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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의 40번째 소설 ‘통영이에요, 지금’ 출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3. 31. 14:12

“기억하고 싶지 않은 1980년, 이제야 마주 봅니다”

구효서의 40번째 소설 ‘통영이에요, 지금’ 출간

입력 2023.03.31. 03:00업데이트 2023.03.31. 06:16
 
 
 
 

갑자기 핀 벚꽃을 모두가 반길 수는 없다. 누군가는 봄이 벌써 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소설가 구효서(65)에게 1980년 ‘서울의 봄’이 그랬다. 1978년 군 입대해 고강도의 시위 진압 훈련을 수없이 받았다. 3년 뒤 대학에 돌아오니 세상이 달라졌다.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적대시했던 계엄군이 복학한 거죠. 괴로웠습니다. 죄책감과 세태에 대한 분노도 느꼈는데 그 정체를 아직도 모르겠어요. 정리가 되지 않아 그때를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소설가 구효서는 “통영의 성긴 벚나무 아래를 지나다 소설이 떠올랐다. 통영에는 다른 지역과 다르게 그 이름이 지닌 애틋함이 있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작가의 신작 장편 ‘통영이에요, 지금’(해냄)은 자신의 혼란스러웠던 청춘을 처음으로 다룬 소설이다. 통영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희린’을 둘러싼 두 남자의 사랑을 배경으로, 자연과 음식 등 일상적 소재에 대한 핍진한 표현이 분위기를 이끈다. 그 이면엔 1980년대의 아픔이 흐르고 있다. 희린은 스물다섯 살에 주사파 ‘주은후’와 연애했단 이유로 고문받았고, 왼팔을 쓸 수 없게 됐다. 당시 경찰이었던 ‘김상헌’은 희린을 마음에 품고, 고문 수사를 폭로했다. 함께 살게 된 희린과 상헌 앞에 자취를 감췄던 은후가 나타나며 삼각 관계가 펼쳐진다.

 

1987년 등단한 구효서는 끝없는 글쓰기와 실험적인 작품들로 동인문학상·대산문학상·이상문학상을 비롯해 국내 주요 문학상을 휩쓴 작가다. 그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려웠다. “갈수록 소설 쓸 때 제 또래 얘기가 나옵니다. 하필이면 제 청춘이 1980년대였죠. 아스라한 정서를 담아 쓰고 싶었는데, 자꾸 흥분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소설에 벚꽃을 넣고, 박희린에 국한해서 당시 세태를 얘기했어요.”

 

이번 작품은 제목이 ‘요’로 끝나는 ‘요요 소설’ 시리즈의 세 번째다. 현재 서울과 시간적·공간적으로 먼 곳을 배경으로,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자는 취지. 지금까지 평창, 목포, 통영을 배경으로 썼고 다음은 영주다. 열 권까지 낸다는 계획이다. “지금 청춘들은 부동산과 주식에 올인하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책에 등장하는 음식과 꽃을 통해 아스라한 정서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작가는 “미래는 어쩌면 과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문명적 삶에 몰두하기보다는, 과거의 느린 삶의 방식을 닮아갈 때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겁니다.”

 

다만 통영에 휴식차 놀러 간 소설 속 작가 ‘이로’와 달리, 현실의 작가는 여유롭지 못하다. 이번이 40번째 소설. 장편 30권과 소설집 10권을 냈다. 작업실에 매일같이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하는 ‘전업 작가’의 삶을 고수해 왔다. “책 내자마자 ‘다음엔 뭐 쓰지’ 고민했어요. 절박한 겁니다. 제가 베스트셀러 작가면 한 권으로 10년을 버티겠는데, 아니니까요. 다행인 건 계속 쓰는 삶을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제게 있다는 거죠.”

 

이번 책은 작가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자, 소년 구효서로 돌아가는 길이다. 유년 시절을 강화도의 정취와 함께 보냈다. “제 소설은 진지하고 어려워요. 제 소설의 정의를 다르게 내리고 싶었습니다. 남들은 제가 잘하는 관념적인 작품 계속 쓰라고 하는데, 강화도 촌놈의 정서를 버릴 수가 없어요. 등수에 못 들어도 고향을 계속 들여다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