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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거리가 탑골공원에 진 빚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5. 21. 11:44

서울 종로 거리가 탑골공원에 진 빚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입력 2021.05.21 03:00

 

문화거리 인사동 길을 산책 삼아 걸었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 무렵이면 달아 놓는 연등들은 전통거리의 운치를 한껏 더해준다. 하지만 이런 문화유산의 혜택을 누리는 것도 역으로 계산하면 옛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유산이란 보존 전승해야 할 책임이 뒤따르는 까닭이다. 연등축제는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했고 2020년 12월 1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신라 이래 천년 이상 내려온 문화유산에 대한 의무를 후손들이 힘을 모아 일정 부분 갚은 것이라고 하겠다.

/일러스트=이철원

인사동(仁寺洞)은 인근 몇 개 마을이 합해지면서 대표 격 동네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지명이라고 한다. 뒷글자 사동은 대사동(大寺洞)이다. 우리말로 댓절골이라고 했다. 큰절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 때는 흥복사(興福寺)로 불렀고 조선시대에 원각사(圓覺寺)로 바뀌었다. 이후 사찰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탑은 그대로 남았다. 댓절골도 덩달아 탑골이 되었다. 그 이름자는 인사동 길 끝머리의 ‘탑골공원’으로 계속 이어졌다. 일종의 문화적 부채 의식 때문이다. 느긋한 걸음으로 담장 밖 둘레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탑골공원은 조선시대 연등회 기록이 남아있는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67년(세조 13년) 음력 4월 8일 ‘석탑을 완공하고 연등회를 베풀면서 낙성했다(圓覺寺塔成 設燃燈會以落之)’고 했다. 준공을 한 달 앞둔 3월 일본 승려 도은(道誾)이 조정을 찾아왔다. “중국 사찰을 두루 관람하였습니다만 듣건대 원각사 탑이 천하제일이라 하니 친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僧遍覽中原寺刹 聞圓覺寺塔爲天下最 願今日觀賞)”라는 청탁을 했다. 공개도 하기 전에 이미 이웃 나라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명품이었다. 모르긴 해도 도은 스님은 사신의 일원으로 따라 왔을 것이다. 이튿날 탑을 감상하도록 배려했다. 이제 12m 높이의 대리석 10층석탑(국보2호)은 자연적인 풍화와 함께 비둘기 떼의 배설물로 인한 부식 문제를 해결하고자 1997년 유리 보호각을 씌웠다. 현대적인 기술을 빌려 문화적인 빚을 얼마간 상쇄했다고 하겠다.

 

100여년 전 종로거리 연등축제 행렬도 그 출발점은 원각사 터인 탑골공원이다. 이곳에서 꽃으로 장식한 아기부처님께 관불(灌佛·이마에 물을 붓는)의식을 거행했다. 저녁에는 흰 코끼리상을 선두로 종로 을지로 광화문을 한 바퀴 도는 제등(提燈 등을 손에 들다)행진을 했다. 조선 초기 불교의 본사(本寺·중심 사찰)역할을 하던 원각사는 연산군 때 문을 닫았지만 1910년 인근에 조계사가 창건되면서 연등회 등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연등길을 따라가니 이내 제야의 종으로 유명한 보신각 누각 앞이다. 종로라는 길 이름도 구(區) 이름도 종각이라는 지하철 역 이름도 모두 종루(鍾樓)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달렸던 종은 세조 당시 주조했던 원각사 대종이다. 1985년 현대식 종으로 바뀌기 전까지 그 소임을 다했다. 이래저래 종로 지역은 오늘까지 원각사에 적지 않는 문화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조선의 김종직(1431~1492) 선비는 ‘점필재집(佔畢齋集)’에서 당시 종로 거리의 관등(觀燈·등불 즐기기) 풍습에 대해 기록을 남겨 두었다. 인도에서 성인이 탄생하신 것을 축하하기 위해 조선 땅은 연등회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픈 몸 때문에 축제에 참가하지 못한 채 남산에서 바라보며 상심한 마음을 달랬노라고 적었다. 당신의 대리 만족을 위해 썼던 그 문장은 600년 후 연등회 자료를 찾던 뒷사람에게 적지 않는 문화적 기여가 되었다. 더불어 필자도 점필재 선생의 글 인용이라는 숟가락 얹기를 통해 덤으로나마 그동안 종로에서 누린 문화 혜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빚 갚는 기회가 되었다.

날이 밝도록 이끄는 이를 뒤따라 연꽃 등을 들고서 춤추며 놀고(徹曙魚環蓮焰舞)

하늘 가득한 별들은 휘장 너머 연등 불빛과 얽히면서 더욱 밝아라.(滿天星繞彩棚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