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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소모품 / 정 숙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25. 11:23

소모품

 

정 숙

 

 

마구 깎아 내버렸다

빨리 새것을 쓰고 싶어서

 

몽땅 연필이 되기 전

버린다고 꾸중을 심히 들었을 때

 

입술이 삐죽삐죽, 엄마는 구두쇠라며

투덜거렸는데

 

이제 나이 들어보니 알겠다

깎여나가는 연필이 자신의 모습이란 것을

 

어쩔 수 없이 사람도 소모품이라는 걸

곧 버려지듯 사라져야 한다는 걸

 

엄마는

그때 이미 아셨던 거다

 

 

 

인연은 가꾸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들 중 ‘영원‘이라는 단어에 해당 되는 것이 있을까요.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많겠지만 그건 단지 바램일 뿐입니다.

 

인연은 어떤 기회에 우연히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 인연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비바람이 덮치기도 하고 때론 태풍이 흔들기도 합니다. 하여 오래 쌓아온 인연도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기도 하지요. “어쩔 수 없이 사람도 소모품이라는 걸 / 곧 버려지듯 사라져야 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깎여나가는 연필이 자신의 모습이란 것을” 인정하고 내어주는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인연은 절망을 안기기만 할 뿐입니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위해 오랜 인연을 쉬 던지면 나도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인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연은 가꾸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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