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저어새는 몇 마리나 올까? “적어도 140쌍이 알을 품으면 좋으련만.” 저어새네트워크 회원들은 그리 소망한 걸까? 8년 전부터 매년 봄 인천 남동산업단지 유수지(홍수 때 물을 일시 저장하는 저수지) 안의 작은 섬을 찾는 저어새가 올해는 보름 전부터 모습을 나타냈고, 오자마자 알을 품기 시작했다. 아직은 20여 쌍이지만 더 찾을 것이다. 저어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였다. 유수지에 배를 띄워 작은 섬을 점검하고 둥지 재료인 나뭇가지를 미리 준비했던 이들은 가슴을 졸인다. 작년에 태어난 저어새들도 왔으니 올해 태어날 새끼들도 내년에 이곳 고향을 찾겠지.

61만3800㎡의 면적의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는 960만㎡에 달하는 산업단지를 홍수로부터 보호한다. 갯벌을 매립해 1992년 준공한 남동산업단지는 편평하다. 빗물은 우왕좌왕하며 낮은 곳으로 흐를 텐데 남동산업단지가 품는 6000여 공장의 지하시설은 억수 같은 장대비를 제때 배제하지 못하면 침수되지만 유수지가 있으니 안심이다. 유수지에 모이는 빗물은 바닷물이 만조일 때 보관되고, 낮아지면 바다로 나갈 테니까.

남동산업단지의 사업체들은 폐수를 인근 승기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지만 하수처리장은 공단보다 3년 늦게 완공됐다. 온갖 공장의 폐수가 3년 이상 유수지로 흘러들었다는 의미다. 하수처리장 완공 이후에도 공장 폐수는 한동안 유수지로 직행했다. 하수처리장으로 향하는 관로에 이어야 할 공장의 폐수관이 빗물관에 실수로, 어쩌면 의도적으로 연결된 탓이었다. 이후 잘못 연결된 관로가 정리됐지만 악취가 여전하니 남동산업단지의 유수지는 사람에게 민원의 대상이요, 철새에게 기피 지역이 됐다.

 

8년 전 악취 가시면서 새들이 찾기 시작해
민원이 거세니 어떻게든 악취를 줄여야했는데, 오랜 기간 가라앉은 오니의 처리 비용을 감당할 수 없던 인천시는 일부를 긁어 모아 유수지 안에 작은 섬을 만들었다. 시간은 흘렸다. 비는 해마다 내렸고 유수지에 모인 빗물이 씻어주면서 수질은 차차 나아졌다. 그 덕분인지 봄가을로 도요새와 물떼새 종류들이 가끔 유수지를 들리더니 요즘은 내려앉아 먹이를 찾는다. 작은 섬에 심은 나무는 일찌감치 말라죽었어도 가마우지가 앉아 날개를 말리려 앉는 횃대로 손색이 없었다.

가마우지가 앉은 모습을 보았을까. 봄이 되자 재갈매기가 둥지를 치기 시작했다. 인천 연근해의 한적한 섬이 매립을 위한 토석채취로 만신창이가 됐으니 악취가 진동해도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의 빈자리를 마다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재갈매기는 적응력이 뛰어나지 않던가. 서해안의 무인도에서 힘겹게 둥지를 치던 저어새도 그 작은 섬을 보았겠지? 냄새가 불쾌할 뿐 아니라 주변을 내달리는 자동차 소음에 진저리치며 대부분 접근하지 않았지만 한두 마리가 슬며시 내려앉았을지 모른다.

작은 섬에 내려간 저어새들은 새끼들이 빠져나간 재갈매기의 둥지를 빌렸을까? 덩치가 더 큰 저어새의 접근이 부담스러운 재갈매기가 피한 건 아닐까? 저어새가 알을 품는 모습을 하늘에서 본 다른 저어새들도 용기를 냈고, 재갈매기의 둥지에서 나뭇가지를 빼냈을지 모른다. 재갈매기가 저항한다면? 주걱처럼 커다란 부리로 제압했을 테지. 아무튼 8년 전부터 작은 섬에서 저어새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 소식을 들은 탐조인들이 쌍안경과 필드스코프(지상 망원경)를 들고 모였다. 인천의 탐조인이 전국의 탐조인을 불러 모으자 일본과 대만, 그리고 유럽과 호주의 탐조인까지 악취를 무릅쓰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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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아파트는 저어새 막는 방해꾼

서해안의 작은 무인도는 저어새가 새끼를 키우기 척박하다. 갯벌이나 논과 같은 습지가 멀리 있으니 먹이를 구하기 힘겹다.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의 작은 섬은 저어새에게 약속의 땅이었다. 저어새들이 무던했을지라도, 악취와 소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자동차의 번쩍거림을 참아내며 둥지를 친 큰 이유는 풍부한 먹이가 아니었을까. 유수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갯고랑이 근사한 갯벌이 넓게 펼쳐진다. 주걱처럼 넓은 주둥이를 갯고랑에 넣고 저으면 무럭무럭 자라는 새끼들 먹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소문을 들은 저어새는 해마다 늘어났다. 작은 섬에서 새끼를 키워낸 저어새와 그 섬에서 태어난 새끼들까지 자라서 동참하니 작은 섬은 어느새 비좁아졌다. 둥지 재료 쟁탈전이 심했지만 그 어려움은 곧 해결되었다. 야음을 틈타 나뭇가지를 보충해주던 저어새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이 이듬해 재료를 듬뿍 준비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덕분인데, 다른 방해꾼이 생겼다. 유수지를 바라보는 송도신도시에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병풍처럼 솟는 게 아닌가. 커다란 날개로 휘젓는 저어새에게 넘지 못하는 절벽이 됐다. 갯벌로 가려면 절벽을 우회해야 했는데, 거기에도 방해꾼이 나타났다. 송도신도시의 초고층아파트를 우회해 갯벌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는 현수교가 등장한 것이다.

현수교도 차차 익숙하게 넘게 되었으니 다행인데, 이런! 갯벌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게 아닌가. 두세 마리의 새끼들을 거뜬히 먹일 만큼 갯지렁이와 어패류가 풍성했는데, 갯고랑이 있는 인천 인근의 마지막 갯벌은 그렇게 사라졌다. 작은 섬에 자리 잡은 저어새의 90%가 부리를 저었던 그 갯벌을 개발업자들은 ‘송도 11공구’라 했다.

드넓은 갯벌을 매립한 송도신도시가 송도 11공구만큼 더 넓어진 이듬해부터 작은 섬의 저어새들은 손바닥 아니 손가락만큼 남은 갯벌에서 먹이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 전에 없던 일이다. 아니면 더 멀리 대부도 주변으로 날아가 먹이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호시절을 떠나보낸 저어새들은 새끼 한두 마리만 간신히 키우게 됐다.

저어새가 찾던 갯고랑은 낚시꾼도 드나드는 곳이었다. 바닷물이 가장 먼저 밀고 들어왔다 가장 늦게 썰며 나가는 갯고랑에 실한 물고기는 많은 법. 한데 낚시꾼들은 걸핏하면 낚싯줄을 남긴다. 20㎝에 가까운 검은 주둥이를 물속에 넣고 휘젓는 저어새에게 낚싯줄은 치명적이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해마다 서너 마리의 저어새를 구조하지만,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2013년 9월, 한 무리의 청소년이 저어새들이 먹이활동을 하던 매립지로 모였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치료를 받아 방생하는 자리였다. 어미가 기다리는 작은 섬을 떠나 천방지축 돌아다니다 먹이를 찾지 못해 탈진한 녀석을 저어새 모니터링하던 시민이 구조했다. 어린 저어새는 상자에서 풀려나왔고 눈가리개를 풀자 한 발 두 발 저 멀리 제 또래의 저어새들이 모인 곳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정이’라는 이름을 받은 녀석은 2년이 지나 고향인 작은 섬에 돌아왔지만 낚싯줄에 걸려 쓰러진 저어새들은 구조해도 소용없었다.

부리 끝이 노란 겨울철새 노랑부리저어새와 몸이 거의 판박인 저어새는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이 적색목록(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여름철새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중국 동북부 해안, 그리고 중부 일본의 일부 도서지방에서 여름을 보내며 번식하고 대만과 일본 남쪽 해안, 그리고 중국 하이난 섬과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겨울을 지내는 저어새는 한때 300여 마리에 불과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지만 우리를 포함해 일본과 대만의 생태보전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제 3000마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여름철새인 저어새. 전 세계에 3000마리 정도에 불과한 멸종위기종이다. 갯고랑에서 먹이를 잡으려 주둥이를 젓는 저어새. [그림 박성곤]

 

여름철새인 저어새. 전 세계에 3000마리 정도에 불과한 멸종위기종이다. 갯고랑에서 먹이를 잡으려 주둥이를 젓는 저어새. [그림 박성곤]

 

안심할 단계로 들어선 걸까. 문화재청이 1968년부터 천연기념물 205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지만 그건 서류상 조치일 뿐이다.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국제 협력으로 어렵사리 늘었어도 3000마리에 불과한 저어새는 아직 멸종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각별한 관심과 체계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송도11공구를 매립한 이후에도 다행스럽게 저어새의 작은 섬 방문은 줄지 않았다. 올해 저어새네트워크 회원들이 정성껏 마련한 둥지 재료가 모자랄지 모르지만 어미를 따라 겨울 서식처로 건강하게 떠나는 새끼의 수는 늘지 못할 것이다. 인천시는 2009년 말 저어새를 비롯한 철새의 보전을 위해 송도신도시 인근 개벌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지만 늦었고 터무니없이 좁다. 갯벌은 저어새를 비롯해 수많은 철새와 봄가을 나그네새들의 ‘비빌 언덕’이다. 고즈넉이 바라보는 사람에게 휴식과 안정을 선사하는 지평선이었다.

 

탐조객 끌어들이는 관광상품으로 활용을

인천시는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의 상징동물로 저어새를 선정했다. 저어새가 그 사실을 반겼을지 알 수 없는데, 대회가 끝나자 저어새를 인천의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겠다던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일본 구마모토 현의 캐릭터 ‘구마몬’이 지정 4년 만에 1조 원의 수익을 끌어냈다는데, 인천은 저어새를 관광상품으로 활용할 구체적인 방법이나 예산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스스로 찾아온 저어새를 반길 생각이 있기는 있는 걸까. 저어새가 10년 가까이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서 새끼를 낳고 인천 갯벌에서 키운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송도 11공구를 매립하면 15조원 이상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호언했다. 개발을 서두르는 이치고 기대효과를 부풀리지 않는 경우는 없는데, 방치된 면적이 여전히 넓은 송도신도시에서 추가 매립이 시급했을까? 일부에서 낡고 비좁아진 승기하수종말처리장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장소가 하필 저어새가 찾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여야 할까? 누구의 경제효과를 기대하는 걸까? 그렇듯 해안의 개발은 저어새의 안위를 살피지 않는데, 손가락만큼 남은 갯벌은 내내 온전할 수 있을지. 만시지탄이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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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인하대 생물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 를 받았다. 성공회대·인하대 등에서 강의도 하고 있 다.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이것은 사라질 생 명의 목록이 아니다』 『탐욕의 울타리』 『동물 인문 학』 등의 저서가 있다.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