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문화평론

준엄한 역사의 법정,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3. 12. 20:05

 

준엄한 역사의 법정,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

[포스트 탄핵 정국] 송호근 교수 특별기고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 아니 승리할 수 없었다. 지난 넉 달, 광장에서 촛불을 켜고 태극기를 흔드는 동안 낙엽이 졌고 봄이 왔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외롭고 고된 행군이었다. 촛불 공중(公衆)은 독주하는 권력을 중단하라 외쳤고, 태극기 공중은 그녀가 지닌 상징이 소멸되지 않기를 바랐다. 모두 외롭고 고된 삶을 짊어진 시민들이었다. 바라보는 시선과 염원이 달랐을 뿐, 그들은 대한민국의 형제자매였다.
 

지난 넉 달 광장에서의 고된 행군
그들은 모두 고된 삶 짊어진 시민들
태극기 公衆이 가진 시대적 아픔
지금은 촛불시민이 끌어안을 시간

유신과 연결된 박근혜 통치양식엔
광장과 소통하는 ‘군주 미덕’ 결여
무너진 책임·신뢰의 보수적 가치
진보 가치 개화 위해 우선 수선해야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 헌재 결정문의 서두처럼, 너와 나는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로서 태극기 공중이 눈물로 호소한 그 애틋한 삶의 궤적을, 결코 지울 수 없는 세대적 한(恨)을 촛불 공중이 끌어안을 시간이다. 백발성성한 어른이 길바닥에 엎드려 우는 그 심정을 헤아려 보았는가? 그것은 수구적 눈물이 아니라 전쟁과 궁핍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만이 갖는 시대적 아픔이다. 박근혜가 설사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자신의 아픔 속에 내장된 상징까지는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그러나 이제 일어서야 한다. 태극기 공중, 당신의 아픔은, 좌절은 당신 세대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짐이었음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새로운 길을 열었으므로. 우리 모두 역사의 법정 앞에 나란히 선 청구인이자 동시에 피청구인이므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필자는 이토록 단호하고 냉정한 문장을 접하지 못했다. 결정문을 읽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는 한결같았지만, 나는 전율로 떨었다. ‘탄핵소추를 인용한다’고 했다면 그리 떨지는 않았을 것인데, ‘파면한다’였다. 그 단어에는 넉 달 행군의 무게, 표현할 수 없는 고뇌와 회한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목말 탄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던 그 무서운 말, 남녘 섬 어부들이 물결을 헤치며 흩날리던 말, 트럭 기사가 화물차 뒤꽁무니에 매단 그 말이 이정미 권한대행의 주문으로 옮겨지는 순간 마치 UFO 같았던 ‘국민주권’이 굉음을 울리며 광장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광장에 국민주권이 내려앉았다. 그 장엄한 장면을 목격한 이후에야 파면의 객체가 감지됐다. ‘박근혜를 파면한다’. 국민은 헌법정신을 저버린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다! 그녀는 결국 파면되었다. 아니 국민이 파면을 명했다.
 
왜? 권력을 사유화했기 때문에. 국민이 위임한 신성한 권력을 사인(私人)에게 줬기 때문에. 그 사인은 거짓으로 일관했고, 그를 은닉하고 싶은 대통령은 변명으로 일관했다. 분노한 민심에 밀린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만들 때 허둥지둥했던 것은 사실이다. 공무원을 임의로 파면했다거나 블랙리스트를 은밀히 가동한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너그럽게 해석하면 그냥 통치 범위에 속한다. 세월호 참사에 머리를 매만지고 방에서 어슬렁거렸다 해서 대통령직을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흘린 참회의 눈물이 세월호 유가족과 메르스 희생자, 가습기 희생자에겐 악어의 눈물일지라도 탄핵 사유는 될 수 없다. 그런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의 공동책임이다. 그런데 권력을 은밀히 나눠 가졌다는 사실을 헌재는 적시했다.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인 대변성과 책임성을 위반한 것이다.
 
아직도 관저를 서성거릴 자연인 박근혜는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보다는 ‘덜’ 자의적이고 덜 강압적이었는데 대체 무엇이 잘못인가? 박근혜는 자신의 대통령 취임을 1979년 비극으로 끝난 유신시대와 접속해 행복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던 거다. 쫓겨나듯 떠난 청와대를 꽃수레 타고 박수받으며 떠나고 싶었던 거다. 꿈에는 잘못이 없으나 아버지 숭배에 파묻혀 져야 할 짐을 몰랐다. ‘민주화 30년’, 투명성과 책임성을 향한 국민적 고행에 어떻게 답할지의 긴장이 그녀의 통치양식에는 없었다. 그렇기에 스무 차례의 촛불 호소에도 비답(批答)은 없었고, 헌재와 특검의 소환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원래 광화문은 정치적이었음을 도외시한 죄는 권력의 사유화보다 더 중대하다. 세계 특유의 공론정치가 광화문을 그렇게 만들었다. 유림들의 상소 행렬이 광화문에 부복하면 군주는 어쨌든 답을 내려야 했다. 답이 없는 군주는 자격을 상실한다. 고종(高宗)은 답을 내릴 필요가 없던 동학도의 상언(上言)에도 답을 내렸다. ‘짐이 모르는 바 아니니 물러가라’. 오직 민(民)이 국가의 근본이라는 뜻의 민유방본(民惟邦本)은 오늘날 한국을 아시아에서 최고의 민주국가로 밀어올린 고유 자산이다. 일본의 지배계급인 사무라이는 범법을 저지른 평민을 그 자리에서 효수할 수 있었다. 중국의 지방 관아는 참수권을 부여받았다. 조선은 달랐다. 역모자라도 현감은 공술 기록을 남겨야 하고, 관찰사와 한양 의금부의 결재를 받아야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천주교 서양 신부를 처형할 때에도 공술을 받고 지장을 찍었다. 통치자의 이탈을 따지러 광장에 모이는 민족은 한국뿐이다. 중국과 일본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 고유의 자산, 말하자면 정치적 한류가 바로 이것이다.
 
일본의 신민(臣民)이 군국주의로 진군하던 1890년대 말, 조선에는 공론정치를 이어받은 만민공동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백정 출신 박성춘이 외쳤다. “나는 천하고 몰지각한 사람이지만 충군애국의 뜻을 알고 있다. 모두 국운이 만만년 이어지도록 합시다!” 그것은 민권운동의 횃불이었다.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을 관통하는 애국의 공감대에 공론정치를 아는 대통령이라면 적어도 비답을 내려야 한다. 그녀는 그냥 침묵했고, 관저를 떠나라고 통지서를 받은 지금도 그러하다. 그녀는 광장을 통과할 자격이 없다.
 

DA 300


바로 이 점이 헌재가 적시한 가장 중대한 가치다. 최순실 관련 범법이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를 따지는 대목에서 헌재가 열거한 항목들이 그러하다. ‘대통령이 그 사실을 은폐했다’ ‘의혹 제기를 비난하고 단속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깐깐한 법학자들은 당장 그 ‘중대성’을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헌재가 국민의 알권리, 대통령이 응답할 의무, 국가기관의 명령을 존중할 책임 등 단적으로 ‘헌법정신을 수호할 의지’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안창호 재판관이 덧붙였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습을 끝내고 주민 근거리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헌법재판관이 구태여 이런 충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항의하고 싶겠으나 감사원이 정책 감사를 하듯, 헌재 역시 고심 끝에 내놓는 정책 판결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다. 30년 전 민주화 초기였다면 그런 지적들이 법리에 벗어난 가치 함축적 판결이라 하겠지만, 이제 민유방본의 수준 높은 민주정치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가장 존중해야 할 덕목이 응답과 책임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헌재가 주목한 그 덕목들은 얼마나 멋지고 품격 있는 성찰인가? 역사의 법정 앞에 선 우리 모두에게, 새로 단장한 민주열차에 탑승한 대한민국 승객들에게 헌재가 발행한 명심보감의 승차표다.


자연인 박근혜의 하차는 책임·신뢰·배려라는 보수적 가치를 저버린 징벌이다. 진보적 가치가 개화하려면 이 세 가지 덕목을 우선 수선해야 한다. 무너진 보수적 바탕은 어떤 기둥도 지탱하지 못한다. 건강한 보수 없는 진보는 허약하다는 사실은 유럽 정치가 입증한 바다. 정권이 코앞에 다가온 더불어민주당, 대세론을 손에 쥔 야당 대선주자들이 아프게 새겨야 할 정치사적 교훈이 이것이다. 광장에서 승리한 진영은 없다.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행군이었다. 우리는 역사적 법정 앞에서 공범자였음을 말이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