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이상사회를 가리키는 유토피아(Utopia). 이 단어는 딱 500년 전 영국인의 머리에서 탄생했다. 당시 잘나가는 법률가이자 정치가였던 토머스 모어(1478~1535년)는 출생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는 사회를 부정하고 사유재산 없이 누구나 평등한 사회를 그렸다. 올해는 『유토피아』가 출간(1516년 12월·추정 )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모어가 태어난 영국 런던에선 유토피아 정신을 21세기에 접목해 다양한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적인 행사와 이벤트가 잇따른다. 모어는 그 시대 유토피아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그의 발자취를 찾아 유토피아 메시지를 저자의 목소리로 재구성해 봤다.


 

국왕을 배신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단두대에 올랐을 때 ‘내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으니 자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곳이 바로 이 자리지. 그런데 이젠 국왕이 절대권력을 갖는 게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대표로 정부를 구성한다니 지난 500년간 수많은 희생을 치렀겠군. 내가 태어난 곳은 돈놀이하는 국제금융업자들이 점령했구먼. 16세기에는 황금만이 인생의 목표고, 돈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사회로 치닫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토머스 모어가 본 우리 시대

이런, 소개가 늦었군. 나는 토머스 모어라고 하네. 내 이름은 몰라도 내가 쓴 책 『유토피아』는 알 거야. 지금은 유토피아가 이상사회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인다지. 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찾아와 봤네. ‘유토피아 정신을 되새기는 상상과 가능성의 해(UTOPIA 2016: Year of Imagination and Possibility)’란 부제가 달렸더군. 내 책이 500년 후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아 내 소명을 다했다는 생각이 드네.

 유토피아는 라틴어로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이상적인 국가’라는 뜻이지. 이렇게 제목을 단 데는 이유가 있어. 500년 전이라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내 기억을 더듬어 보자.
 

첫째로 난 목숨을 걸고 이 책을 낸 것과 다름없었네. 당시는 국왕과 귀족, 부자들이 민중을 착취하는 사회였어. 성직자까지 돈벌이에 혈안이 됐지. 그런데 정작 쉬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빈자(貧者)들은 늘 생활고에 허덕였어. 돈놀이하는 부류는 넘치도록 보상을 받아 대대손손 잘사는데 대다수 사람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갈수록 말라갈 뿐이었지. 거리에는 궁핍한 삶에 찌들다 도적이나 걸인으로 전락한 이들이 넘쳐났네.

 

배부른 자들은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노력·능력 부족 탓으로 돌렸어.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이들도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지. 사회구조 문제는 외면한 채 행동의 결과만으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법적인 정의인가? 나는 대법관으로도 일했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네. 걸인이나 도둑이 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을 방치한 잘못은 누구의 책임인가? 나는 사유재산과 화폐가 없는 사회라야 공평한 분배가 가능해진다고 생각했지. 유토피아는 모두가 동등하게 여섯 시간 일하고 여덟 시간은 수면을 취하며 나머지 시간은 자기계발이나 취미를 즐기는 곳이야. 국왕의 권력을 부정한 반체제적인 사회를 그렸으니 내 목이 남아났겠는가. 그래서 내가 내세운 인물이 헛소리한다는 뜻의 ‘라파엘 히스로다에우스’야. 실없는 화자(話者)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동경하는 거지.

500년이 지난 지금, 자네는 자유롭게 사회와 체제를 비판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맘껏 제언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둘째로 난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사회를 구상해 봤네. 예컨대 이성을 갈고 닦아 능력을 발휘하는 데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있겠는가. 여성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어. 자식 자랑 같지만 내 큰딸 마거릿은 고등교육을 받고 라틴어,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지식인으로 성장했지. 부부가 결혼해도 성격이 맞지 않아 불행하다면 숙려기간을 거쳐 합의이혼을 하는 게 모두의 행복을 위해 좋은 방법이지 않은가. 불치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계속 겪어야 한다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안락사를 선택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권리가 있어.

 지금 세상에선 내가 말한 것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그래, 그렇다면 자네가 지금 살고 있는 그곳이 유토피아일지 모르겠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

웨스트민스터 홀을 보니 내가 하원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던 때가 생각나는군. 의회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헨리 7세가 공주 결혼에 9만 파운드의 세금을 쓰겠다는 것 아닌가. 난 4만 파운드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가 곧장 쫓겨났네. 내 부친은 자식을 잘못 기른 죄로 벌금까지 내셨지. 헨리 7세는 그전에도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가혹한 중세 정책을 강행했어. 그러다 콘월 지방에서 농민들이 봉기했는데 2000여 명이나 학살당했지. 그런 참혹한 일을 겪고도 달라진 게 없었어. 영국에서는 1215년에 존 왕이 국민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한 최초 문서인 대헌장(마그나카르타)에 서명했지만 16세기까지도 의회는 껍데기일 뿐이었어. 지배계급의 행동을 견제하는 건 정치인 몇몇만으로 되는 게 아니더군. 사람들은 내게 왜 어리석게 현실정치에 참여하느냐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네. 그렇지만 폭풍우 속에서 항로를 조종할 수 없다고 배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나. 난 학자이자 법률가로서, 또 이성적 사고를 하는 인간으로서 더 나은 인류 사회를 위해 의견을 개진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우회적인 화법으로 『유토피아』를 쓴 것이네.
 
100년 뒤엔 더 나은 삶 기대

내가 세상을 뜬 지 400년쯤 후에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슬로건의 사회보장제도가 영국에서 나왔더군.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는데 말이야.

 유토피아는 만인이 인간다운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 내가 생각해 본 하나의 아이디어일 뿐이야. 나의 시대뿐 아니라 미래에 내 책을 읽는 이들이 더 좋은 사회를 고민하고 토론해 보자고 제안하기 위해 쓴 거라네. 유토피아에서처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는 것이 인간의 사고를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필수 과정 아니겠나. 내가 그린 이상사회는 빈부격차도, 신분·계급도 없고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받고,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였어. 500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는데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인지 수준이 높아진 21세기엔 유토피아가 가까워졌나? 자네는 어떤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는가? 100년 후께 다시 만나 좀 더 토론해 보는 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