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32세 때인 1915년에 출간한 문제작 『변신(變身, Die Verwandlung)』의 첫 구절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활동한 젊은 작가였던 카프카의 『변신』은 20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복합적 심리와 시대상을 절묘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출간 직후부터 세인의 관심을 끈 화제작이 되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한 의류 회사에 고용된 외판사원이었으며 매출을 올리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출장 여행을 다녀야 했다. 이날도 출장을 가기 위해 오전 5시 기차를 타야 하는 데 온 몸이 딱정벌레로 변해서 도저히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가 회사에 나타나지 않자 노발대발한 사장은 지배인을 그의 집으로 보내 해고될 수도 있다고 위협하면서 출근을 종용했다. 하지만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게 된 지배인과 가족(아버지·어머니·누이동생)들은 혼비백산한다. 그날 이후 그레고르는 직장을 잃고 자신의 방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격리됐다. 자신의 억울함을 가족들에게 호소해 보지만 벌레의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레고르는 그간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부양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변신과 실직으로 가정은 졸지에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살림살이에 보태려고 하숙을 치게 됐는데 하숙 손님들이 그레고르의 흉칙한 모습을 보고 급기야 해약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처음에는 그의 변신을 동정과 애정으로 대하던 가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냉담해져 갔고, 그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결국 가족들은 그를 자기 방에서 몰아내어 좁은 골방에 가두어 버린다.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그레고르는 마음과 육신의 상처를 입고 식사도 거부하고 서서히 죽어갔다.

 

카프카가 살던 프라하의 집.

 

카프카가 살던 프라하의 집.

 

현대인의 복합적 심리 절묘하게 묘사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변신』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는 작품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여 그레고르와 아버지간의 갈등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며, 혹자는 그레고르의 열등감과 무력감이 그를 변신에 이르게 한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시의 사상 기반은 실존주의(existentialism)였다. 카프카는 평생 고독과 불안을 가까이 느끼고 체험하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허무·부조리 등 실존주의의 본질이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 상황에 대해서 소외된 채로 존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기술하고 있다.

또한 문학평론가들은 카프카의 작품들은 당시 유럽을 풍미하던 ‘표현주의(expressionism)’ 문예사조에 영향을 받아 작가로서 자신의 감정을 과감하고 강력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즉 카프카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문제를 ‘노동자는 벌레다’라는 메타포(은유)로 묘사하며 자신의 절제되지 않는 감정을 실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단면을 비판적으로 풀어낸 것이 바로 『변신』이라는 것이다.

 

『변신』 책표지에 등장한 벌레.

 

『변신』 책표지에 등장한 벌레.

 

1970년대 초반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노동의 인간화(humanization of work)’는 노동하는 사람의 노동의 의미 추구와 자아실현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근로조건과 직무의 인간적 설계가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노동의 인간화’의 시각에서 이 소설을 조명한다면, 외판원인 그레고르는 비인간적인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직장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인간의 모습을그린 것이다. 작가는 딱정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의 흉측한 모습을 통해 이를 사회에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카프카가 『변신』을 통해 고발하고자 했던 인간 소외와 실존의 위기 명제는 과연 극복됐을가. 그 대답은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 사회는 한 비정규직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게 되었다. 19세의 정비용역업체 직원 김모씨가 서울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진입하던 열차에 치어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고였다. 사고 직후 회사에서는 그가 업무규정을 지키지 않아 과실로 일어난 사고라고 해명하다가 추모 열기가 전국적으로 고조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뒤늦게 규정대로 2인 1조로 작업을 시키지 않은 회사의 잘못을 시인하였다. 사고 현장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붙인 추모의 메모지로 가득 찼다. 취업을 꿈꾸지만 합당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 땅의 ‘미생’들이 그의 죽음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공감을 하게 된 것이리라. 카프카의 『변신』이 출간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레고르는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취업·연애·결혼 등을 이미 포기한 ‘N포 세대’들이 방이나 집 등의 특정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으면서 사회와 관계를 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오늘날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들의 모습을 어쩌면 카프카는 이미 100년 전에 『변신』을 통해 알려줬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다시 되살아나는 변신의 모습
‘초 지능’과 ‘초 연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은 우리의 직장에 몰아치고 있다. ‘파괴적 기술’ 또한 이 시대의 기술 발전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과거에는 기술 개발이 이뤄져도 과거의 기술과 공존하거나 과거 기술에 익숙한 노동자들이 학습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어 고용은 계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감성로봇, 드론, 3-D 프린터, 빅데이터 분석과 같은 신 기술은 과거의 기술을 부정하고 단절할 뿐 아니라 인간의 노동과 고용관계에 본질적인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는 세계 최강 이세돌 9단을 4:1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로 이기면서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위기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오늘날에도 근로자들은 여전히 노동현장에서 소외되고 외톨이가 되어갈 수 밖에 없다.

파괴적 기술은 인간의 노동을 양적·질적으로 변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기업의 생산성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꾸준히 증가하지만, 노동의 투입량과 임금수준은 현저히 감소하는,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 감축 속도가 일자리 창출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교육을 통한 기술 습득 속도를 앞지르는 새로운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일자리의 절반이 향후 20년 이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리고 고도의 전문직과 단순 사무직으로 노동시장이 양분되는 일자리의 양극화 현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게 미래학자들의 예측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술의 확산으로 인해 고용과 일자리에 위협을 줄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가치가 과거보다 더 중시되는 측면도 있다는 희망적 견해를 제시했다. 즉 혁신적 기술을 새로 디자인하고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일은 새롭게 각광받는 지식 근로자인 ‘디지털 핵심인재(digital talents)’들이 담당하게 될 것이며, 기업들은 이러한 디지털 핵심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핵심인재들은 핵심 기량을 갖춘 프리랜서와 개별 전문가들과 함께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실시간 소통하면서 작지만 강한 기업을 운영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핵심인재들 간의 네트워킹과 협업을 통해 인류는 자본의 가치보다 인간의 가치가 휠씬 소중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새로 각광 받는 ‘디지털 핵심 인재’ 등장 예측

제러미 리프킨같은 미래 학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핵심인재 그룹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도 시장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것은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나날이 비중이 커지고 있는 ‘제3섹터’에서 공유경제(shared economy)를 통해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크라우드 펀딩이나 크라우드 파이낸싱을 통해 어렵지 않게 투자자를 모으거나 자본금을 모금하는 공유경제의 과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관광객 등 단기 체류자들에게 자신의 방과 집을 한시적으로 빌려주고 일정한 보상을 받는 ‘Airbnb’ 사업은 이미 세계 수 십 개국에서 성업 중이며, 언제 어디서나 고객이 요청이 있으면 자신의 차를 몰고 나가 고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우버 택시’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허용되어 새로운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이런 공유경제의 발전상은 모든 계층이 함께 잘 사는 ‘착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실현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공유가치 창출(CSV)을 통해 사회 갈등을 해결하고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프라하의 한 젊은이 그레고르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여건에 찌들어 어느 날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해버린 비극이 오늘날 4차 산업혁명시대에 재연되는 것을 우리는 막아야 한다. 소통과 협업을 통해 계층의 벽을 허물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나서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김성국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