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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시집 『연인, 있어요』 :처용 아내와 섹슈얼리티 Sexuality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4. 20. 20:52

처용 아내와 섹슈얼리티 Sexuality

나호열(시인)

 

- 모든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서 사용하지 않도록 행위 하라- 칸트 Kant

 

스스로 처용 아내임을 선언하면서 90년대 시단에 등장한 정숙 시인은 처용 處容을 모티브로 한 시와 시극, 나아가서 SNS를 통한 호작질 퍼포먼스를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보여 주었다. 이번의 여덟 번째 시집 연인, 있어요는 시인의 삼십 여 년의 시업을 집약하면서 시인이 집요하게 추구해온 시의 주제의식을 보다 분명하게 밝히는 시집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부연하면 남성중심사회의 상징과 같은 처용과 역신 疫神, 역신과 동침한 처용의 아내,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불구 不具로 남아 있는 성의 통념을 가로지르면서 해방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세태의 풍경이 오롯이연인, 있어요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해방이후 전통적 유교사회에서 태어나고, 산업화 시대를 지나 첨단의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탈인간화의 21세기에 인생의 정점에 이른 여성으로서의 시인은 끊임없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회의 懷疑와 가치 정립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관습에 길들여져 가부장적 권위에 복종하는 태도를 화해의 몸짓으로 회피하는 길을 가지만, 소수의 여성들은 주체적 인격을 갖춘 존재로서의 여성임을 자각하고 부당하고 부조리한 관습의 폐해에 맞서는 길을 걷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페미니즘 feminism으로 통칭되는 여성주의, 혹은 양성평등 兩性平等운동은 인류사적 발전의 점진적 사회구조 변화와 맞물리는 까닭에, 기약 없는 완성을 향해가는 도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째든 유교적 전통사회에서 태어나고 가부장적 권위에 학습된 채 삶을 통과한 세대로서 처용으로 상징되는 남성중심의 사회질서에 의문을 던진 정숙 시인은 마침 동시대에 여성주의를 표방한 여타의 여성 시인들과는 다른 궤도 軌道를 지니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남성중심의 권위주의에 반발하고 정치사회적 측면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확보하는데 주력했던 다른 시인들과는 달리 정숙 시인의 여성주의는 을 중심으로 한 성 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모성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주의의 위계를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정숙 시인의 여성주의적 시관 詩觀은 몸과 정신의 가지런한 통제를 자율 自律함에서 이뤄지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다.

 

먼저 처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익히 알다시피 처용은 신라향가 처용가를 통해서 전승되어오는, 사실이거나 아니거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이 처용을 모티브로 한 서정주의 처용훈이나 김춘수의 처용단장 3수를 필두로 몇몇 시인들의 시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정숙 시인과 같이 지속적으로 처용을 다루는 시인은 없다.

처용은 관대함의 상징이지만 오늘날의 젊은 시인들에는 삶에 일그러지고 왜소해진 영웅(임재정의 처용아재, 진수미의처용단가 참조)으로 인식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숙 시인에게 처용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존재이다. 밀서密書와 검은 봉다리에 등장하는 어느 거대한 산’, 과 그 시에 잔머리 묶어 놓지 말고 /소주 몇 병 넣어 살짜기 밤에 찾아가라잉?’ / ‘그렇게 상간녀上姦女가 되어야 잔칫상 받지!’라고 점잖은 충고를 하는 시인, 밤늦게 돌아오는 딸에게사랑채에선 가위가 긴 머리카락 잘라버리겠다 / 으르렁, 봄밤을 싹둑 잘라버리는 (향촌연화1)아버지 등, 정숙貞淑을 임의대로 바꿔치기 할 수 있는 권력은 모두 처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불편한 진실 앞에서 기꺼이 처용의 아내를 분신 分身으로 삼은 시인의 속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 속에 한 여자, 내가 보인다
펑퍼짐한 엉덩이, 아랫배 볼록
가슴은 어느 낙원처럼 젖이 흐르고
키는 짜리몽땅한 여자가
비너스라 추켜세우는 무리들 안에 웃고 있다
나체의 어느 꽃무늬도 가리지 않은

    

  - 「울산 반구대 암각을 읽다1 부분

 

시인은 울산 반구대 암각에서 문득 자신의 정체를 발견한다. 자연그대로의, 가식이 없는, 수치스럽지 않은 나체에 무슨 잘못이 있나? 관음증 觀淫症을 위장하는 외설猥褻은 누가 만든 울타리인가? 이러한 날것의 의식으로부터 시인은 처용 아내로 빙의 憑依되면서 날마다 장구장이들의 소란에 끌려 다니느라 떨림을 모르는 제 무딘 감각이 치를 떨고 있습니다. 처용단장님께 처용아내가마지막 부분같은 제도와 관습에 무지(?)한 신내린 몸의 떨림과 한지는 아프다고 몸서리치고 난 막무가내로 꾹꾹 눌러 채색으로 붓질하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처용무 추던 아낙네, 내가 피투성이 되어 쓰러져 있네 - 미투전문와 같이 그 날것의 떨림이 내면의 추문 醜聞이 되는 자아를 목도한다. 오로지 처용의 안녕을 기원하는 존재(처용을 위해참조), 그리하여 화간녀 和姦女의 억울한 혼령이 되어버린 존재(시인의 시화참조)가 길항하는 여성 일반의 심리적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남성과 여성이라는 모순개념을 부수려고 해도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경계를 넘어뜨릴 수는 없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가족단위로부터 국가에 이르는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일부다처제에서 일부일처제로 변화하는 것 또한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일반화하는 증명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후손을 남기려는 욕망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차이가 없지만 신체적 특성은 판이하게 다르다, 간단히 말해서 자손을 남기는데 있어서 남성보다 여성은 훨씬 불리하다. 최근의 부모로서의 남성의 투자이론으로 불리는 MPI이론(Male Parental Investment)은 남성과 여성의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의 양극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남성은 젊고 정숙한 여성을 선택하려고 하고, 여성은 나이보다는 남성의 경제적 부양능력과 신뢰에 선택의 기준을 둔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시 한 편을 읽어본다.

 

먼 곳만 바라볼까

대부분의 남자는


담장 꽃도 새도 먼 나라 바람향을 물고 있는데
시선이 깨금발로 서서 먼 산만 바라본다
어리광부리듯
아직 절망의 저녁 숲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발렌타인 몇 잔이
신비한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며
새만금의 고래 꼬리를 잡아야한다며


여자는

당장 꽃밭의 벌레도 잡아줘야 하고
잡초도 뽑아야하고, 물도 뿌려줘야 하고
새만금에 달과 별이 수성 못에 그녀들과
같다고 되풀이 하다가
사례 들어 가슴을 마구 치고 있는데

                          - 먼 곳 범어산 가는 2전문

 

남자는 웅지를 가져야 하고 여자는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교훈으로 급훈으로 교실에 걸려 있던 때의 이야기가 사실은 지금도 유효한 표어로 인식되기도 하지 않은가? 허울뿐인 남성의 우월의식은 여성에게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 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늑대와 여우라 여기면서도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측면에서연인, 있어요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인이 설정한 처용 아내가 갖고 있는 심리적 이율배반의 고뇌가 우리의 현대사에 투영된 여성의 변화된 의식과 사회적 관념에 어떻게 연관을 갖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사회적 질서에 편입된, 아내, 어머니라는 외부적 의무로 주어진 한 축과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몸의 성징 性徵이 일으키는 파동의 축의 부딪침을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니크하게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6,70년대의 스무살은 걸었다 / 말없이, 손도 잡지 않은 첫사랑을 경험하고, ‘여름 소나기 내리던 날 뒤란에서/ 연애편지가 너무 무서워 태워버린다시 사춘기를 지나자마자 결혼을 맞이하면서 아들 못 낳으면 어쩌지?’/ 뭐 좀 안다는 듯 툭, 내뱉는 내 말에/ ‘딸은 가마타고 떠나기 전 마굿간을 단디 치우는가 보고/참을 인자 천 번을 쓴 뒤에 보낸다던데......목단꽃은 지지 않는다에 보이는 남아선호사상의 잔재와 부권에 대한 맹종. 그 이후 어머니가 되어 청각장애인 아들 두 명에게 마술을 가르친 어머니/ 맏아들이 무대에서 자막을 펼친다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술사, 어머니 정 인숙 / 고맙습니다 마술사를 위해에 보이는 신산 辛酸한 어미의 세월을 지나고 불현듯 맞이하는 제 2의 사춘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이 지닌 섹슈얼리티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된다

 

섹슈얼리티를 이 글의 표제로 삼긴 했지만 이 용어의 외연은 너무 넓다. 생물학, 심리학, 성 과학에서 다루는 정의는 관점에 따르다. 이 글에서는 섹슈얼리티를 성적 행동, 성적인 현상, 성욕, 또는 성본능이라고 요약한다. 오늘날과 같은 개방사회에 있어서도 성에 관련된 담론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점잖치 않은 추문으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그러하기에 용감한 아방가르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은 몇몇 시인들이 곱지 않은 성적 용어나 일상어를 사용함으로서 세상의 이면을 야유하고 조롱한 적이 있지만 시인 자신이 시 속의 페르소나가 되어 등장하는 경우는 아마도 연인, 있어요가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은, 특히 시는 사실에 바탕을 둔 허구Fiction이다. 시가 구현하는 리얼리티를 얼만큼 보편적 사실로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시의 성과가 판가름난다고 할 때, 연인, 있어요에 실린 다수의 시들은 인간 일반에게 잠재되어 있는 섹슈얼리티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멋진 통로가 될 것임이 틀림이 없다. 누구에게나 성본능은 존재한다. 그 본능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소멸하지 않고 몸 속에 유령으로 흔들린다. 그리하여 시인은 그 본능이 내연남이며 그 본능이 살아있는 나의 실존임을 이렇게 고백투로 말한다.

 

찬란한 그늘이면서 고질병인

내 색의 골짜기에 숨겨둔 내연남, 그는

담쟁이가 미루나무 등걸에 살며시 발을 걸치는 때

느티나무가 달빛으로 옷 갈아입는 시간

또는 초승달이 서해로 안기는 그 순간에도

시시로 찾아와 달콤하거나 쓰리거나

뭔가 속삭여주길 나는 애 태운다

                          

   - 연인, 있어요부분

 

물론 그 성 본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성이라는 대상이 필요하며, 그 결합이 본능에만 충실해서는 안될 것이며 대상과의 교감과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쏭쏭 썬 파를 올리브유에 볶는다

파향 가득한 프라이팬에

옷을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손질한 싱싱한 오징어를 밀어 넣는다

고추장 고춧가루 깨소금 그리고 오이 당근 양배추 등

여러 채소들이 같이 어울리기 위해 뜨거워진 양념 기꺼이 덮어쓴다

각자 끓어오르면서 야동의 신음소리 커진다

커질수록 자신의 맛과 향을 더 내어놓는다

가스불은 그들의 절정을 위해 파란 불꽃을 한껏 피워낸다

도저히 마음 모을 수 없는 불과 물, 기름이 서로 사랑하면

모두가 이다지 맛있는, 향기로운 시간이 된다는 걸

칠순이 다 되어 깨닫다니!

하물며 파도 잘게 썰리어 뜨겁게 달구어지면 향을 내뿜는데

불이 아무리 뜨거워도

평생 달구어지지 않는 나를 석녀라, 여걸이라 자랑 삼았으니

빈 껍질과 은행열매 같은 구린내만 남을 수밖에

                                   

                                                       - 화간을 엿보다부분

 

화간和姦은 뜻 그대로 서로 눈이 맞아 치루는 성행위이다. 그리고 사회통념상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기도 하다. 시 속의 화자 話者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물과 불과 기름이, 채소와 생선이 서로 섞이면서(야동의 신음소리로)새로운 맛을 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칠순이 되어서야 받아들이는 아픔이기도 하다. ‘평생 달구어지지 않는 나를 석녀라, 여걸이라 자랑 삼았다고백 속에는 우리의 현대생활문화가 담지하고 있었던 유교윤리의 강고한 관습에 순응했던 한 세대의 슬픈 생활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다룬 시자라풀을 살펴보기로 한다, 화간을 엿보다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섹스는 상호교감의 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라풀은 자라풀이라는 수생식물의 생태를 빌어 존중받지 못하는 여성의 성 본능과 단지 성욕 해소의 도구로 여성을 대하는 뭇 남성들의 행태를 야유하는 시이다. 오늘날 세간에 오르내리는 성추문들은 매매춘, 성폭행, 도촬 盜撮 같은 남성들에 의해서 벌어지는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며 여전히 우리사회를 횡행하는 저주이다. 자라풀과 같이 연약하고 경제적 약자인 여성들을 착취의 수단으로 삼는 행태에 대한 깊은 슬픔이 그려져 있다.

 


늪에서 손에 손잡고 자란 고뇌의 수풀
무자비한 삶의 무게가
모여 하얀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허나 뿌리가 없어 그냥 위에 있어야하는
편안히 앉아 의자 없어도 곧 하늘에 닿을 듯
키우는 나무도 하늘도 부럽지 앉습니다
갇힌 물결 따라 흐느적일 뿐인데
그의 손길이 거칠어지며 자꾸 시간을 깝칩니다
연인의 속에 꿀 풀이 숨어 있어 설렌다며
그저 물위에서 나부끼는 것만 보고 있으니

아래 깊이 들어가서 찾아야지
바보

                            

- 자라풀전문

 

 

한국 현대시가 다루는 성의 문제는 대체로 성에 관련된 어휘의 활용, 오늘날 범세계적으로 번진 미투 운동에 힘입은 성의 갈취에 대한 폭로, 그리고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몸을 기반으로 한 성적 본능과 그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일련의 방향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정숙 시인의 연인, 있어요는 한 생애에 걸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처용으로 상징되는 억압의 주체이었던 권위주의와의 화해의 가능성을 탐색했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정신의 하위개념으로 인식되는 이야말로 종족번식의 매커니즘에서 벗어나 인간 상호간의 교감을 쾌락으로 이끌어가는 출발점이며, 이 쾌락이 기계적이 아닌 자율적 선택과 자유의지에서 발현될 때 인간의 성숙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 정숙한 시인이 정숙시인 것이다.

 

연인, 있어요는 우리가 슬그머니 뒷 담화로 남겨두었던 성적 담론을 과감히 들춰내어 고백하고, 야유하고 한탄하면서 처용 아내로서 살아온 70년의 세월이 가르쳐 준 삶의 슬프고도 기쁜 이야기들을 질펀하게 풀어낸 한국현대여성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시집으로 저리매김할 것으로 믿는다. 이 글에서 미쳐 다루지 못한 시들은 어설픈 관조의 흉내내기가 아니라 자신의 여성성을 투철하게 응시하면서 얻어낸 아포리즘으로 가득하다는 덧붙이면서 . 그 중 한 편의시를 옮겨본다.

 

 

놀라워라!

 

넌 오늘도 내 생의 하늘을 밀어올리고,

 

허공을 번쩍 들어

 

세상을 열어 볼 수 있도록 하는 구나

 

                                        - 눈꺼풀전문

 

 

, 이 글을 마치면서 궁금한 것이 있다. ‘연인, 있어요연인 있어요?’ 로 읽어야 하나? 아니면 연인 있어요!’로 읽어야 하나?

 

 

나호열/ 1953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했으며, 월간문학(1986), 시와시학(1991)으로 등단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시집으로 안녕, 베이비박스(2020),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2017) 19 , 현재 도봉학연구소장, 한국탁본자료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