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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마늘종 / 정명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20. 13:54

마늘종

 

정명순

 

 

이슬 촉촉한 아침에 뽑아야

쑤욱 잘 뽑히는 겨

대낮에 한참 독기 올랐는디

그게 뽑히 것냐

왜 안 있냐 사람이랑 똑 같은 겨

오뉴월 땡볕에 오른 독기

건드려 봤자여야

맴이 흥건히 젖어 있을 땐

슬쩍만 건드려도 눈물 터지 듯

앵겨오는 거여

꽃대 뽑히는 것도 서러운디

고분고분 허것냐

젖은 것들끼리 통하는 거여

 

 

 

굳은 마음에서는 나올 것이 없습니다

 

우리네 어머니는 모두 철학자이거나 시인입니다. 농사를 짓던 장터에서 애호박을 팔던 삶이 녹아들어 있는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을 주먹으로 내려치듯 큰 충격을 줍니다.

너른 앞마당에 잡초가 자라면 예초기로 자르기보다 손으로 하나씩 뽑아 뿌리 채 제거하는데 몇 날 며칠 햇살이 쨍쨍 할 때는 뿌리가 잘 딸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가 온 후 또는 이슬이 내린 아침 일찍 “흥건히 젖어 있을 땐 / 슬쩍만 건드려도 눈물 터지 듯” 쑥 딸려 나옵니다.

내 것을 내어준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돈을 내어주던 마음을 내어주던 굳은 마음에서는 나 올 것이 없습니다. “왜 안 있냐 사람이랑 똑 같은 겨 / 오뉴월 땡볕에 오른 독기 / 건드려 봤자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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