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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누나가 주고 간 시 / 이 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2. 14. 15:40

누나가 주고 간 시

 

이 철

 

 

112-2119-1212-09 부산은행 이진희

철아 누야다

3만원만 부치도라

미안타

택배 일 하다 늦게 본 문자

시집 내려면 출판사에 300만 원

함진아비 함지고 가듯 발문에 50만 원

못난 시 시집 보내려고

집사람 몰래 3년간 모아온 돈 250만원

해병대 출신 자형 만나 아들 둘 낳고

반여2동 새벽별 아래 찬송가를 부르며

하루에 한 바퀴 여리고성을 도는 누나

그 누야한테 멀쩡한 돈 5만 원을 보냈다

시가 좀 모여도

돈 없으면 시한테 미안하고

점심값 아껴가며 돈을 좀 모아놓고도

시가 안 써지는 장마철

누나가 시 한 편 주고 갔다

단돈 5만 원에

 

 

욕을 해도 즐겁게 받아주는 사람

 

 

같은 말,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또는 당시 분위기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이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비웃는다며 트집이고, 어떤 이는 심지어 욕을 해도 즐겁게 받아쳐 줍니다.

 

내 속을 보여주거나 내어준다는 것은 어지간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지요. 때로 목적은 수단을 가리지 않기도 하거니와 목적을 위하여 가족도 버리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과로사까지 부르는 택배 일을 하며 어렵게 모은 돈을 보냈답니다.

동생 시인이 일하느라 문자를 보지 못한 시간 동안 문자를 보낸 누이는 답장을 기다리며 마음이 꽤 복잡했을 것입니다. 그 복잡한 마음을 보상해 주는 한 마디, 서로 마음의 짐을 덜고 덜어주는 따뜻한 한마디 “누나가 시 한 편 주고 갔다 / 단돈 5만 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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