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17] 창문을 닫았을 때 비로소 열리는 것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 중에 세계 여행 안내서 같은 연재물이 있었다. 여러 나라 도시들의 역사, 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그 만화를 보려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에 어린이 신문을 들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학생이 된 후에 처음 유럽 여행을 갈 때도 가방에 그 만화책을 챙겨갔다. 오래 가슴에 품어온 설렘이 여행지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 좋았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지적했듯이, 반 고흐의 그림이 프로방스에 대한 기대를 만들고 휘슬러의 그림 속 안개가 런던을 매력적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처럼, 경험은 학습과 기억의 영향을 받는다.
박찬민 작가는 서울, 부산, 홍콩, 싱가포르, 도쿄, 오사카 등 변화무쌍한 동아시아의 대도시 풍경을 촬영하여 ‘도시’ 연작으로 발표하였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도시는 원근법적 시각 효과를 과장하지 않고 지형지물의 형태적 왜곡을 최소화하여 반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밀도 높은 도시에 익숙한 눈에도 그의 사진은 어딘가 이상하다. 마치 미니어처를 찍은 것처럼 무언가 생략되어 있다. 공간감을 충분히 느낄 정도로 크게 프린트된 작품에서는 그 생경함이 배가된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결국 이유를 찾아낸다. 이런, 건물에 창문이 없구나.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시킬 뿐 아니라 개별성을 드러내서 건물의 표정을 만든다. 표정을 지운 도시 사진에선
크고 작은 건물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구조적 형태가 도드라졌다. 업무나 주거를 위한 건물들, 한참 쌓아 올리고 있는 건설 현장, 종교와 휴식을 위한 공간 등 대도시의 구성 요소들이 빈틈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 사진을 보며 타워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떠올리거나 맛집 여행을 기대하거나 저 많은 건물 중 내 집은 왜 없을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각자 장소에 대한 기억이 다르니 같은 걸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다. 창문을 없앤 사진이 열어준 건 보는 사람 마음속에서 끌어올린 이야기들이다. 닫았을 때 비로소 열리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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