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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4. 18. 15:47

벚꽃이어 철쭉·영산홍 ‘배턴터치’ … 전주에서 완주까지 ‘봄꽃 레이스’

[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4-04-18 09:01
  • 업데이트 2024-04-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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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벚꽃과 영산홍으로 화려한 전북 전주의 ‘완산칠봉 꽃동산’의 모습. 야트막한 산정의 산동네 공원 꽃밭이라서 더 정겹다. 철쭉까지 만개하는 이번 주말쯤이면 꽃동산은 더 화려해진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절정 다다른 전북 ‘꽃구경 명소’

전주 곤지산 ‘완산칠봉 꽃동산’
꽃불 붙은 거대한 꽃다발 이뤄

완주 10만평 규모 ‘화산 꽃동산’
근사한 조경·단정한 돌탑 눈길

대아수목원 ‘금낭화자생군락지’
이달 말 개화… 수만 그루 장관

송광사 가는 길에 ‘소양벚꽃길’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매력

완주·전주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매화와 산수유로부터 배턴을 바쁘게 넘겨받은 벚꽃이 어느결에 다 져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겹벚꽃을 지나서 자두꽃과 영산홍, 철쭉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난데없는 초여름 더위가 급습하면서 봄꽃의 이어달리기에 가속도까지 붙은 듯하다. 올해는 봄꽃 구경 인파가 요샛말로 ‘역대급’이다. 이름난 봄꽃 명소마다 몰려든 행락객들로 북새통이다. 그렇다고 이 좋은 봄날을, 먼발치서 분분히 날리는 꽃잎과 함께 보낼 수는 없는 일. 시간 때문이든, 인파 때문이든 봄꽃 구경의 타이밍을 놓친 이들에게 덜 알려진 봄꽃 여행지를 추천하기로 한다. 목적지는 전북 완주. 다채로운 봄꽃과 신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 경계를 지워도 될 만큼 가까운 전주의 소박한 꽃구경 명소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지난해 완주 화산 꽃동산에 철쭉이 만개한 모습. 오는 주말쯤이면 이런 모습일 것으로 예상된다.



# 직관의 작명… ‘꽃동산’

‘꽃동산’. 이보다 더 직관적인 작명이 또 있을까. 전주에는 ‘완산칠봉 꽃동산’이 있다. 봄이 절정을 넘긴 즈음에 겹벚꽃과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서 진짜 ‘꽃동산’이 펼쳐지는 공원이다. 여기는 유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숨어있는 곳도 아니다. 외지인들은 대부분 잘 모르지만, 전주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곳이란 얘기다.

헷갈리기 쉬운 지명부터 정리하고 가자. 봄꽃이 화려하게 피는 공원의 이름이 ‘완산칠봉 꽃동산’이다. 완산은 전주의 옛 이름. 칠봉이란 7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름은 칠봉이지만, 완산칠봉의 봉우리는 7개가 아니다. 주봉인 장군봉을 중심으로 두 겹의 산줄기가 내칠봉과 외칠봉을 이루고 있어 봉우리는 모두 13개다. 완산칠봉 꽃동산은 이 중에서 곤지봉에 있다. 주민들은 ‘곤지산’이라고도 부르는데, 해발 102m에 불과해서 사실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민망하다. 굳이 지명을 먼저 정리하고 가자고 했던 건 ‘완산칠봉 꽃동산’이라니까, 별생각 없이 ‘완산공원’으로 가는 이들이 많아서다. 완산공원은 완산칠봉 한가운데 있고, 꽃동산은 완산칠봉 북쪽 끝에 있다. 완산공원에서 완산칠봉 꽃동산까지는 제법 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완산칠봉 꽃동산은 ‘곤지산 정상부근’에 있다.

곤지산은 전주 한옥마을 남쪽에 있다. 전주 한옥마을 남쪽에 곤지산이 있다면 북쪽에는 건지산이 있다. 눈치가 빠르다면 짐작했겠다. 곤지산의 ‘곤(坤)’과 건지산의 ‘건(乾)’은 모두 주역의 괘에서 가져온 것이다. 곤은 땅이고, 건은 하늘이다. 곤은 남(南)이고, 건은 북(北)이다. 말머리를 닮았다는 곤지산을 놓고 ‘목마른 말이 전주천에서 물을 마시는’ 이른바 갈마음수(渴馬飮水) 지형이라고도 하는데, 그건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완산공원과 헷갈리지만 않는다면, 곤지산은 찾아가기 쉽다. 전주 한옥마을과 남문시장에 가본 이들이라면, 곤지산을 보지 않았을 리 없다. 그게 곤지산인지는 알지 못했겠지만…. 전주 남문시장에서 전주천 건너편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이 바로 곤지산이다. 모르겠거든 무조건 완산도서관만 찾으면 된다. 리모델링 중인 완산도서관 뒤편이 곤지산이다. 거기서 곧바로 완산칠봉 꽃동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 꽃다발을 이룬 꽃동산

곤지산 일대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꽃다발이다. 벚꽃에서 시작한 꽃불이 겹벚꽃으로 옮겨붙었고, 영산홍으로까지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제 막 꽃망울을 열기 시작한 철쭉까지 흐드러져 마지막 힘을 보탠다면 더 화려할 수 없는, 봄날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 그게 바로 오는 주말쯤이다. 완산칠봉 꽃동산의 가장 화려한 풍경이 그때쯤이겠다.

완산칠봉 꽃동산은 다른 봄꽃 명소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내로라하는 이른바 ‘전국구’ 봄꽃 명소에다 대면 규모도 작고 접근성도 떨어지며, 편의시설도 모자라다. 근사하게 나무를 심어놓거나, 잘 꾸며놓은 꽃밭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탈진 달동네 마을을 끼고 있는, 폄훼의 시선으로 보면 ‘그저 동네 뒷동산 같은’ 허름한 근린공원이다. 이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도 남는 건 오로지 봄꽃이다. 공간의 누추함이나 두서없음을, 풍성하게 피어난 봄꽃이 다 가리고도 남는다. 완산칠봉 꽃동산이 여느 봄꽃 명소와 다른 게 또 하나 있다. 막걸리도, 파전도, 행락지의 트로트 가락이나 쓰레기더미도 없다는 것이다.

완산칠봉 꽃동산을 가꾼 건 순전히 한 사람의 힘이다. 토지 소유주인 김영섭(80) 씨가 1970년부터 아버지 묘를 쓴 야산에다 봉급을 털어 철쭉, 벚나무, 배롱나무 등 꽃나무를 심기 시작한 게 꽃동산의 시작이다. 그렇게 심은 1500여 그루 꽃나무를 40년 넘게 가꿔서 지금처럼 화사한 꽃동산을 만들었다. 꽃동산에 가장 많이 심은 건 철쭉. 김 씨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장 좋아한 꽃이었단다.

김 씨는 꽃나무를 심어 기를 뿐 내세우지도,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랬는데도 그가 심은 꽃나무가 화려한 꽃동산을 이루자 봄이면 꽃구경을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완산칠봉 꽃동산’이란 이름도 꽃구경 온 사람들이 붙여준 것이었다. 봄꽃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땅을 팔라’는 유혹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꽃동산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면서 관리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김 씨는, 지난 2009년 이 땅을 전주시에 팔았다. 행정과의 거래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겠지만, 그편이 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땅을 사들인 전주시는 15억 원을 들여 전망대 등을 짓고 이듬해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했고, 그게 지금의 완산칠봉 꽃동산이다.

봄꽃이 한창인 이즈음 꽃동산에는 꽃구경하러 온 전주시민들이 제법 많다. 전국 규모의 꽃놀이 명소만큼 붐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고즈넉하게 꽃구경을 하고 싶다면 이른 아침을 겨눠서 가는 게 좋겠다. 전등불 아래서 보는 봄꽃의 화려함도 낮의 풍경 못잖으니 운치 있는 ‘봄밤의 꽃놀이’도 고려해보시길…. 사실, 완산칠봉 꽃동산이 좋다고 해도 ‘그곳만을’ 목적지 삼아 다녀오라 권할 정도는 못 된다. ‘동학군 전주입성 기념비’나 생태습지, 금송아지 바위 등 완산칠봉 구석구석의 명소를 보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꽃동산만 보고 오라고 해도 전주까지 간 길에 한옥마을을 안 들를 리도 없겠으니, 꽃동산과 함께 한옥마을과 전주천을 두루 거닐며 봄 풍경을 다 보고 오면 좋겠다.

완주 경천저수지의 수변 풍경. 신록과 산벚꽃의 풍경이 고요한 수면 위에 도장처럼 찍힌다.



# 완주에도 꽃동산이 있다

전주에서 경계를 넘어 완주로 간다. 완주는 전주를 포위하듯 감싸고 있어, 전주 어디서든 완주가 가깝다. 생활권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니까 전주에 갔다가 완주까지, 완주를 갔다가 전주까지 들르는 것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완주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봄꽃 명소가 있다. 여기도 ‘꽃동산’이다. 화산면(華山面)에 있다고 해서 ‘화산(華山) 꽃동산’. 완산칠봉 꽃동산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개인이 만든 꽃밭이다. 30여 년 전에 예봉산 자락의 33만㎡(10만여 평) 부지에 벚나무와 철쭉, 꽃잔디, 향나무 등을 심어 조성한 곳이다.

화산 꽃동산을 찾아가려면 난감하다. 그래도 SNS에서는 제법 알려진 봄꽃 명소인데도, 가는 길에 이정표나 안내판이 하나도 없다. 그동안에는 변변한 주차장조차 없었는데, 지난주에 가보니 들머리 쪽에 손바닥만 한 임시주차장을 확보해놓고는 차량 구획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정도 규모로는 턱도 없어 보이긴 했지만, 이정표조차 없는 마당에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었다. 이정표도, 안내판도 없으니 화산 꽃동산에 가려면 주소 외에는 방법이 없다. ‘완주군 화산면 춘산리 산 3-1.’ 화산 꽃동산을 찾아갈 때 인터넷 포털사이트 전자지도나, 차량 내비게이션에 입력해야 하는 주소다.

사정이 이러니 아직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들머리의 연두색 신록으로 물든 단풍나무 숲길부터 돈을 안 내고 보기 황송하다. 숲길을 지나면 화려한 겹벚꽃이며 정성껏 모양을 다듬은 향나무 군락, 비탈진 한쪽 사면을 가득 채운 철쭉과 화사한 꽃잔디가 다가선다. 꽃과 나무 말고, 눈길이 가는 산의 너덜지대 돌을 가져다 쌓은 탑은 방추형 돌탑이다. 돌탑에서 느껴지는 건 정성이다. 개인이 가꾼 꽃밭이다 보니, 근사한 조경과 화려한 꽃밭, 그리고 단정한 돌탑의 미감 앞에서 거기 바쳐진 시간과 노고를 생각하게 된다.

화산 꽃동산에서 멀지 않은 화산면 승치리에 되재성당이 있다. 되재성당은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우리 땅에 두 번째로 완공된 본당이자,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되재성당이 지어진 건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이듬해인 1895년.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가 직접 내려와 성당 축성식 미사를 집전했다. 6·25 전쟁으로 성당 건물이 다 타버렸는데, 2005년에 복원작업을 벌여 처음 지어졌던 처음의 모습 그대로 다시 지었다.

단아한 한옥 성당의 모습과 나무로 엮어 만든 종탑이 어우러져 종교적 미감을 빚어내는 곳이다. 한옥성당에서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전 11시에 순례객들을 위한 미사가 있다. 미사가 없어도 성당 안에 누구든 자유롭게 들어가 볼 수 있다. 사제가 신자를 등진 채 벽을 보며 미사를 봉헌하는 옛 성당의 구조와 남녀 신자를 구별하는 칸막이 등이 이채롭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이 평화롭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축사가 지금은 성당 코앞까지 꽉 차 있다는 것. 되재성당을 권하기 망설여지는 가장 큰 이유다. 그래도 되재성당 가는 길에 지나치게 되는 경천저수지의 이즈음 황홀한 신록 풍경이 위안이 된다. 신록과 산벚꽃이 어우러진 이즈음의 경천저수지 수변은 ‘채도 높은 수채화 속 세상’이다.

# 아직 피지 않은 봄꽃 금낭화

완주의 대아수목원에는 아직 피지 않은 봄꽃이 있다. 분홍색의 하트모양 꽃이 낭창거리는 가지에 줄줄이 매달려 피어나는 금낭화다. 금낭화는 화려하기로 첫손에 꼽히는 봄 야생화다. 꽃 모양이 옛날 여인들이 치마 속에 차고 다니던 주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며느리 주머니 꽃’이라고도 불린다.

완주에는 산이 많다. 특히 동쪽 경계를 따라 호남정맥의 주봉인 대둔산, 운장산, 연석산, 만덕산, 모악산, 고덕산 등이 장중하게 솟아있다. 대아수목원은 이런 근육질의 산지가 툭툭 불거진 힘줄처럼 지형을 일으켜 놓은 자리에 있다. 대아수목원이 들어선 대아리 일대는 한때 전국에서 손꼽히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1970년대 대아리는 화전민들이 살던 땅이었다. 소개령이 내려져 화전민이 나가고 난 뒤, 오랫동안 방치돼 숲과 골짜기가 저 스스로 깊고 멀어졌는데, 그걸 전북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수목원으로 다듬어 1995년 개방했다.

연 면적 150만㎡에 달하는 수목원에는 분재원과 장미원, 수생식물원 등 집단시설 지역을 둘러보는 관람코스를 비롯해 순환임도 코스와 제1전망대 왕복 코스, 금낭화관람 코스, 능선등산 코스 등 5개의 탐방 코스가 있다. 보름쯤 전이었다면, 두말할 것 없이 순환임도 코스였다. 총 3㎞ 구간의 순환임도 코스는 임도를 따라 산림문화전시관, 열대식물원, 암석원, 팔각정, 밀원수원, 느티나무 숲 등을 거쳐 한 바퀴를 돈다. 이 코스를 추천하는 이유는 한 가지. 봄이면 임도에 심어놓은 왕벚나무 560그루가 황홀한 꽃 터널을 이루기 때문이다. 길은 지금도 좋지만, 왕벚꽃이 다 진 뒤에 그 길을 걷기란 어쩐지 억울하다.

지금 대아수목원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금낭화 자생군락지다. 군락지는 운장산 줄기 산자락의 북동사면, 그러니까 제3전망대 바로 아래 있다. 제3전망대의 해발고도는 448m. 금낭화 관람코스를 따라 다녀오는데 4시간 남짓이 소요된다. 높이로 보나 소요 시간으로 보나 산책보다는 등산에 가까운 길이다. 대아수목원의 금낭화 군락지는 국내 최대 규모다. 금낭화의 개화 시기는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다음 주말쯤부터 7만㎡에 달하는 군락지에 수만 그루의 금낭화가 피어서 장관을 이룬다. 윤판나물꽃과 앵초, 별꽃 등의 야생화도 볼 수 있다.

                                                 봄의 기운과 정취로 가득한 전주천 변.



# 축제가 아니라 ‘행사’라고?

완주에는 송광사가 있다. 승보사찰로 널리 알려진 전남 순천의 대찰 송광사와 이름이 같은 절이다. 그렇다고 ‘유사상품’ 취급은 곤란하다. 지금이야 규모나 위세를 순천 송광사에 댈 수는 없지만, 완주 송광사는 한때 조선 왕실의 호국 원찰로 기세등등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체 어떤 의미가 있길래 두 절이 같은 이름을 쓰는 걸까. 우선 ‘송광(松廣)’이란 이름의 뜻부터. 완주 송광사는 본래 백련사였다가 송광사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사찰 이름을 바꾼 이유인즉 이렇다. 송(松)은 소나무를 뜻하는데, 소나무는 다른 식물과 함께 어울려 자라지 않는다. 다른 식물이 자리 잡고 있어도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숲은 금세 소나무 일색이 된다. 제 마음만 잘 닦으면 성불할 수 있다는 ‘선종(禪宗)’이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화엄종이나 법상종, 정토종 등 다른 종파의 가르침이 뿌리내린 곳이라 하더라도 ‘선종이 전해지면 선종 일색이 된다’는 것. 선종이 뿌리내림이 곧 소나무 같다는 얘기다. 이를 ‘소나무(松)가 널리(廣) 자리한다’는 비유로 송광(松廣)의 이름을 가져다 썼다는 것이다.

완주 송광사는 사실 절집보다는 ‘가는 길의 벚꽃’으로 더 알려졌다. 소양면 소재지에서 송광사까지 2㎞ 구간을 ‘소양벚꽃길’이라 부르는데, 40년생 벚나무가 도로 양쪽으로 이어져 벚꽃 터널을 이룬다. 웬만한 벚꽃 명소에는 떠들썩한 벚꽃축제가 있는 것처럼, 소양면에서도 2012년 벚꽃 개화 시기에 맞춰 ‘송광사 벚꽃축제’를 열기도 했었다.

소양 벚꽃길은 벚꽃의 화사함을 즐기는 데는 모자람이 없지만, 다른 벚꽃 명소와 비교해보면 나무가 크지 않고 군락의 규모도 작은 편이다. 그런 곳에서 호들갑을 떠는 게 좀 민망했던지, 소양면사무소는 이후에 ‘축제’ 대신 ‘소양 벚꽃길 행사’로 이름을 바꾸고 규모도 축소했다. 소양 벚꽃길이 다른 벚꽃 명소보다 차분하고 고즈넉해진 이유다.

# 꽃이 없는 송광사에서 볼 것

들머리의 벚꽃이 다 떨어진 지금, 송광사는 한가롭다. 사실 송광사는 꽃이 없어도 볼 게 참 많은 절이다. 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종루. 열십(十)자 평면 위에 팔작지붕을 교차해 올려 화려하게 지어낸 2층 누각의 종루는 한 눈에도 특별해 보인다. 이런 식의 종루는 국내에서 여기가 유일하단다.

종루보다 더 인상적인 게 절집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이다. 대웅전에는 들어서자마자 주눅이 들 만큼 위압적인 삼존불상이 봉안돼 있다. 불상을 마주 보고 섰을 때 가운데 불상이 석가모니이고 왼쪽이 아미타여래, 오른쪽이 약사여래다. 압도감을 주는 건 크기 때문이다. 흙으로 빚은 세 개 불상의 키가 자그마치 5.65m에 달한다. 그것도 앉은키가 그렇다. 한국의 소조상 가운데 가장 크기도 하고, 용모나 조각의 솜씨도 훌륭하다.

삼존불상 사이에는 다른 절에서는 본 적 없는 ‘목조삼전패(木造三殿牌)’가 있다. 불상과 불상 사이에 나무로 깎아 만들고 장식한, 큰상(床)만 한 3개의 팻말이다. 팻말에는 구름과 용을 그리고 주상전하와 왕비 전하, 세자 등의 안녕을 기원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인조 임금이 병자호란 이후 어지러운 민심을 바로잡고자 송광사를 대대적으로 복원하고 이 절을 원찰로 삼았으니, 목조삼전패에 적힌 주상전하란 인조를, 왕비는 인열왕후를, 세자는 청나라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뜻한다.

대웅전에 들어서거든 천장을 유심히 보자. 천장에는 비천도(飛天圖)가 있다. 불교에서 비천은 부처의 정토를 날아다니며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는 천녀(天女)를 뜻한다. 대웅전 천장의 비천도는 무속의 복장으로 춤을 추는 모습부터, 뛰어올라 부처님께 공양하거나 바라와 북을 연주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다. 그중 돋보이는 게 하늘의 복숭아를 헌정하는 춤을 추는 천녀의 형상을 그린 ‘천도헌정무(天桃獻呈舞)’다. 가는 필선이 유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색상 대비로 힘이 느껴진다. 천녀가 바치는 복숭아가 여성의 가슴 형상인 것이 이채롭다. 대웅전 천장의 천녀도가 멀고 어두워서 자세히 보기가 쉽지 않아 그랬을까. 대웅전 외벽에 돌아가면서 천장의 천녀도를 세밀하게 모사해 놓았는데, 그게 볼 만하다.



■ 빨래터의 무인빵집

완주 화산 꽃동산 인근에 ‘화산애빵긋’이란 상호의 카페 겸 빵집이 있다. 동네 빨래터였던 자리에다 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가건물을 세우고 차린 작은 시골 빵집이다. 테이블 하나에 카운터가 전부인 이 빵집은 무인으로 운영한다. 빵을 고르고, 커피머신에서 내린 커피를 마신 뒤 스스로 계좌 이체나 현금 결제를 하면 된다. 빵은 다양하다. 치아바타와 캉파뉴, 소금빵, 단팥빵 등이 대표메뉴다. 모든 빵을 정성껏 구웠다는 게 느껴진다. 맛도 기대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