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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공공윤리 뒷받침 없는 권력 구조 개편은 허망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2. 28. 21:33

 공공윤리 뒷받침 없는 권력 구조 개편은 허망

           
[빠른 삶 느린 생각] 책임있고 투명한 정부
어디에 가나 화제가 되는 것은 소위 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탄핵이다.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의 김정남 살해사건이 떼어 낼 수 없는 화제로 첨가되었다. 다른 일들은 화제에도 오르지 못한다. 이것은 정치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 그리고 정치 상황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일상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렇다.
 

트럼프의 이해상충 문제 방치 등
전 세계에 ‘반지성주의’ 널리 퍼져
힘으로 권력의 부패 막는 노력이
또다른 횡포의 수단이 되기도 해
법 강화 앞서 윤리부터 강화해야

 

장기적인 의미에서의 정치 변화는 몰라도 그때 그때의 정치파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일들의 뉴스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을 보면, 정치가 인생 구도에서 갖는 의미를 새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는 하나의 믿음이다. 이 점은 지난번 칼럼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다. 비유를 써 되풀이하건대, 정치의 기본 질서가 주는 믿음은, 어떤 건물에 들어 갈 때 그 건물이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에 비슷하다. 그 건물이 어떻게 쓰이느냐 하는 것은 다음의 문제이다. 
 
필리핀 마약 소탕은 자의적 법 집행의 전형 

 

그런데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들, 사회 질서의 건전한 존재를 믿을 수 없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이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하고 있는 것은 자의적인 정치 행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필리핀에서의 마약 관련 범죄를 완전히 소탕해버리겠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일을 히틀러가 300만 명의 유태인을 죽인 것에 비교하면서, 필리핀에서 300만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죽이겠다고 한다. 여기에 법적 절차는 중요치 않다. 결정적인 것은 자신의 소신이다. 조금이라도 마약에 관계되는 혐의가 있으면 무조건 처형되어야 한다. 그는 경찰이 말하는 것이면 더 조사해볼 것도 없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경찰에게 백지위임을 하겠다는 그의 발언이 있은 후, 법무장관이 나와서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은 과장된 것이고,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일 뿐”이라고 그의 말을 수정한다. 중요한 공직자의 말이 이렇게 함부로 내뱉고 수정되고 해도 괜찮은 것인가.(뉴욕 리뷰 오브 북스 2017년 2월 22일~3월 8일자)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가장 유력한 중도보수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는 한 지방 도시의 시장으로 근무할 때 자신의 아내를 비서로 채용하여 5년 동안에 6억 200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을 부당 취득하였다고 전해진다(본인은 부정한다). 최근에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맨 먼저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의 반이민자 정책으로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는 것은 물론 무슬림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대통령령이다. 이것은 이미 미국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일일뿐만 아니라 이들 나라와의 관계에 큰 문제를 가져올 조치였다. 다만 이것은 두 단계의 법원 판결에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규정한 헌법 위반이라는 판결이 나와 적어도 일단은 대통령의 행정 명령의 시행이 보류되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더 강력한 방식으로 이슬람인의 출입국을 금지하겠다고 하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이 시점에서 예측할 수 없다. 그에 대한 반대운동도 그치지 않는다. 그의 정책들은 국제관계를 어지럽게 하고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인도주의적 원칙을 뒤틀어 놓는 일이라는 비판적 견해가 강하게 대두하고 있다.
일러스트=강일구 ilkook@hanmail.net

일러스트=강일구 ilkook@hanmail.net

 
트럼프 대통령의 조처들을 반대하는 사유를 여기에서 일일이 점검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언어나 행동에서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감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영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영국에서는 하원 그리고 국민 사이에서 그의 방문을 막으려는 운동이 퍼지고 있다. 그의 방문에 반대하는 하원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지적능력이 원생동물시대(原生動物時代)의 단세포동물 정도”라고 한 것이 보도되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그의 정책들을 비판하는 칼럼의 제목을 ‘무지가 힘이다’ 라고 붙혀 무지가 문제라는 것을 시사하였다(뉴욕타임스 2월 13일자). 자세하게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난민, 국가안전, 교육, 외교, 인프라 보수 건설 등의 문제에 있어서 트럼프 정책이 극히 미흡한 것임을 지적하였다. 그 원인은 대통령의 무지만이 아니라, 그가 임명한 장관이나 그의 참모진이 대체로 이러한 여러 부분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면 이러한 인물들이 어떻게 지도자, 그리고 그의 막료가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국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전문인에 대한 불신에 관계되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인들의 ‘반지성주의’는 그 전부터 많이 지적되어 왔던 사실이다. 이것이 다시 부상한 것이다. 대체로 원리적 민주주의는 이 경향을 갖는다. 그리고 여기에 동조하는 것은 권력 투쟁에서 중요한 방편이 된다. 
 
공산권 붕괴 후 비전 없는 돈의 시대로 

 

위에 말한 바 여러 사건 이외에도 비슷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늘의 세계가 돈의 세계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권력은 너무 쉽게 부정축재의 수단이 된다. 정치 권력의 횡포와 잔혹함은 인간의 역사에서 예로부터 보아 온 것이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라는 말은 잘 알려진 재담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부패와 횡포를 막아 보려는 끊임없는 노력은 인간 역사의 다른 한 면을 이룬다. 비극은 이러한 노력 그 자체가 다시 잔인한 권력 전단(專斷)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잘못되는 일을 막는 데에는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이 다시 횡포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명분이 떳떳한 힘이야 말로 가장 잔인할 수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는 부정(不正)한 힘을 체계적으로 막아내자는 계획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러한 계획들의 부정적 결과를 보게 된 것이 20세기의 전인류적인 경험이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것은 아무런 가치 규범이 없는 세계이다. 공통의 가치 기준은 더욱 있을 수가 없다. 공동의 가치를 전체화하고 그것을 부과하려는 노력은 결국 권력의 잘못된 거대화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무런 비전이 없는 시대이다. 남은 것은 과시 소비, 축재, 과시 사회의 허명 추구이다. 위에서 본 바 무자비한 권력 추구와 부패도 물론 그대로 남는다.
 
그렇다고 그러한 부패에 대한 대응 방책이 없이, 함께하는 인간의 삶이 가능할 것인가? 윤리적 규범이 없는 사회에서 공동체의 삶은 설립될 수 없다. 윤리는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불가결의 기본적 지침이 된다. 그러나 강제력이 없이 윤리나 도덕이 일반화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잔혹해지고 부패하게 되지 않는 힘이 있는 것일까? 윤리를 부과할 수 있는 부드러운 힘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21세기가 하여야 할 일은 힘과 윤리를 종합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체제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법치를 철저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법만으로 윤리를 비롯하여 높은 인간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까? 위에서 필리핀의 현상을 보고하는 글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그 글이 실린 뉴욕리뷰에는 데이비드 콜의 ‘트럼프는 헌법을 어기고 있다’는 글이 실려 있다. 콜 교수는 조지타운대학의 법학 교수이고, 미국의 중요한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법률부 대표이다. 그러니만큼 그의 기고문은 철저하게 법률적인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행적을 검토하는 글이다. 그의 결론은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헌법과 관습에 따르면, 공직자는 공직 수행과 개인적 이해가 중복되지 않게 하는 데에 모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공직자는 일체의 자산과 투자를 처분하고 그 처분대가를 ‘맹목 신탁’에 맡겨야 한다. 맹목이란 신탁자가 신탁금의 손익을 알 수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자산이나 투자가 외국에 관련되어 있을 때 더욱 그러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 부동산·콘도미니엄·호텔·골프장 등을 소유하고 있다. 그가 파나마에 소유하고 있는 호텔만도 매년 수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다. 그는 이러한 소유 재산을 처분하지 않고, 그 관리만을 자신의 두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법규 강화만으로는 투명한 정부 성립 어려워 

 

이런 규정이 얼마나 엄격한가 하는 것은 콜 교수가 말하고 있는 그 전임자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에 잘 드러난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유하고 있던 것, 투자하고 있던 것들을 전부 맹목신탁에 맡겼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단한 농구팬이었는데, 대통령 취임 후 그가 참관하고자 하였던 농구대회 입장권을 그냥 받아도 되는가를 ‘윤리 정부 자문 위원’에게 문의하였다. 노벨 평화상 후보가 되었을 때, 그는 그 상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를 법무부 법률자문실에 공식으로 문의하고 그 결정에 기초하여 수상을 수락하였다. 노벨상은 적지 않는 상금이 수반되고 또 외국에서 수여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미국에 있어서 대통령을 비롯하여 공직자의 공적 행위의 투명성에 대한 법적 규정이 얼마나 엄격한가를 알 수 있다. 미국의 부패도가 낮은 것은 이러한 점에도 관계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공공윤리에 대한 엄격한 의식이다. 위에 말한 규정들은 18세기 말 건국 이후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만들어졌다. 엄격한 법률규정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대 사람들이 공적 윤리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강한 의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의식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이다. 이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세계적 현상이 아닌가 한다. 공산 세계가 무너진 다음에, 그에 대한 대안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등 일체의 대안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관찰들이 있었다. 이것은 정치에서 정치적 윤리적 지향이 사라지게 하였다.
 

DA 300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권력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시험해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공공 윤리의 의식에 뒷받침되지 않는 권력 구조의 외면적인 조정 그리고 더 나아가 법적 규정의 강화만으로 참으로 책임있고 투명한 정부가 성립할 수가 있을 것인가? 김정남 사건에 대한 어떤 논평을 보면, 그와 같은 참혹한 일, 그리고 다른 참혹한 정치적 사건들은, 일어날 수 있는, 또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 정치변수라는 생각들이 드러난다. 권력과 전략의 투쟁과 균형이 정치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주된 정치관이다. 물론 거기에는 명분도 개입된다. 정치 현실주의는 그 나름으로 부정할 수는 없는 인간 현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에 기초한 법술(法術)의 조정만으로는 참으로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치는 정치인이 참다운 의미에서 자기실현을 기할 수 있는 인간 활동의 영역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