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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프루스트의 마들렌 향기처럼 지금 이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하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6. 8. 13:25

[나무편지]

프루스트의 마들렌 향기처럼 지금 이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하여

  ★ 1,183번째 《나무편지》 ★

  대부분의 목련 꽃이 떨어질 즈음에 향기로 피어나는 목련 종류의 또다른 나무가 있습니다. 초령목(招靈木, Michelia compressa (Maxim.) Sarg.)이라는 이름의 나무입니다. 초령목은 목련과의 나무인데, 한자로 표기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혼 혹은 귀신을 불러오는 신령한 나무이지요. 아예 ‘귀신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쉬는 날이 아니었던 월요일을 끼어 화요일까지 편안히 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셨을 수요일 아침입니다. 이 아침의 《나무편지》에서는 초령목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옛날에는 초령목이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고, 일본에서 들어온 나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도 자생하는 초령목이 발견되었을 뿐 아니라, 흑산도에서는 3백 년 된 초령목 노거수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꼭 일본에서 들어온 나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가운데 특히 흑산도 진리에는 3백 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온 초령목 노거수가 있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풍진을 이기지 못하고, 이 특별한 노거수 초령목은 고사하고 말았습니다. 하릴없이 천연기념물에서는 해제해야 했지요. 2001년의 일입니다.

  그 뒤에 진리의 그 초령목 노거수가 있던 당산 숲에서는 죽은 초령목의 자손목이라고 할 어린 나무들의 싹이 터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어미나무라 할 수 있는 큰 나무는 이미 죽어 사라졌지만, 어린 초령목을 잘 보살펴 우리 땅에서 저절로 자라난 초령목으로 오래 살아남도록 잘 지켜내야 하겠습니다. 물론 제주도의 일부 지역에서 자라는 초령목은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초령목을 보존하려는 연구자들이 자생하는 초령목의 씨앗을 받아내 연구소에서도 잘 보존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초령목 꽃의 향기는 참으로 독특하고도 강합니다. 마치 맛난 과자나 사탕의 향기와 비슷한 달큰한 향을 뿜어냅니다. 어쩌면 바닐라 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강한 향이 멀리까지 퍼지기 때문에 초령목 꽃이 피어났다는 건 시각이 아니라 후각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사진은 열흘 쯤 전 천리포수목원의 소사나무집 아래쪽에서 피어난 초령목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대개의 목련 종류의 꽃이 다 지고난 뒤인 오월 말에 피어난 목련 종류의 꽃인 겁니다.

  초령목의 강한 향기는 땅 속이나 하늘의 귀신에게까지 충분히 전달된다고 옛 사람들은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이 향기를 귀하게 여긴 일본 사람들은 조상께 제사를 올릴 때, 초령목의 가지를 제사상에 올린다고 합니다. 조상을 섬기는 자신들의 마음을 초령목의 향기에 담아 하늘의 조상에게까지 전해드리겠다는 생각인 거죠. 마치 우리가 향나무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하늘까지 전할 만큼 강하다고 생각하며 제사 때에 우리의 뜻을 하늘에 계신 조상께 전해올리기 위해 향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초령목의 꽃은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3~4센티미터 길이로 크지 않은데, 유백색으로 피어난 꽃잎 안의 꽃술은 다른 목련 종류의 꽃술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꽃과 열매의 생김새 위주로 분류하는 식물분류에서 초령목을 목련과에 속하는 나무로 분류하는 근거가 될 겁니다. 초령목은 상록성 나무여서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습니다. 초록의 상록성 잎은 여느 목련 종류의 잎 만큼 크지 않으며 단정한 모습입니다. 꽃이 피지 않아도 그 잎만으로도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좋은 나무입니다.

  향기의 기억은 참 오래 갑니다. 향기의 기억을 이야기할라치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대작 소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마 1부 ‘스완네 집쪽으로’에서였을 겁니다. 작품 속 주인공이 과자 마들렌의 향기를 통해 어린 시절을 기억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워낙 인상적인 장면이어서 향기를 통해 옛 기억을 떠올리는 효과를 아예 ‘프루스트 효과’라고까지 부릅니다.

  맛난 과자처럼 꽃 역시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향기를 담고 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감각의 중추를 차지하는 귀한 생명체입니다.

  지금 아파트 베란다에서 피어난 한 다육식물의 작디작은 꽃송이에 코를 묻고 그 은은한 향기를 오래오래 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다시 올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을 믿으면서요.

  고맙습니다.

- 2023년 6월 7일 아침에 1,183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