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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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집 1993

鬪牛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8. 30. 17:01

투우鬪牛

 

그랬었지. 붉은 천 펄럭이는 깃발을 향해

무조건 돌진하던 철 모르던 시절도 있었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불끈 코힘을 내뿜으며 오만과도 같은

뿔을 믿었지

그때는 화려했었어, 흙먼지가 일도록

터져나오는 함성과 박수갈채만 있으면

두려운 것이라곤 없었지

신기루 같았어

온톤 환각제뿐인 붉은 깃발은 사랑이 아니었어

사랑 뒤에 숨은 그림자, 그것은 분노였어

깨달을 새도 없이 사납게 길러진 우리,

풀 대신 피 냄새를 맡으며 자라난 우리

밭갈이나 달구지를 모는 대신

원형경기장에 길들여진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

고슴도치처럼 소심하게

등에 꽂힌 무수한 창칼에도 아픔을 모르는 채

또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늙은 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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