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지금 여의도공원은 열매 경연장
<1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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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공원은 나무를 관찰하고 공부하기에 좋은 곳이다. 다양한 나무를 고루 심어놓은데다 공원을 조성한지 20년 이상 지나면서 나무들이 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꽃 필 때와 열매가 있을 때를 중심으로 해마다 두어 번씩은 가는 것 같다. 지난 주말 여의도공원은 나무들의 열매 경연장 같았다. 잎까지 대부분 떨어지니 열매들이 더욱 돋보였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짙은 주황색 마가목 열매였다. 마가목은 원래 높은 산의 능선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노랗게 물드는 단풍과 붉은 열매가 예뻐서인지 요즘 공원에도 많이 심어놓았다. 여의도공원에는 마가목이 특히 많았고 열매도 풍성했다. 여의도 빌딩을 배경으로 마가목 열매를 담은 재미가 있었다. 마가목이라는 이름은 봄 새순 모습이 ‘말 이빨’ 같다고 ‘마아목(馬牙木)’으로 부르다가 변한 것이라고 한다.
꽃사과, 아그배나무, 야광나무는 꽃과 열매가 비슷해 나무 공부할 때 헷갈리는 그룹이다. 여의도공원엔 이 세 가지가 다 있어서 비교하면서 볼 수 있다. 먼저 꽃사과는 열매에 배꼽이 남아 있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배꼽이 남아 있다는 뜻은 석류처럼 열매 아래쪽에 꽃받침 흔적(아래 사진)이 있다는 뜻이다.
아그배나무와 야광나무 열매는 배꼽이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열매에 꽃받침이 떨어진 흔적이 테두리처럼 남아 있다. 그러니까 열매 아래쪽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그럼 이 둘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잎을 보면 구분할 수 있다. 아그배나무 잎은 대부분 둥근 타원형이지만 일부 잎이 2~5개로 갈라져 있다. 야광나무에는 이렇게 갈라져 있는 잎이 없다. 야광나무 꽃과 열매가 아그배나무 꽃과 열매보다 좀 더 큰 편이다.
회화나무도 잎을 떨구자 콩깍지 모양의 열매가 잘 보였다. 회화나무는 콩과 식물이라 유백색 꽃도 콩꽃처럼 생겼고 열매도 콩깍지처럼 달린다. 회화나무는 서울 등 도심에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지만 공원 등에 따로 심어도 참 근사하다.
공원 한복판에 붉나무를 심어놓은 것도 특이하다. 산기슭에는 붉나무가 흔하지만 일부러 공원에 심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붉나무는 잎의 색깔과 모양, 열매 모두 개성만점인 나무다. 이 나무가 붉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가을에 붉게 단풍이 드는 특징 때문이다. 그것도 일찍 붉게 물든다. 작은 잎들을 연결하는 잎자루에 좁은 잎 모양의 날개가 달려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쉽게 붉나무를 구분할 수 있다.
붉나무는 놀랍게도 소금을 제공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붉나무 열매를 보면 큰 모래알 크기의 동글동글한 열매를 원추 모양으로 잔뜩 달고 있다. 이 작은 열매 표면에는 흰 가루 같은 것이 붙어 있는데, 이 가루 맛을 보면 신맛과 함께 짠맛이 난다. 오랜 옛날 바다가 너무 멀어 소금을 구하기 어려운 산간벽지에서는 이 열매에서 짠맛을 우려내 소금 대신 썼다고 한다.
모감주나무 열매도 재미있게 생겼다. 모감주나무는 독특하게도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색 꽃을 피운다. 꽃이 지면 삼각형 봉지 모양의 열매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 열매가 가을에 익으면 그 안에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검은색 씨가 들어 있다. 모감주나무 이름에 구슬 ‘주(珠)’자를 들어 있는 것은 씨 모양 때문일 것이다. 이 씨로 스님들이 염주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여의도공원 남쪽 ‘자연생태의 숲’엔 주엽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주엽나무는 꽈배기처럼 비틀려서 꼬인, 긴 꼬투리 열매를 갖고 있다. 열매 길이와 폭은 각각 20여cm와 3cm 정도다. 주엽나무는 전국의 산기슭 계곡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여의도광장에도 심어 놓은 것이다. 덕수궁에도 큰 주엽나무가 몇 그루 있어서 겨우내 시청역 쪽 담장 너머로 꼬투리 열매를 날린다.
주엽나무의 잘 익은 열매 속에는 단맛이 나는 잼 같은 것이 들어 있다. 한번은 심어보려고 주엽나무 꼬투리를 고향에 가져간 적이 있는데, 아버지가 어릴 적 이 꼬투리 껍질을 벗겨 먹었다고 하셨다. 살짝 맛을 보니 과연 조청 같은 단맛이 났다. 크지 않은 주엽나무는 줄기 아래쪽에 무서운 가시를 달고 있다. 초식동물이 잎을 먹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KBS 앞에선 꽃개오동 열매를 보았다. 개오동과 꽃개오동 열매는 마디가 없는 가늘고 긴 막대 모양이라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개오동은 연한 노란색 꽃이 피고, 꽃개오동은 꽃이 흰색이다. 개오동나무는 오동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목재로 쓰임새가 떨어져 붙인 이름이다. 오동나무와는 다른, 능소화과에 속하는 나무다.
여의도공원에는 참느릅나무가 참 많다. 요즘 1㎝ 남짓 크기의 열매(넓은 타원형)를 다닥다닥 달고 있는 나무가 보이면 참느릅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열매 껍질이 얇은 막 형태라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구조다. 참느릅나무는 느릅나무과 나무 중에서 유일하게 가을에 꽃 피고 열매를 맺어서 다른 느릅나무들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또 유난히 수피가 잘게 벗겨져 얼룩덜룩한 모양인 것도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여의도공원 열매를 소개하면서 홍자단을 빠뜨릴 수 없겠다. 홍자단은 붉은 열매가 인상적인 작은 나무인데 여의도공원에 많이 심어 놓았다. 중국 원산으로, 진홍색 열매가 예뻐 분재로도 많이 키우는 나무다. 산수유, 팥배나무, 산사나무, 낙상홍 열매도 많았지만 최근 소개한 적이 있어서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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