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1917~1985)은 독일 전후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서 전쟁(2차 세계대전)의 비정함과 무의미성, 자본주의 사회 경제제도의 모순과 국가권력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인간에 대한 억압을 문학 활동과 사회 참여를 통해 고발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작가였다.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뵐은 전쟁과 전후 복구시기, 그리고 경제발전기에 겪게 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시대 작가였다. 그의 소설에는 소시민이 겪는 시대의 아픔이 담겨있어 독일은 물론 세계인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었다.
“무언가 일어나야 해!” 사장이 외치면 복창
뵐의 시대 작품 가운데서 기업조직의 문제를 다룬 『무언가 일어날 것이다(Es wird etwas geschehen)』는 1954년에 발표된 단편소설로서 물질만능 사회에서 이익 추구에 사로잡힌 기업 경영자의 광기를 풍자한 작품이다. 1인칭 소설인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평소 일하는 것보다는 사색에 잠기거나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젊은이였다. 직업이 없는 상태가 길어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자 하는 수 없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제조업체인 ‘분지델’이라는 회사를 소개받고 다른 일곱 명의 구직자와 함께 채용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장에 들어가니, 면접관은 없고 제공된 설문지 질문에 서면으로 답을 하게 되어있었다.
첫 번째 질문: “사람에게 팔과 다리, 눈과 귀가 각각 두 개씩만 있다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나는 평소 공상을 통해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여 답을 적었다. “제게 팔, 다리, 눈, 귀가 네 개씩 있다고 해도 저의 일 욕심을 충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 “귀하는 동시에 몇 대의 전화를 응대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의 답도 식은 죽 먹기였다. “저는 아홉 대의 전화기를 들고 동시에 통화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질문: “귀하는 퇴근 후에 무엇을 하는가?” 나는 단호하게 적었다. “저의 사전에는 ‘퇴근’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나는 당당히 합격하여 분지델 회사에 채용되었다.
근무 첫날부터 나는 아홉 대의 전화기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 회사 사람들은 모두가 일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브로셱 전무는 가히 일의 챔피언이었다. 그는 여러 공장을 챙기는 바쁜 업무 수행 와중에서도 국가자격시험에 응시하여 국가자격을 두 개나 땄고 밤에는 투 잡을 뛴다고 했다. 주위에서 도대체 언제 잠을 자느냐고 물으면 그의 대답은 늘 “잠 자는 것은 죄악이야!”였다.
분지델 사장은 아침 출근인사가 “무언가 일어나야 해!”였다. 그와 마주치는 직원들은 “예. 무언가 일어날 겁니다!”라고 화답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가 가끔씩 각 부서를 다니면서 회사의 표어인 “무언가 일어나야 해!”를 외치면 해당 부서의 직원들은 힘차고 명랑하게 “예. 무언가 일어날 겁니다!”라고 복창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마침내 열 세대의 주문 전화를 동시에 응대하는 데 익숙해진 어느 날, 정말로 무언가가 일어났다. 갑자기 분지델 사장이 내가 일하는 곳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거친 목소리로 “무언가 일어나야 해!”하고 외쳤다. 규정에 따르면 나는 지체 없이 “무언가 일어날 겁니다!”라고 명랑한 얼굴로 응답해야 했다. 그런데 그날 사장의 얼굴에는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색이 있었고 순간 당황한 나는 익숙한 그 대답이 입에서 금방 나오지 않았다. 대답이 늦어지자 사장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왜 대답을 못하느냐고, 대답을 하라고 사납게 다그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무언가… 일어날… 겁니다”라고 대충 대답했다. 그 순간 갑자기 분지델 사장이 바닥에 고꾸라졌고 내가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놀랍게도 그가 사망한 것이 아닌가. 나는 속히 브로셱 전무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이 있어났나요?” “네, 무언가 일어났습니다. 사장님이 돌아갔습니다.” 깜짝 놀란 전무는 사장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가 사망을 확인하고는 “정말 뭔가가 일어났군요.” “전무님, 무언가(장례식)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며칠 후 분지델 사장의 장례식이 회사에서 엄숙히 거행되었다. 장례회사에서 영구차와 장례사를 보내왔다. 회사를 대표해서 직원 중 누군가가 화환을 들고 관 뒤에 서 있어야 했는데 모두가 나의 사색에 잠긴 얼굴 표정과 상복이 잘 어울린다고 해서 내가 선발되었다. 장례회사 실장은 내가 정말 타고난 장례사 체질이라고 감탄하였다. 상복을 입은 맵시와 표정이 장례식 분위기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분지델 사장의 장례식 후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그 장례회사에 취직하였다. 나는 업무시간에 항상 검은 상복을 단정하게 입고 조화를 들고 서 있으면서 분지델 회사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과 일의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평소 사색과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드디어 나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게 된 것이다!
이따금씩 나는 전 직장 분지델 회사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회사의 생산 제품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비누가 아니었던가 추측을 할 뿐이었다.
사장 사라지자 회사 비누거품처럼 망해
풍자(satire)의 전형을 보여준 이 작품은 현대의 기업조직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사장은 시도 때도 없이 “뭔가 일어나야 한다!”라고 목표 달성을 재촉해도 정작 종업원들은 자기들이 생산하는 제품이 비누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는 한심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라는 것도 조직 구성원들과 소통을 통해 합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장이 독단적으로 정한 것이어서 종업원들의 마음속에 절실하게 어필하는 것이 아니었다. 회사 표어와 생산목표를 정한 사장이 사라지자 회사는 비누거품처럼 꺼지고 마는 그런 회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사장의 죽음 덕분에 주인공은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꿈의 직장’인 장례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상복을 입고 사색에 잠긴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돈을 버는 직업을 얻게 된 것이다. 그의 인생에도 무언가가 일어나기는 했다.
오늘날 경영자들이 당면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성과관리일 것이다. 그러나 업적제일주의의 그늘에 가려져 직원들을 위한 ‘의욕관리(energy management)’를 실천하는 데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많은 직장에서는 종업원들이 열정을 가지고, 전심을 다해 일을 하기 보다는 ‘찍히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업무의 목표가 아무리 잘 설정되어 있어도 직원들 스스로가 의욕을 가지고 목표에 몰입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목표 설정=모티베이션 향상’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모티베이션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소설에 등장하는 분지델 회사에는 모티베이션 딜레마가 있음에도 사장은 일방 통행식으로 업적 달성만을 강요하는 회사였고 직원들은 거짓 모티베이션을 보이며 연기를 했다. 모티베이션의 본질이란 과연 무엇일까.
모티베이션은 개인의 내면에서 분출하는 어떤 힘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티베이션이 작동하려면 내면의 힘이 밖으로 표출되어야 한다(inside-out). 그런데 많은 경영자들이 이를 반대로 이해하고 관리하고 있다. 경영자가 목표를 부여하고 업무 지시를 내리고, 실적에 따라 보상을 차별화하는 식으로 개인에 대해 외부 자극을 가함으로써(outside-in) 모티베이션을 작동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외부 자극에 의한 방식은 진정한 모티베이션과는 거리가 멀다.
외부 자극 대신 내면의 힘 표출시켜야
그러면 모티베이션 딜레마를 극복하고 직원들의 진정한 의욕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부모나 주위 사람들에게 집요하게 그것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거절당해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열정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고, 자신의 내면에서 분출되어 나온 강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모티베이션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들이 나중에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고 졸업 후 취업을 하게 되면 자신의 ‘선택’보다는 외부에서 강요되는 ‘의무’를 실천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상사의 눈치를 잘 살피는 등 ‘사회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어린 시절의 꿈과 의욕은 사라져 버린다.
모티베이션 딜레마는 사람들 마음 속에 잠든 꿈과 의욕을 깨워 자발적 업무 수행으로 이끌어낸다면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목표 설정을 통해 직원들의 자발적 모티베이션을 구현하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 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의욕을 증가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서 종국적으로 회사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일치될 수 있도록 경영자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분지델 사장처럼 직원들을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만 밀어붙이면서도 자신이 효과적으로 모티베이트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비극이다.
하인리히 뵐은 전후 서독 경제부흥 시대에 기업 내 성과관리와 모티베이션의 허구를 꿰뚫어 보았다. 마치 영문도 모르고 전쟁에 끌려 나갔던 독일 병사들이 국가의 요란한 선전과 선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쟁의 무의미성과 인간성 상실에 방황하고 지쳐갔던 것처럼, 영혼이 없는 성과 목표에만 함몰되어 인간성이 상실되고 있는 직장 내 근로자들의 방황하는 모습을 고발하며 사회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뵐의 이 경고는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성국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