跋文
화양연화 花樣年華를 꿈꾸는 푸른 절망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1.
몇 년 전인가?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구슬픈 대금 大笒에 소리를 얹고 있었다. 베틀에 걸려 실이 되어가는 가녀리고 질긴 울음이 맺혀있는 노래는 참으로 청아했다. 우연히 마주친 그 생소한 노래가 시조창 時調唱, 멀리 있는 정인 情人에게 보내는 그리움을 기러기에 전하는 여창지름이고 그 시조창의 가객 歌客이 시인 김규리라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이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이웃 지방에서 태어나고 시를 쓴다는 이유로 동향 同鄕의 여러 모임에서 마주칠 수도 있었을 것이나 이제야 시절인연으로 시집詩集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소중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2.
김규리 시인의 시집 『푸른 절망』은 『나도 가끔은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2002), 『붉은 여름을 훔치다』(2015)에 이은 세 번째 시집으로 시단에 나온 지 이십 여 년을 넘은 시인으로는 과작 寡作의 산물이라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뜻깊은 시집이 될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시인이 등단한 90년대 후반부터 첫 시집을 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두 번째 시집을 내기까지의 시간과 이순 耳順을 넘어선 이번 시집 사이에는 시인의 겪었던 의식의 변화가 뚜렷이 감지되는 변별성이 확인을 할 수 있다. 이 번 시집 『푸른 절망』에 깔려 있는 내포제 시조가 갖고 있는, 삶을 아우르는 정형을 띄고 있는 슬픈 계면조界面調 가락과 그 슬픔을 이겨내려는 밝은 우조羽調 의 가락이 교차하는 특별한 관조 觀照의 이면에는 이전 시집들이 보여주고 있는 우리나라 여성 일반이 갖고 있는 삶의 분투와 그 분투로부터 거둬들인 치열한 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원망이라든가, 체념이든가 하는 좌절된 의식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과 사람, 그로부터 빚어지는 사건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화해할 수 있는 공력이 발화되는 지점이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한 까닭으로 『푸른 절망』을 다루어보기 전에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표제 시를 음미하는 것이 시집 『푸른 절망』을 깊이 감상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먼저 첫 시집의 「나도 가끔은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를 읽어 보기로 한다.
하염없는 이 슬픔
crazy love ,,,
그 시절
격정적인 그니가
꽃 한 송이 달랑 흔들며
오디오에서 걸어나와
속살을 보이고 간다
창문 밖
맥없이 떨어지는
꽃잎
뒤흔들고 싶은
청춘의 밤이
말없이 지나가 버리면
안되잖아
잠행가치가
불륜을 꿈꾸게 한다
그래,
오늘밤은 free sex로
바이러스를 쫓아내자
나도 가끔은
불륜을 저지르고 싶단 말야
씨팔
- 「나도 가끔은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전문
다소 도발적으로, 불편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이 시는 청년기에 가졌던 삶에 대한 로망 – 이를테면 낭만적인 연애, 경제적 풍요와 스위트 홈과 같은 – 이 좌절되어가는 분노와 그럴듯한 가부장적 사회의 허울에 무기력해지는 본질적 욕망의 분출을 표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에서 표현된 잠행가치에 대해 ‘사람의 내부에서 일탈행위를 부추기는 가치’라고 설명을 붙여놓기도 했지만 이제 막 중년으로 들어선 어느 여인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끝내 ‘미친 사랑 crazy love’이 가져오는 구속 拘束에 항거할 수 없음에 그저 속으로만 욕할 수 없는(씨팔) 상황이『나도 가끔은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의 얼개를 아우르는 구조적 특성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붉은 여름을 훔치다』는 바야흐로 갱년기에 들어선 여성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심리를 묘파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갱년기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변화하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사람에 따라서 삶 전체의 쇠락 衰落을 느끼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꾸리기 위한 출발로 보는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하겠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 변화에 대한 당혹감은 어쩔 수 없는 심리적 변화일 것이다. 시 「붉은 여름을 훔치다」 의 화자 話者는 삶의 가을을 향해 가는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청춘의 낭비에 후회하고,‘시도 때도 없이 울컥 치미는 분노가/ 화병으로 번져가 / 불면으로 추락’하는 참담함에 괴로워한다. 이와 같은 직설적 발언은 시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동감 同感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누가 말했는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 怒하지도 슬퍼하지 말라’고. 그러나 이 그럴싸한 잠언은 ‘나를 속인 삶’에 대해 슬퍼하고 힘이 다할 때까지 분노하고 난 후에야 가능한 선물이다.
여자의 사십 대와 오십 대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늘, 그 사이로 나 있는 문으로 들어간다
열정의 거추장스러움이 사치가 아니라
본능이라 생각하며
다소 거만한 사십 대를 낭비하던
그 때만 하더라도
풋풋한 젊음이 좋았는데
인생의 여름을 지나
이제 구월의 막바지를 지나고 있는 느낌이
가끔
아직은 하면서 착각하는 사이에
휙휙 무엇인가가 지나간다
유통기한 지난 폐선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울컥 치미는 분노가
화병으로 번져가
불면으로 추락한다
가을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거기
계절상
여름은 이제 시작인데
인생의 여름 곁에 서성이다 보면
여름을 닮아갈지 몰라
- 「붉은 여름을 훔치다」 전문
아마도 이 두 번째 시집이 관통하는 이 시기는 김규리 시인의 생애에 있어서도 가정적인 안정 – 양육과 같은 – 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각과 성취욕이 늘어나면서 대외 활동이 점증되었던 시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시인의 술회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컸으나 평생을 시조창에 열정을 바친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지 못하고 내포제 시조를 전수 받아 충남 무형문화재 17호 이수자, 사범으로 활동하면서 우리의 옛소리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 진력을 다하였다고 하니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의 긴 침묵이 김규리 시인의 생활사와 맞물리는 국면에 처해 있던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시집 『나도 가끔은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와『붉은 여름을 훔치다』는 이번 시집 『푸른 절망』을 완성하는 필요충분조건인 셈이다. 시인에 따라서 현실적인 체험과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서정 抒情을 중시하기도 하고, 현실적 체험을 기반으로 하되 보다 상상력 想像力에 의존하면서 새로운 시법 詩法을 구현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아마도 김규리 시인은 전자 前者에 가까운 시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김규리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보편적 여성의 생활사 生活史이면서, 사라져가는 옛것 – 시조창-을 보듬고 가여워하는 마음이 이순 耳順이라는 삶의 성숙기에 어떻게 버무려지고 승화되는 지를 보여주는 특이점을 보여주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3.
김규리 시인의 첫 시집 『나도 가끔은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를 평하면서 박진환 교수는 “아이러니는 반어, 역설, 풍자, 펀과 같은 여러 수사 기법을 통칭하는 말인데 김시인은 자신의 시에 아이러니를 즐겨 차용하고 있다”고 하였음을 기억한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반어법 Irony은 역설逆說Paradox, 풍자 諷刺Satire, 펀fun과는 사용법과 해석에 있어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또한 이러한 아이러니의 차용이 김규리 시인에게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현실에 대한 불만, 항거, 비판 등에 있어서 세간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해서 아이러니는 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김규리 시인의 초기 시에 나타난 아이러니는 『푸른 절망』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기법으로 작동하는 한편 더 나아가 좀 더 유연하고 융숭한 사유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만 하다. 꼭 들어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푸른 절망』의 많은 시편들이 현상 現象을 뒤엎는 반어적 발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많은 시에 소재로 등장하는 ‘봄’이나 ‘꽃’들이 상기하는 생명성, 희망과 같은 긍정적 관념은 하강 下降의 이미지로 변주되고 있다. 물론 우리의 삶은 봄이라는 환영 속에서 산다. 「봄의 길목」이라는 시를 읽어보자.
아직은 황량하고 어두칙칙한 벌판
그 빈 벌판으로 나가보라
겨우내 숨 고르며 땅 바닥에 엎드려 있던
봄이 기지개를 부르며
가물가물 물기둥을 퍼 올리고 있다
묵은 것을 제키며
빈 들판은 스멀스멀, 아기자기, 올망졸망
도란도란, 졸졸졸 연초록 꿈을 다독이며
가장 분주한 삶의 현장이 되고 있다
봄의 역동성이 ‘스멀스멀, 아기자기, 올망졸망, 도란도란, 졸졸졸’과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주 예쁜 시이다. 그러나 이러한 봄의 역동성으로 상징되는 꿈이 현실에서는 ‘순간’, ‘사라짐’,‘떨어짐’과 같은 하강적 이미지로 구체화되는 현장을 시인은 아프게 인식하게 된다.
즉 우리의 삶은 ‘느닷없는 추위에 / 한때 젊음을 자랑 질 하던 /호박넝쿨/초췌하게 핼쓱한 몰골로 / 난간 벽에 엎드려 있다 /그 늙은 손을 위태롭게 움켜잡고 있는’ ( 「삶의 의미」 부분), 애호박이거나 ‘ 피다말고 / 지는 꽃잎은/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며 / 그믐날 밤/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사연을 갖고’ 있거나 (「아름다움의 보편성」), 세월만큼 빠른 낙화 / 무상한 인생은 /꽃 필 때/ 꽃 질 때/ 따로 없‘는(「정형외과에서」)존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허무한 삶의 실체에 무력하게 굴복하는 것은 예술의 본령이 아니다. 모든 예술은 삶의 이율배반적인 광포함에 맞서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의 엄숙함과 영속성을 추구한다. 희망과 절망, 슬픔과 기쁨, 의식과 무의식 등등의 존재가 구유하고 있는 양면성을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긍정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규리 시인이 제시하는 하강적 관념은 뿌리 없는 희망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절망의 환난을 이겨내고자 하는 수행의 한 방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 인생의 계절은 아직은 유효하다
암튼,
겨울이 지나는 동안에도
나는 겨울이 그리웠다
가는 겨울이 싫어 , 정말 싫었어
모두 떠나버린 황량한 들판과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상고대 피어있는,
아스라이 들판 길 가로질러 부서지며
스스로 껴안지 못하는 바람,
그 쌔애한 바람이 나는 좋아
고독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을
겨울에게 건네면
뜨거운 입김 속으로
전설처럼 날아가 버리는 겨울
봄이 오고 여름이 가도
철지난 생각에는 늘 겨울에 대한 환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시나브로
모든 것들은 늘 떠나가기만 한다
계절처럼 다시 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렇게 고독한 회자정리로
그렇게 고독한 세월을 기다린다
- 「겨울은 항상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겨울은 흔히 삶의 종착, 즉 죽음이나 사라짐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불가 佛家에서의 색즉시공 色卽是空에서 ‘空’의 세계에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공’을 향해 가면서도 실제로는 ‘色’의 세계에 머물러 있기를 갈망한다. 이른바 방하착 放下着은 스스로를 껴안지 못하는 바람으로 받아들이고, 고독한 회자정리로, 그렇게 고독한 세월을 기다리는 혹독한 수련의 겨울을 보내고 난 후에 다가오는 행복한 결말이 되는 것이다.
4.
오늘날의 시詩는 시인의 감정이 그대로 분출되는 배설의 욕구와 독자 讀者들을 훈육하는 중첩된 기능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 자연의 완상 玩賞은 사진을 비롯한 영상물에 의해 그 효용성을 잃어가고 있고, IT 의 획기적 발전은 지식의 축적이나 교양습득의 방편으로서의 시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시인, 오늘날의 시는 철저히 시인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에 대한 질문과 사색의 결과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김규리 시인의 시편들은 익숙한 생활 방식과 가족을 비롯한 타인들과의 제도적 관계에 대해 반문反問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서정시와는 그 궤 軌를 달리하고 있다고 본다. 한 마디로 그 시도는 붉은 힘으로 상징되는 피의 솟구침이다,
누구던가,
한때 나도 그처럼 현기증 나는
언약 하나쯤 가슴속에 품으며
뜨거운 불덩이를 안고
살았던 적 있다
지금은 증거 없음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몽롱하게 살고 있지만
붉은 생각들은 나를 이끈 힘이다
- 「위험한 사랑」 2연
‘위험한 사랑’을 꼭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받아들이지 말자. 생활 속에서 길들여진 의식, 제도에 의문을 품고 자신만의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행위. 그 모든 것이 시인에게는 금도襟度를 넘나드는 위험한 사랑인 것이다. 가끔은 불륜을 저지르고 싶은, 붉은 여름을 훔치고 싶은 욕구는 공동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과 윤리, 법으로 표상되는 존재조건이 개인이 열망하는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하는 의문에 답하는 반어에 다름 아니다. 푸름과 절망이 그러하다. 절망은 어둡고 칙칙하다. 푸름은 상승과 팽창하는 에너지를 함유한다. 그렇다면 시집 『푸른 절망』은 절망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삶의 양식으로 포섭한 어떤 경지에 당도한 화해의 향연 饗宴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은 아닐까?
5.
별이 죽어가는 소리
이 밤에
또 별이 죽는다
죽은 별은 어디로 갈까
저 별은 나의별
저 별은 너의 별
그렇게 노래하던 이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푸른 어둠을 헤치고
누군가의 젖은 가슴
촉촉이 열어젖히며
달려와 안기던
그 빛, 미소
내 인생에 싱싱한 별빛으로
가득 차 있던 때 언제였을까
기억에도 가물거린다
저 어둔 어둠 뚫고
어딘가로 떨어져 추락 될 지라도
마른 가지 끝에 걸린
별빛은 푸른 어둠위에
가지런히 누울 것이다
- 「푸른 절망」 전문
소멸은 슬프다. 우리는 사후 死後의 안락한 세계를 극락, 천국, 이데아로 저 멀리 올려놓았다. 그 안락한 세계는 영혼의 불멸이라는 슬프고도 기쁜 절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돈오 頓悟와 점수漸修, 순식간의 깨달음이나 전 생애를 거쳐 깨쳐나가야 할 그 세계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시인은 말한다. ‘마른 나무 가지 끝에 걸린 / 별빛은 푸른 어둠위에 /가지런히 누울 것’이라고! 우리가 오늘 밤 바라보는 저 별빛은 사실은 수 억 광년 전에 쏘아진, 죽은 눈빛이지만 우리는 그 푸름 속에서 삶의 위안과 절망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푸른 절망」에 드러난 시인의 깨달음이 논리적 추론이나 상상력의 충만에서 이끌어낸 깨달음이 아니며, 이 세상의 온갖 지식의 총합에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오로지 시인 자신의 타고난 기질 氣質과 최근에 겪은 - 「믿음」, 「소리를 내는 것은 향기가 있다」등, 몇 편의 시에 드러난 바와 같은 - 질병을 이겨내고 난 후의 절절한 체험에서 빚어진 사유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체화 体化되지 않은 시적 표현을 통해 절실하지 않은 방하착과 돈오의 세계를 설파할 수 있으며, 성급하게 감상 感想이 아닌 감상 感傷의 정서로 빠져들 수도 있다. 그러나 김규리 시인의 『푸른 절망』은 앞 서 언급한 타고난 기질, 다시 말하면 충청도 내포 內浦지역( 예산, 홍성, 서산, 청양)이 지닌 바다의 개방성과 평야의 너그러움과 풍요로움의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인품과 관련을 맺으면서 슬퍼하되 마음을 다치는 극도의 상태에 이르지 않는 애이불상 哀而不傷 의 미덕을 이순 耳順의 경지로 이끌어 낸 소중한 선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시집 『푸른 절망』은 노년을 향해 가는 우리 모두의 귀거래사 歸去來辭이며, 우리 마음에 즐겁게 가두어둬야 할(?) 감사의 인사이다. 끝으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감상하면서 김규리 시인의 시업에 큰 빛이 함께 하기를 기워한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단순하다
그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요즘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바뀌었다
“감사 합니다”
이 한마디면
세상사 살아가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진짜로 감사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 감사함 때문에
울컥울컥 눈물이 고일 때가 많다
“감사 합니다“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단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 감사 합니다 ”
- 「감사 합니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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