로 바꿨고 얼룩진 에세이 책장 사진을 첨부했다.

일주일 뒤 문헌정보실을 다시 찾았다. 내 경고문은 없었다.

왜 경고문을 떼셨죠?

대출대 앞에 앉은 사서에게 물었다.

사서는 잠시만요, 라고 하더니 다른 직원을 데려왔다.

저희 팀장님이세요.

사서가 말했다.

경고문 잘 봤습니다.

팀장이 말했다.

경고문이 없네요?

그렇죠. 저희한테 나간 게 아니라 불법 부착물이어서.

공공시설 이용객이 시설 발전을 위해 대안을 제시한 건데, 그게 불법이라고요?

저희 기관에서 만든 양식이 아니고 결재가 난 것도 아니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고, 제 표현이 좀 서툴렀죠? 사실 선생님 뵙고 싶었습니다.

저도요. 사서가 말했다.

파손 책 전시회도 하고 책 장례식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해도 소용없었는데, 선생님 글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책 얼룩이 아이스티인지 보리차인지도 몰랐거든요. 팀장이 말했다.

경고문 보고 냄새 맡아보니 아이스티더라고요. 사서가 말했다.

아이스티 쏟고 가신 분이 경고문을 보고는 찾아왔어요. 저희한테 사과하고 새 책을 사왔더라고요. 팀장이 말했다.

그 얘기까지 추가해서 경고문을 업데이트 하셨어야죠. 음료 쏟는 분들은 계속 나올 텐데요.

잘 아시네요. 몇 분 더 계셨죠. 안 그래도 선생님 글을 많이 참조해서 새 경고문을 썼는데 관장님 결재가 안 나서…….

팀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권한만 있으면 선생님 책 대출 권수라도 늘려드리고 싶네요. 사서가 말했다.

대신 이거……. 지난번 행사 때 쓰고 남은 건데 드려도 되겠죠?

사서는 그 말을 하며 팀장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책갈피 다섯 장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책을 훼손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의 자산입니다.

집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우편함을 보았다. 누런 서류 봉투가 꽂혀 있었다. 보내는 사람 이름은 없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내가 책누리마루도서관에서 쓴 경고문들이 가득했다. 상황책 이벤트 때 이용객들이 자필로 기재한 추천도서 목록과 이용객들의 메모들까지도 들어 있었다.

도서관의 역사적 사료가 내게 환수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경고문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경고문을 읽게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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