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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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집 1993

눈사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8. 19. 11:08

눈사람

 

1.

 

아그리파를 그리는 소녀의 손끝에서 내리는 눈

빛과 그림자를 한 번 두번 세 번 덧칠을 하며

4B 연필의 심지 속에서 태어나는 눈

스스로 완성되지 않으며

온전히 그윽한 심연만을 보여주는 눈

 

2.

 

창 박에 내리는 눈이

마음속까지 소복이 내려서

걷지 않아도 가닿는  그 집 앞

봄날이 올 때까지 서 있는 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 날까지

오래 기다리며 사는 일

 

3

 

애들아, 그건 천사의 날개가 아니란다

밤마다 몰래 버린 치욕과 불순한 공기들이

위장을 하고 다가오는 그건 악마란다

눈병을 일으키는 강산성 눈,

뼈를 녹이고 탈모증을 유발하는 

불행은 눈처럼 다가오는 것이란다

 

4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흰 것만을 숭상해 왔다

아,너무나 희어 속이 보이지 않는

더럽혀질 수 밖에 없는

 

그대 대 문 앞에 서성거리는

눈사람을 조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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