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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사람살이에 따라 삶과 죽음의 길을 넘나들며 살아남은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 8. 17:3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사람살이에 따라 삶과 죽음의 길을 넘나들며 살아남은 나무

  지난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린 〈전주 삼천동 곰솔〉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2000년 5월부터 20년 동안 줄곧 이어온 《나무편지》 1천 여 통을 일일이 다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하나의 나무 이야기를 둘로 나누어 보내드린 일은 흔치 않은 일로 기억합니다. ‘목련’이나 ‘동백’처럼 나무 종류를 중심으로 이어갈 때에야 두 차례가 아니라 서너 차례 넘게 나눠 띄우기도 했습니다만 한 그루의 나무를 두 차례 넘게 나누어 전하는 건 아마도 〈전주 삼천동 곰솔〉이 처음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이 나무의 사연이 하고하다는 증거이겠지요.

○ 2020년 봄, 부천시립 상동도서관 《나무강좌》에 모십니다. ○

  오늘도 부천 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 소식부터 전합니다. 지난 주중에 따로 전해드렸듯이 새해의 부천시립 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에 더 많은 분들의 참가 신청을 부탁드리는 때문입니다. 지금 35회차부터 제40회차까지 6개월 동안의 2020년 봄학기 참가자를 모집하는 중입니다. 새해에는 곧 나올 책의 주제인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강좌를 이어갑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중심으로 하면서, 같은 뜻으로 심은 나무들끼리 묶어 풀어가는 방식으로 강좌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2020년 강좌에 참여하실 분은 ‘반드시’ 등록해 주실 것은 부탁드립니다. 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며 아래에 신청 페이지를 링크합니다.

  http://bit.ly/2LyRHdc <== 상동도서관 《고규홍의 나무강좌》 신청 페이지

  다시 〈전주 삼천동 곰솔〉 이야기입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는 〈전주 삼천동 곰솔〉이 도시 개발 과정에서 사람의 경제적 탐욕에 따라 나무가 죽음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드렸습니다. 나무는 서서히 스물 세 개의 가지 가운데에 열 아홉 개의 가지(관찰 시점에 따라 가지 개수의 차이는 있습니다)를 내려놓고 화려했던 옛 모습을 잃으며 죽어갔지요.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천연기념물이란 ‘살아있는 생물’에게 국가가 부여하는 지위입니다. 그러다보니, 죽어가는 나무라면 천연기념물에서 해제하는 순서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 죽어서도 천연기념물로 남은 유일한 나무 ○

  그러나 〈전주 삼천동 곰솔〉은 자연상태에서 저절로 죽은 게 아닙니다. 그냥 해제 절차를 밟아가기에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에서는 나무를 천연기념물에서 해제하지 않는다는 매우매우 특별한 결정을 했습니다. 사람의 탐욕에 의해 죽어간 나무를 오래 보존하며 반면교사로 삼자는 고마운 결정이었지요. 나무 주변을 곰솔공원으로 지정하고 보호구역을 더 잘 보호할 계획인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참혹한 상태로 남은 나무의 흔적을 남겨야 했습니다. 원래의 아름다운 상태로 되살아날 가능성은 아예 찾을 수 없었지만, 먼 훗날까지 나무의 사연을 널리 알리려면 어떤 형태로든 나무의 흔적이 있어야 하겠죠.

  결국 나무 줄기와 가지가 모두 무너앉기 전에 나무에 조기사망선고를 내리고 나무 전체를 방부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나무가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도록 나무 줄기의 껍질 부분의 숨구멍을 방부제로 틀어막는 조치입니다. 더 살아갈 수 없는 나무가 더 죽지도 못하게 하는 겁니다. 나무가 더 이상 썩어서 부서지지 않게 하기 위한 꼭 필요한 조치였지요. 방부 처리를 마친 나무는 온몸이 방부제로 반들반들했습니다. 건강할 때에 나무 줄기의 껍질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겠지요. 그 매끈한 수피 안쪽으로는 남은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가 된 겁니다. 나무의 마지막 보내는 순간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 사람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죽음을 견뎌 ○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전주시의 대표적 상징이라 해도 될 만큼 좋았던 나무가 스러져가는 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보게 된 시민들은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나무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나무가 이미 사망 판정을 받은 상태였지만, 시민들의 정성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때는 나무를 위한 웹 페이지를 개설하고, 나무를 살릴 수 있는 묘안들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나무의 회생에 뾰족한 대책이 있을 수 없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게 끝날 수 없었던 겁니다. 굳이 물리적인 대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애정 어린, 그리고 나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은 정성스러운 시선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성의가 이어지면서 아직 솔잎이 남아있는 네 개의 가지가 활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방부처리를 통해 나무는 마지막 숨 쉴 숨구멍조차 막힌 상태였거든요. 그 참담한 상태를 이겨낸 건 무엇보다 사람들의 정성 어린 보살핌이었습니다. 마침내 나무는 죽음을 뚫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물론 예전의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외침을 사람의 마을에 크게 울려왔습니다. 나무의 소생 움직임이 뚜렷해지자, 결국 문화재청에서도 나무 보호 대책을 바꾸기로 했지요. 나무에 씌운 방부처리를 모두 벗겨내고, 썩어 텅빈 줄기 안쪽은 방부처리를 하되, 예전 모습의 흔적으로 외과수술을 했습니다.

○ 지금은 다시 나무를 보다 간절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 ○

 

  나무가 사람의 마을에서 사람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큰 상처를 받았지만, 다시 사람의 정성에 의해 굳건한 삶의 길로 돌아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자주 찾아가 만나는 나무입니다만, 나무를 볼 때마다 물욕을 버리기 어려운 사람살이의 흐름이 참담하리만큼 부끄럽기도 하고, 또 죽어가는 나무를 살려낸 우리 모두의 나무를 향한 지극한 정성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무가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만일 나무가 죽어서 아주 사라졌다면 그 뒤에 이 텅빈 자리에 왔을 때에 감당해야 할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과 참담함은 미처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전주 삼천동 곰솔〉은 생존 그 자체로 언제나 고마울 수밖에요. 지난 주에 나무를 찾아갔을 때에도 그런 마음으로 나무에게 다가갔습니다. 살아있는 건 여전하지만, 조금은 걱정되는 상태였습니다. 불균형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건강했던 이 나무의 지금 상태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어요. 그 동안의 삶이 버거웠던지, 지난 봄에 찾았을 때보다 쇠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여느 때보다 나뭇가지 끝에 맺은 솔방울의 숫자가 무성한 것도 그렇게 생각하게 했습니다. 사람의 보살핌이 특별히 나빠진 것도 아닌데, 아마도 나무로서는 그 동안의 삶이 힘겨웠던 것 아닌가 생각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나무가 그러하겠지만, 〈전주 삼천동 곰솔〉만큼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나무가 죽음의 길에서 벗어날 때 그랬듯이 지금 다시 우리 모두의 관심이 더 필요한 때이지 싶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전해드린 〈전주 삼천동 곰솔〉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이제 곧 2020년 새해가 열립니다. 지난 2019년의 모든 일들이 거름되어 새해에는 더 좋은 일 많이 이루시기 바랍니다.

- 사람살이에 따라 삶과 죽음을 함께 한 나무를 바라보며 12월 30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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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