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장관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입이 떡 벌어졌다. 약 925㎡(280평) 크기의 장방형 공간에 도자기·동전·금속품·자단목(고급목재) 등이 켜켜이 쌓여 있다. 책이 가득 들어찬 서가(書架)를 닮았다. 약 700년 전 난파선의 위용이 짐작됐다. 익히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실물로 보는 ‘보물선’은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발굴 당시의 모습을 재연한 듯, 모형 난파선 옆 모래 바닥에는 깨진 도자기 조각이 뭉텅이로 놓여 있다.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급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발굴 40주년 특별전
1323년 중국서 일본 가던 중 침몰
도자기 2만 점, 동전 800만 개 등 실려
동북아 경제·사회 연구 커다란 영향
오늘부터 2만여 점 매머드급 전시
신안해저선(신안선)-. 한국 수중고고학의 탄생을 알린 역사적 유물이다. 14세기 한국-중국-일본을 잇는 무역선으로, 당시 동아시아 교역 양상을 일러주는 ‘타임 캡슐’로 불린다. 신안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26일부터 9월 4일까지 연다.
무엇보다 규모가 매머드급이다. 신안선의 ‘거의 모든 것’을 망라했다. 발굴 전체 유물 2만4000여 점 가운데 2만300여 점을 모았다. 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지방 박물관에 있던 관련 유물을 한자리로 불러냈다. 신안선에 대한 종합보고서에 해당한다. 중앙박물관 김영미 학예사는 “기존의 신안 유물전은 명품 위주였다. 지금까지 공개된 건 전체의 5% 남짓인 1000여 점에 그쳤다”며 “중앙박물관 전시 역사상 가장 많은 수량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신안선은 260t급 대형목선(길이 34m, 폭 11m)이다. 1323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경원(慶元·오늘날 닝보)에서 일본 하카타(博多·오늘날 후쿠오카)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신안 임자도·증도 인근 해역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에는 해군 함정과 잠수사가 투입됐고, 선체를 분해해 끌어올리는 데만 7년이 걸렸다.
DA 300
인양 물품 대부분은 송(宋)·원(元)대 도자기다. 청자·백자 등 2만여 점에 이른다. 당시 도자기가 이처럼 무더기로 발굴된 건 중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고려청자도 7점 포함됐다. 서기 1~14세기 유통됐던 중국 동전 66건 299종(약 800만 개, 무게 28t)도 나왔다. 동전과 자단목은 배의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다. 금속기·칠기·유리제품·약재 등도 다양하게 출토됐다. 해당 유물은 수심 20m 안팎의 깜깜한 뻘 바닥에 묻혀 있었다. 산소 공급이 적어 대체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전시에선 고려 후기 동아시아인의 일상도 조명한다. 중국·일본 박물관에서도 관련 유물 60여 점을 빌려왔다. 차(茶)·향·꽃꽂이 등을 즐긴 당대 상류층의 문화생활, 바둑·장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 뱃사람들의 여가문화도 소개한다. 중앙박물관 이영훈 관장은 “고통 속에 침몰된 난파선이 보물선으로 남은 건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당대의 교류양상을 보다 활발하게 연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특별전은 10월 25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계속된다. 전시 품목과 규모는 일부 조정될 예정이다. 현재 신안선이 전시된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도 10월 26일부터 ‘한국 수중발굴 40년’ 특별전을 연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