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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마음으로 사진 읽기

[34] 당신의 두 눈에 불꽃이 일 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5. 22. 14:57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4] 당신의 두 눈에 불꽃이 일 때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09.02. 03:00
 
 
 
 
 
 
                                                                                박경일, Brianna, 2018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 있다. 일을 열심히 하느라 심각한 얼굴 말고,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데 신나는 얼굴, 눈빛에서 호기심이 쏟아지고 볼 안쪽에서 빛이 올라오는 것 같은 얼굴이 나는 좋다. 처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자주 이런 얼굴이 된다. 열렬히 원하던 기회를 얻었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도전에 대한 기대가 더 클 때, 몰입에의 반가움이 환희로 넘쳐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순간순간 들키기 마련이다.

 

문제는 초심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전은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해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고 했던가. 익숙함은 일의 효율성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도전을 멈추게 하고 즐거움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시험에 든 사람이 도전을 이어가고 그 안에서 설렘을 지속하려면 뭔가 다른 게 필요하다.

 

박경일 작가는 상업사진, 즉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사진을 창의적으로 찍어주는 작업을 삼십년 가까이 해왔다. 아이돌 가수를 아티스트라 부르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상업과 예술의 경계는 존재한다. 상업적인 기능과 용도가 우선인 사진은 작가 스스로 완성도나 의미를 결정하기 어렵다. 광고주나 의뢰인의 판단에 따라 선택되고 쓰임이 정해진다. 그런 작업에 집중하면서 자신만의 미적 감각이나 표현 방식과 이야기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진을 동시에 찍는다는 건 뇌가 두 개인 거나 마찬가지다. 박경일이 그렇다.

 

모델의 눈, 코, 입은 셔터가 열려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라졌다. 날카롭게 남은 빛의 궤적은 비현실적으로 불규칙하다. 얼굴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댄 작가의 두 손이 공간을 유영하듯 빠르고 단호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단순한 조명과 도발적인 감수성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 사진은 찍힌 사람의 얼굴보다 찍은 사람의 얼굴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아직 볼 수 없는 결과물을 상상하며 팔을 휘둘러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니 덩달아 신이 난다. 남들은 잘 하지 않거나 잘 못하는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베테랑 작가가 남다른 사진을 만들었으니, 그걸 보는 사람의 마음도 그 빛을 따라 살랑살랑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