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차는 美 독립전쟁의 불씨… 육포는 몽골군 기동력 높여
세계사를 바꾼 음식
지난달 24일 '완벽한 차(茶)'를 만드는 법을 두고 미국과 영국 사이에 불꽃 튀는 '논쟁'이 일었습니다. 미국 대학의 한 화학 교수가 최근 낸 책에서 "차를 완벽하게 우리려면 소금을 약간 넣어라"라고 권한 게 발단이었어요. 이에 영국의 유명 일간지 '가디언'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물로 차를 만드는 나라의 과학자가 완벽한 차를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고 주장한다"고 비꼬았어요. 차 마시는 전통문화를 지닌 영국에 비해, 미국은 차를 제대로 즐길 줄 모른다는 얘기죠.
두 나라의 외교가도 다툼에 끼어들었습니다. 주영 미국 대사관은 X(옛 트위터)에서 "영국의 국민 음료에 소금을 넣는 것은 미국의 공식 정책이 아니다"라며 "미국 대사관은 차를 계속해서 (영국 전통과 달리) 전자레인지에 돌려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사뭇 진지한 척을 하며 영국이 차에 대해 과잉 반응한다고 꼬집은 거죠. 그러자 주미 영국 대사관은 X에 올린 영상에서 '차 만드는 법'을 설명했어요. 영국 해군이 출연해 "설탕은 조금 넣어도 된다"며 "전자레인지를 쓰지 말고, 주전자를 사용하라"고 강조했죠.
두 나라 사이의 단순한 장난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차'라는 음식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녀요. '차'를 두고 미국의 독립전쟁이 시작됐거든요. 미국이라는 독립국을 만든 것이 '차'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역사의 변화를 이끈 특별한 음식에 대해 알아볼까요?
영국, 차 수입 무역 적자… 중국에 아편 수출
차는 17세기에야 영국에 들어옵니다. 차는 원래 중국에서 마셨지만 영국이 수입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모든 영국인이 즐겨 마시는 각별한 음료가 됐어요. 영국은 일 년 내내 비가 오는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지녔어요. 뜨겁게 물을 끓여 찻잎을 우려 마시는 차는 추위를 덜어줬죠. 또 오염된 식수 대신 차를 끓여 마시면서 위생적인 식생활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영국인은 독자적으로 차 마시는 문화도 만들었어요. 차에 설탕과 우유를 넣어 달콤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즐겼어요. 찻잔 아래에 잔을 받치는 납작한 그릇을 둔 것은 뜨거운 차를 그릇에 조금씩 부어 식혀 마시기 위한 것이었대요.
그런데 영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를 마시자 영국 경제에는 큰 부담이 생겼어요. 차를 수입해 올수록 영국은 무역에서 적자가 심해졌기 때문이에요. 영국은 프랑스와 7년 전쟁으로 더욱 악화된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고자 당시 식민지였던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세금을 철저히 걷기로 했어요. 이를 위해 영국은 아메리카 주민은 국가가 관리하는 '동인도 회사'를 통해 수입한 차만 소비하도록 강요했어요. 그러자 주민들은 세금을 내기를 거부하면서 보스턴 항구에 정박해 있는 동인도 회사 배를 습격해 차를 모두 바다로 던졌어요.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으로,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이었죠.
차를 수출하던 중국은 애꿎게도 영국과의 전쟁에 휘말렸어요.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마약의 일종인 아편을 재배해 몰래 중국에 팔았어요. 아편을 수출해 번 돈으로, 차를 수입하다가 생긴 무역 적자를 메우려고 한 거죠. 이 때문에 중국에는 아편 중독 문제가 심각해졌어요. 중국 정부는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배에서 아편을 몰수하며 단속에 나섰어요. 영국은 이에 반발하며 군함을 보내 전쟁을 일으켰죠. 1840년 아편전쟁입니다. 중국을 향한 서양의 침략이 본격화된 것으로 평가받는 사건이죠.
차 즐기던 영국과 싸운 미국 "커피가 최고"
미국은 '차'를 계기로 영국과 대립하면서 '차'라는 음료를 꺼리게 돼요. 미국 독립전쟁쯤에는 미국에서 영국 상품을 사지 말자는 움직임이 일었어요. 특히 차 불매운동이 벌어졌어요. 차를 마시는 일은 영국에 의한 억압을, 차를 파괴하는 것은 식민지의 혁명을 상징하게 됐죠. 불매운동은 뉴욕, 필라델피아, 보스턴 등 주요 항구도시로 번져나갔죠.
미국을 상징하는 음료는 '커피'가 됐답니다. 마침 아메리카 대륙엔 18세기 당시에 처음으로 커피가 전해졌어요. 미국인은 차를 불매하면서 비슷하게 추위를 달래고 잠을 깨울 수 있는 커피를 대용품으로 삼았어요. 커피를 차 대신 마시는 것은 애국으로 여겨졌죠. 커피는 이슬람 세계에서 먼저 마시던 것이 16세기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여요. 처음엔 '악마의 음료'라고 금지됐지만, 결국 로마 교황이 커피에 세례를 내리며 17~18세기 유럽에서 커피는 큰 인기를 끌게 됐죠. 유럽인들은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문학과 예술을 토론하고,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견해를 나눴어요.
커피 문화는 유럽인의 소통을 활발하게 하면서 유럽 사회를 변화시켰어요. 1789년 프랑스에서는 불평등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왕을 끌어내리는 '프랑스혁명'이 벌어졌죠. 변호사였던 카미유 데물랭이 수천 군중을 향해 무기를 들고 싸우자고 외친 곳이 '카페 드 푸아'랍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혁명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계몽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을 비롯해 시민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고 해요. 커피는 유럽의 문화 예술의 원동력이기도 했어요. 1720년 문을 열어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 '카페 플로리안'은 모차르트가 커피를 마시며 작곡을 한 곳이에요. 괴테, 스탕달, 바그너 등 여러 예술가가 여기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요.
소고기 육포를 말 안장에 싣고 세계 제패
몽골은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했어요.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동성'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에는 단지 능숙한 기마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랍니다. 가지고 다니기 쉬운 식량이던 몽골의 '육포'가 큰 역할을 했어요.
몽골군은 소고기나 양고기를 말린 육포인 '보르츠'를 전투식량 삼아 말 안장 밑에 넣어 다녔어요. 군인들의 식량을 나르는 보급 부대가 따로 없어 기동력을 더욱 높일 수 있었죠. 몽골군은 식량 보급 걱정을 덜고는 말을 바꿔 타며 하루에 무려 70㎞ 이상을 이동했대요. 빠르게 넓은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죠.
'보르츠'를 만들려면 겨울에 짐승을 잡아 살코기를 바르고 줄에 매달아 바싹 말린 후, 이를 망치나 돌멩이로 두드려 가루로 만들었대요. 이 가루를 소의 위나 오줌보에 넣어 보관했는데, 소나 양의 오줌보 하나에는 소 한 마리분의 '보르츠'가 들어갔대요. 부피도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2~3년 보관해도 상하지 않아 장기 보관도 가능했어요. 특히 전쟁 중에 불을 피우지 않아도 먹을 수 있어서 적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는 장점도 있었대요. 빠른 기동력을 갖춰 '신출귀몰'했던 몽골군의 능력도 음식에서 나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