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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미술관 된 기차역·발전소 … 건축물은 진화한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2. 19. 19:30

 

미술관 된 기차역·발전소 … 건축물은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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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건축] 바뀐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업사이클링 
땅에서 올려다본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 철거 위기에 놓였던 도심 속 고가철도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뉴욕 최고의 관광지로 바꿔놓았다. [중앙포토]

땅에서 올려다본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 철거 위기에 놓였던 도심 속 고가철도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뉴욕 최고의 관광지로 바꿔놓았다. [중앙포토]

 

 

리차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생명체의 모든 행동들을 DNA가 자신이 더 많이 번성하기 위해서 결정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여성이 어깨가 넓은 남자에게 끌리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성의 DNA’는 자신이 더 많이 증식하기 위해 자신의 DNA를 가진 자녀가 잘 자라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기 위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배우자를 찾는다. 어깨가 넓은 남자는 창을 멀리 던져서 사냥을 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어깨 넓은 남자에게 끌린다는 식이다.


무기물이면서도 필요에 맞게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용도 변경
만리장성 벽돌, 로마제국 건물 자재
후세 건축물에 사용되며 생명 연장

도킨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유전물질 DNA는 디옥시리보오스를 가지고 있는 핵산일 뿐인데 마치 살아서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의인화된 시선으로 건축을 바라보면 무기물 덩어리에 불과한 건축물도 마치 의식을 가지고 본인이 철거되지 않고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모습을 바꿔 진화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진화의 현상을 ‘리모델링’ ‘리사이클링’이라 부르고 최근 들어서는 ‘업사이클링’이라 부르기도 한다.
 
업사이클링의 역사
업사이클링은 업(Up)과 리사이클링(Recycling)의 합성어로 좀 더 높은 의미와 가치를 갖도록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리사이클링이나 업사이클링은 건축에서는 항상 있어왔던 일이다. 이는 건축 재료는 사람보다 수명이 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중국 만리장성의 30%가량이 훼손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 이유는 만리장성의 주요 건축 재료인 벽돌을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빼내어 자신들의 집을 짓는 데 사용하거나 관광객들에게 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같은 일은 르네상스 시대의 로마에서도 일어났었다. 로마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한 뒤 고대 로마는 버려지다시피 하면서 2000년 전 로마제국 시절의 건축물들은 폐허가 되었다. 동로마제국이 망하고 난민들이 로마로 다시 돌아왔을 때 로마의 인구는 급증하게 되었다. 이때 돌아온 사람들은 폐허가 된 로마제국 시대 건축물들의 자재를 훔쳐다가 자신들의 건물 신축에 사용하였다. 만리장성이나 로마의 경우처럼 건축에서는 오래된 건축물의 자재가 다른 건축물의 신축에 사용되는 경우가 예부터 있어 왔다. 이는 마치 장기 기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재료를 나누어 새로운 건축을 탄생시킨 것이다.
 
진화의 몸부림
영국 런던의 오래된 화력발전소를 현대식 미술관으로 새롭게 리모델링한 테이트 모던. [중앙포토]

영국 런던의 오래된 화력발전소를 현대식 미술관으로 새롭게 리모델링한 테이트 모던. [중앙포토]

 

건축에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오랜 화두가 있다. 루이스 설리번이라는 근대 건축의 첫 장을 장식한 건축가의 말이다. 이 말은 모든 형태는 특정한 기능에 근거해 이유 있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우리가 자연을 관찰하면 이 말이 얼마나 맞는지 알 수 있다. 기린의 목이 긴 이유는 높은 나뭇가지의 잎을 따 먹기 위함이고, 가자미의 눈이 한쪽 면에 두 개가 붙어 있는 것은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바닥에 붙어 살다 보니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된 것이다.
 
자연의 디자인은 필연적 이유에서 발생한 결과다. 이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 때 아주 유용한 철학이다. 자동차를 처음 디자인한 사람은 기능적 이유에서 엔진과 네 개의 바퀴를 생각해 냈을 것이다. 비행기도 기능적 이유에서 날개와 프로펠러를 디자인했다. 처음 만들어지는 것의 디자인은 이처럼 ‘기능’에 근거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건축물에서 ‘시간’이란 요소가 첨가되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가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 화력발전소로 사용하다 더 이상 쓸모없게 돼 문을 닫은 건물은 시간이 지나서 테이트 모던이란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최초의 테이트 모던은 화력발전소 형태에 맞게 디자인했지만 커다란 증기 터빈이 있던 자리는 미술관의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도 좋은 예다. 기차의 엔진이 강력해지면서 객차가 길어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기존 플랫폼이 짧아 더 이상 기차역으로 기능을 못하게 되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이곳은 사용되지 않고 버려져 있다가 수십 년 후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최초에 건축물을 계획했던 목적과는 달리 시대가 변하면서 건축물이 필요 없어질 때도 생긴다. 그때 건축물이 가만히 있으면 철거가 되면서 소멸된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 그 건축물은 그 시대의 필요에 맞게 살아남기 위해 ‘진화’를 한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말이다. 테이트 모던과 오르세 미술관 모두 주어진 건물 형태에 맞춰 새로운 기능을 덧입은 경우다.
 
물리적으로 보면 건축물은 돌·벽돌·유리 같은 재료로 만든 무생물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가 건축에서 사용하는 것은 그 무기질 재료 부분이 아닌 재료로 만든 나머지 부분인 ‘빈 공간’이다. 빈 공간을 싸고 있는 재료들이 좀 변형되어도 그 안의 빈 공간을 사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건축물은 다른 물건과는 다르게 사람보다 오랫동안 살아남고 시대에 따라 다른 용도로 변형되면서 다시 사용된다. 건축물 자체가 재사용되는 업사이클링 건축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살아남기 위해 빈 공간이 진화하는 이야기다.
 
다른 방식의 업사이클링 사례도 있다. 한때 도심 내 공장들과 항구를 연결하던 고가철도가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더 이상 사용이 되지 않고 버려지게 되었다. 공장이 떠난 동네도 슬럼화되었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철로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공원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은 주변 지역을 뉴욕 최고의 관광지로 바꿔놓게 됐다.
 
부활하는 건축 자재
때로는 고가도로가 철거되면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도 한다. 미국 보스턴 도심을 관통하는 93번 고속도로는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가 됐다. 이때 고가도로가 철거되면서 나온 철골 재료들은 다른 지역의 주택을 짓는 데 기둥과 보로 사용됐다. 죽은 고가도로가 주택으로 부활한 것이다.
 
마치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형태를 진화시키는 가자미처럼 업사이클링 건축은 건축물 입장에서 보면 바뀐 환경에서 철거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몸부림이다. 그리고 이러한 몸부림의 시간과 사람의 노력은 건축물에 오롯이 남아 있게 된다. 그래서 재생 건축에는 설명하기 힘든 깊은 시간과 노력의 감동이 배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은 100년 넘게 역경을 겪고 살아남은 기차역의 공간을 보면서 묘한 울림을 경험한다.

DA 300


 
사실 우리가 창조라고 하는 것들은 어차피 완전한 창조는 아니고 모두 다 자연에 있는 물질들을 가지고 재구성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다 쓰고 나면 후손들은 다르게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
 
업사이클링은 잠시 빌려서 쓰는 행위다. 현재 지구상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인간의 개체수가 있다. 모두가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가지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나눠 쓰고 다시 쓰는 업사이클링이 필요한 때다. 우리 시대에 태어난 건축물은 다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진화의 몸부림을 치게 될지 궁금하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