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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 이야기

지금 창덕궁 후원엔 보라색 꽃향유, 작살나무 열매가…<171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1. 29. 15:17

[김민철의 꽃이야기]

지금 창덕궁 후원엔 보라색 꽃향유, 작살나무 열매가…

<171회>

 

입력 202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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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을 관람하려면 표를 예매한 다음 후원 입구(함양문)에서 기다리다 정시에 함께 출발해야한다. 지난 주말 출발을 기다리는데 바람에 ‘쏴~’하고 불었다. 그러자 대조전 옆 느티나무 거목에서 낙엽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은 ‘와~’하고 탄성을 지르며 스마트폰 동영상 모드를 눌렀다.

늦가을이라 후원 단풍이 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볼만한 곳이 많았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노랗고 붉은 단풍이 화려했다. 잎이 5~7갈래인 단풍나무가 많았다. 숲에도, 탐방로에도, 하수로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쌓여 어디를 담아도 작품 같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창덕궁 후원 단풍.

 

꽃은 거의 유일하게 보라색 꽃향유가 남아 있었다. 꽃향유는 꽃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마치 칫솔 또는 브러시 모양으로 피는 꽃이다. 자잘한 꽃이 모여 피는 것이나 좋은 향기가 있는 것은 배초향과 비슷하지만 배초향은 꽃이 꽃대에 빙 둘러 피는 것이 다르다. 둘 다 가을에 서울과 근교 산에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창덕궁 후원 꽃향유. 꽃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칫솔 모양이다.

 

탐방로 곳곳에 산수유와 함께 팥배나무 붉은 열매가 많았다. 팥배나무라는 이름은 열매는 팥을, 꽃은 배꽃을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다. 팥배나무는 서울 남산·안산·북한산 등에서 주요 수종 중 하나다. 팥만한 크기 열매가 정말 많이도 달렸다. 바닥에 떨어진 팥배나무 열매를 하나 입에 넣어보니 시큼한 맛이다. 새가 먹는 열매는 사람이 먹어도 문제없다. 팥배나무 열매는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라 일찍 사라지는 열매 중 하나다. 반면 피라칸타·남천 열매는 맛이 없어서인지, 아직 새들에게 낯설어서인지 초봄까지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창덕궁 후원 팥배나무 열매.

 

보라색 보석 같은 열매가 송이송이 달린 나무도 많았다. 작살나무였다. 요즘 산에서 가장 인상적인, 가장 예쁜 열매가 작살나무 열매가 아닐까 싶다. 작살나무라는 독특한 이름은 이 가지가 작살(물고기를 찔러 잡는 도구)처럼 가운데 원줄기 양쪽으로 두 개씩 마주 보고 갈라져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창덕궁 후원 작살나무 열매. 가운데 위쪽 새부리처럼 생긴 것이 겨울눈이다.

 

이 보라색 열매를 산에서도 만날 수 있고, 공원이나 화단에서도 볼 수 있다. 산에서 만나는 것은 작살나무, 공원이나 화단에 심은 것은 대개 좀작살나무다. 보통 작살나무는 꽃(열매)자루가 잎겨드랑이에 붙어 나고, 좀작살나무는 잎겨드랑이에서 좀(5mm 정도) 떨어져 나오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작살나무는 좀 성글게, 좀작살나무는 좀 더 다닥다닥 열매가 달린다. 그러나 이 방법은 좀 애매한 경우가 많다. 가장 확실한 것은 줄기 끝 등에 달리는 겨울눈 모양을 보는 것이다. 작살나무는 이 겨울눈이 새부리 모양으로 달리는데, 좀작살나무는 작게 동글동글한 구형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산사나무 열매도 탄성을 절로 나올만큼 예뻤다. 열매에 있는 하얀 반점들도 귀엽다. 산사나무는 봄에 피는 꽃보다 가을에 익는 붉은 열매가 더 인상적인 나무다. 열매에 배꼽이 남아 있고 잎이 깃모양(우상·羽狀)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 산사나무 열매.

 

후원 탐방은 입구에서 출발해 부용지, 연경당, 존덕정 등을 지나 돈화문까지 창덕궁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단풍 등 가을 풍경과 기와·단청 등 궁궐 모습이 어우러지는 운치를 즐기는 것이 요즘 후원 탐방의 묘미다. 가을과 궁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부용지였다. 탐방로 끝에 있는 향나무 옆에서 바라본 창덕궁도 정말 멋있다. 이 향나무는 높이 12m, 뿌리 부분 둘레가 5.9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로, 수령 750년으로 추정하는 나무다. 가지들이 받침대에 의지해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창덕궁 향나무. 추정 수령 750년인 천연기념물이다.

 

회화나무는 아직도 푸른 잎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창덕궁 입구 돈화문 근처에 있는 회화나무 무리는 천연기념물이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창덕궁을 다시 지을 때 심은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회화나무는 서원을 열면 임금이 하사한 나무로, 학자나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서원이나 고궁 등에 회화나무 노거수들이 많다. 나무 모양이 좋고 험한 도로 환경에서도 잘 버텨 요즘엔 가로수로도 많이 심고 있다.

창덕궁 회화나무 무리. 돈화문을 지나자마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