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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한여름에 피어난 목련 꽃, 그리고 지금 한창인 수국과 노루오줌 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6. 21. 23:26

[나무편지]

한여름에 피어난 목련 꽃, 그리고 지금 한창인 수국과 노루오줌 꽃

 

[나무편지] 한여름에 피어난 목련 꽃, 그리고 지금 한창인 수국과 노루오줌 꽃

  ★ 1,185번째 《나무편지》 ★

  드디어 목련이 피어났습니다. 여름에 피어나는 두 종류의 목련이 모두 피었습니다. 올 봄부터 유난스러웠던 여느 꽃들처럼 두 종류의 여름 목련도 조금 이르게 피어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꽃이 철 이르게 피어나는 건 아주 좋지 않은 일입니다.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나무는 꽃을 피워서 꽃가루받이를 완성해줄 매개동물(대개는 벌과 나비, 딱정벌레 같은 곤충이겠지요)을 불러들여야 하잖아요. 그 위대한 생명 활동을 완성하려면 꽃이 피어날 때에 맞춰 그 꽃을 찾아올 매개곤충도 깨어나야 하는데 그게 서로 맞지 않으면 애써 피운 꽃은 꽃가루받이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지난 주에 드린 예고 말씀과 달리 지난 봄에 피어난 만병초 종류의 꽃들은 조금 더 뒤로 미루고, 주말에 만난 여름 목련의 개화 소식부터 서둘러 전해드리는 게 더 좋겠다 싶었습니다. 언제나 여름이면 환하게 피어나는, 이른바 ‘여름 목련’입니다. ‘여름 목련’이라는 식물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요. 여름에 피어나는 목련 종류들을 뭉뚱그려 그냥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여름에 꽃 피우는 목련도 몇 종류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 천리포수목원의 여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목련 종류인 ‘리틀젬태산목’과 ‘남부버지니아목련’을 보여드리렵니다.

  바로 위 사진까지 앞의 세 장의 사진은 모두 ‘리틀젬태산목’이라고 부르는 목련 종류입니다. 북아메리카 지역이 고향인 태산목이 여름에 꽃을 피우지만, 봄에 피는 여느 목련 종류들처럼 금세 시들어 떨어지는 바람에 이 꽃을 더 오래 보고 싶은 사람의 뜻에 맞춰 선발한 새로운 품종입니다. 식물도감에는 리틀젬태산목의 꽃이 7월부터 10월까지 피어난다고 돼있지만, 그건 고향인 북아메리카 땅에서 그런 거고요. 고향 떠난 리틀젬태산목은 대개 7월에 피어나기 시작해서 초겨울, 운 좋으면 12월 초까지 몇 송이씩 계속 피어납니다. 그러니까 ‘겨울에 피는 목련’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겨울’과 ‘목련’이 만나는 겁니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꽃봉오리를 올리고는 그 가운데 여러 송이를 활짝 피운 리틀젬태산목의 탐스러운 꽃 곁에는 역시 비슷한 시기에 꽃 피우는 남부버지니아목련이 있습니다. 남부버지니아목련의 꽃송이는 리틀젬태산목의 꽃송이와 달리 앙증마다 싶을 만큼 작습니다. 어쩌면 뜨거운 여름 햇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새초롬합니다. 그래서 더 좋습니다. 이 여름에 난데없이 목련 꽃을 만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큼지막하게 피어난 리틀젬태산목 꽃과 앙증맞게 피어난 남부버지니아목련의 꽃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위에 연속해서 담은 두 장의 사진이 바로 그 남부버지니아목련입니다. 남부버지니아목련은 리틀젬태산목처럼 오랫동안 피어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세 낙화를 서두르는 건 아닙니다. 여름의 들머리에 피어나기 시작해서 대략 두어 달 정도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봄에 피어나는 대개의 목련 종류들처럼 온 가지에 솟아올린 모든 꽃송이를 한꺼번에 열어젖히는 건 아닙니다. 한 송이 두 송이씩 다문다문 번갈아 피우는 거죠. 먼저 피어난 꽃송이가 제 할 일을 마치고 사라지면 그 곁의 다른 꽃송이가 이어서 피어나면서 리틀젬태산목은 초겨울까지, 남부버지니아목련은 늦여름까지 계속 피어나는 겁니다.

  여름에 피어나는 꽃 가운데에 가장 오래 가는 꽃은 아무래도 수국이겠지요. 지금은 수국의 계절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수국 천지입니다. 아직 활짝 피어난 것은 아니지만 며칠 전부터 미디어에서는 온 나라 곳곳에서 벌이는 수국 잔치 뉴스를 타전하고 있습니다. 천리포 바닷가 숲에도 수국 꽃이 한창입니다. 꽃 송이가 매개곤충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운명으로 태어난 수국은 꽃송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잎을 꽃잎처럼 바꾼 이른바 헛꽃으로 벌 나비를 끌어들이는 안간힘으로 이 땅의 우리 곁에서 애면글면 살아왔습니다. 꽃이 아니라 헛꽃이어서 더 오래 남아있는 아름다운 수국 꽃은 그래서 볼수록 적잖은 감동이 담깁니다. 수국의 헛꽃 이야기는 자주 말씀드렸지만, 다음에 더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천리포수목원 숲에서 지금 가장 눈에 띄는 꽃 종류는 ‘노루오줌’입니다. 우리 땅 어디에서라도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 노루오줌은 뿌리에서 노루의 오줌 냄새가 나는 풀이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지만, 뿌리를 캐기 전에는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노루가 목 축이러 찾아오는 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이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저 예쁜 꽃에 ‘오줌’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요즘 그의 학명인 ‘아스틸베’로 많이 부르는 풀입니다. 그래도 우리 땅, 우리 옛 사람살이의 자취가 담긴 이름 ‘노루오줌’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나무편지》는 특별한 생김새의 꽃 한 가지만 더 보여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위 사진이 그것으로, 저 모습이 바로 활짝 피어난 꽃의 모습입니다. 연한 자주색의 고깔 모양으로 피어나는 이 꽃차례에는 잔털이 무수하게 돋아나서, 마치 자줏빛 안개가 피어난 듯한 분위기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자연(紫煙)나무’라고도 불렀다가 이제 ‘안개나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나무의 꽃입니다. 사진의 자주색 부분이 꽃이고요. 자세히 보시면 곳곳에 동글납작한 부분이 있는데요. 이건 그 열매입니다. 참 독특한 꽃인데요. 이 꽃은 특히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참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지난 봄의 기억을 오래 남기기 위해 보여드리려고 했던 만병초 종류의 다양한 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 《나무편지》에는 이렇게 엊그제 주말에 만난 ‘여름 목련’, 그리고 지금 한창인 수국 꽃과 노루오줌 꽃, 안개나무 꽃을 담아 띄웁니다. 다음에 또 더 좋은 나무 이야기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3년 6월 19일 아침에 1,185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