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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왜 나이프 움켜쥐었나…최후의 만찬, 예수의 그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2. 28. 17:12
 

베드로는 왜 나이프 움켜쥐었나…최후의 만찬, 예수의 그말

[백성호의 예수뎐]

중앙일보

입력 2022.02.26 05:00

 

 [백성호의 예수뎐]

 

예수의 마지막 밤,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저녁이었다. 유월절 저녁부터 7일간은 무교절(無酵節)이다. 무교절의 ‘교(酵)’는 ‘누룩을 넣어 삭히다’라는 뜻이다. 무교절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 빵’을 먹는다. 유대인들은 무교절 첫날과 마지막 날에 모여서 예배하고 함께 음식을 먹었다.

예수는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날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그날 저녁은 유월절 식사라고 알려져 있다.

 

예수가 12사도와 함께 음식을 나눈 최후의 만찬도 그랬다. 그날의 만찬은 유월절 저녁 식사로, 유대 달력으로 1월 14일이다. 요즘 우리가 쓰는 태양력으로 따지면 3월이나 4월에 해당한다. 그러니 최후의 만찬은 봄날 저녁에 있었던 셈이다. 물론 이스라엘의 봄볕은 한국의 한여름만큼 따갑지만 말이다. 그러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달도 3월이나 4월이었으리라.

(39)‘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왜 동요했을까

 

제자들이 예수에게 물었다. “파스카(유월절)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예수가 답했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물으십니다”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마가복음 14장 13~15절)

집주인은 누구였을까. 예수를 아는 인물이었겠지. 예루살렘 도성에 집이 있었으니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을 터이다. 그는 왜 예수를 후원했을까. 유월절 저녁 식사 자리를 왜 자신의 집에다 차려주었을까. 그는 어디서 예수를 처음 만났을까. 어쩌면 시장 모퉁이를 지나다가 우연히 예수의 설교를 들었을까. 그래서 자신의 묵은 상처를 씻어 내리기라도 했을까.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졌던 장소다. 마가의 다락방도 같은 공간이라고 한다.[중앙포토]

최후의 만찬을 가졌던 공간에 새겨져 있는 이슬람의 문자와 문양. 예루살렘이 이슬람에 정복됐을 때 이 곳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창에는 이슬람 문양이 보인다.ㄷ [중앙포토]

 

저녁때가 되자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그들은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 이집트 노예 시절 유대인들이 먹었던,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었다. 그 빵에는 ‘그때 그 시절’을 잊지 말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저녁 식사에서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 구운 양고기와 포도주 등을 먹었다. 예수의 식탁에도 그런 음식들이 놓이지 않았을까. 식사 도중에 느닷없이 예수가 말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가복음 14장 18절)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어땠을까. 그들의 표정은 어땠을까. 복음서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그들은 근심하며 차례로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마가복음 14장 19절) 최후의 만찬을 했다는 이층 방. 그 구석에 가서 나는 쪼그려 앉았다.

2000년 전 이곳에 열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예수, 나머지 열둘은 사도였다. 그 장면을 그리며 눈을 감았다. 예수의 말을 듣고 제자들은 왜 근심했을까. 왜 차례대로 돌아가며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을까. 그들은 무엇이 불안했을까.

예수는 최후의 만찬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만약 지금이라면 어떨까. 이 자리에 예수께서 몸소 나타난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방에 서 있는 순례객들을 향해 “너희 가운데 한 사람, 이 방에 있는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담담하게 그 말을 듣고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예수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아니면 성서 속의 사도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일까. 저마다 걱정에 차서 예수에게 묻게 될까. “행여 그게 저는 아니겠지요? 설마 저는 아니겠지요? 제발 아니라고 말씀해주세요. 그게 저는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예수에게 매달리게 될까.

눈을 감은 채 나는 물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예수를 향해 나는 뭐라고 말을 했을까.’ 성경에 따르면 식탁에 앉아 있던 제자들이 크게 동요했다. 그들은 근심하며 차례로 물었다. 왜 그랬을까. 찔리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자신일 수도 있다는 걸 자신이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에게 물었을 터이다. “그게 나는 아니겠지요?” 스스로 걸리지 않았다면 굳이 그렇게 물을 필요도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제자들의 보이는 다양한 동작과 표정이 생동감 넘치게 그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면 그 장면이 실감 나게 되살아난다. 제자들은 세 사람씩 무리 지어 앉아 있다. 욱하는 성격의 베드로는 예수 쪽으로 고개를 쭉 빼고, 오른손에는 식탁에 놓여 있던 나이프를 쥐고 있다. 베드로가 어깨를 짚은 사도 요한은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다. 그 둘 앞에 돈주머니를 손에 쥔 가롯 유다가 식탁을 짚은 채 예수를 쳐다보고 있다. 다들 “나는 아니겠지요?”라고 할 때 유다만 속으로 “어떻게 아셨죠?” 하고 묻는 얼굴이다.

식탁의 왼쪽 끝에도 세 사람이 있다. 안드레는 두 손바닥을 펼친 채 깜짝 놀라고 있다. “세상에 그런 일이!” 하는 표정이다. 가운데 앉은 야고보는 베드로의 등을 치고 있다.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왼쪽 끝에 앉은 바돌로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있다. 격분한 모습이다.

예수 오른편에도 세 사람이 있다. 도마는 한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빌립은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는다. 둘 사이에 앉은 야고보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식탁 오른쪽 끝의 세 사람은 마태(푸른 옷)와 다대오, 시몬이다. 그들도 서로 묻는다. “대체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지?”

최후의 만찬을 나눈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성 건너편에 있는 올리브 산으로 갔다. 사진에서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이 올리브 산이다. [중앙포토]

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을 다시 들여다본다. 예수와 12사도. 그림 속에는 정말 13명의 인물만 있을까. 안드레와 베드로의 사이에, 사도 요한과 예수 사이에, 빌립과 마태의 사이에 우리도 앉아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예수에게 묻고 있지 않을까.

“그게 저는 아니겠지요? 설마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말이다.

〈40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토요일 연재〉

짧은 생각
인도로 성지 순례를 가는 불교 신자들이 꽤 있습니다.
인도 북부 지역에 퍼져 있는
석가모니 붓다가 태어난 곳, 깨달은 곳, 법을 펼친 곳, 열반한 곳 등을
찾아가는 순례입니다.

이런 순례 여행에 가장 적합한 시기는 겨울입니다.
인도는 3월만 돼도 태양이 작열하기 시작합니다.
5월이면 한낮 기온이 40~50℃를 훌쩍 넘어갑니다.

더구나 인도 여행을 할 때 타는 버스는
한국 등에서 타다가 팔린 오래된 중고차가 많습니다.
에어컨 성능이 모자랄 때도 많고,
심지어 여행 중에 에어컨이 고장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차창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지 않겠나 싶죠.
막상 창을 열면 더 뜨거운 바람이 ‘훅’하고
버스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버스 안은 순식간에 한증막이 됩니다.
그래서 인도 여행을 할 때는 시기를 잘 선택하는 게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떠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사막 지대입니다.
인도처럼 겨울이 가장 적합한 순례의 계절입니다.

만약 이 시기를 놓치면 작열하는 태양을 감당해야 합니다.
물론 인도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선진국입니다.
버스나 숙소 등 온갖 사회적 인프라가 잘 꾸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겨울을 지나 3~4월에 맞는 한낮의 햇볕은
따갑기 짝이 없습니다.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저녁 식사였습니다.
유대 달력으로는 1월 14일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쓰는 태양력으로 계산하면
3월이나 4월에 해당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아, 예수님은 봄에 돌아가셨구나”
“좋은 날씨에 돌아가셨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3월 혹은 4월에는 태양이 너무 강합니다.
낮에는 순례 여행을 하며 걸어다니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가진 마지막 날 밤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최후의 만찬, 그 이튿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두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던 시각은 오전 9시였습니다.
마가복음(15장25절)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고
정확한 시각이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후 3시까지 못이 박힌 채,
무려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3월 혹은 4월에
이스라엘에서 내리꽂는 한낮의 강렬한 뙤약볕이 보태집니다.
그러니 그 고통이 훨씬 배가됐겠지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묵상할 때,
저는 그 위에 쏟아지는 이스라엘의 태양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채,
타들어 갔을 예수의 깊은 목마름도
함께 말입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