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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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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해 외국인에게 하는 질문은 쓸데없을까. ‘우리 문제는 우리가 제일 잘 아는데 우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에게 뭘 물어보느냐’는 논리에 일리가 있다. 예외가 있다. 로버트 파우저(54) 전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교수가 그런 경우다. 우리말·일본어를 모국어인 영어만큼 잘한다. 최근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미래 시민의 조건』(작은 사진)이라는 책을 영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써서 출간했다. 언어를 알면 그 언어를 쓰는 사회가 보인다. 일본·한국에서 각각 13년씩 산 그가 한국이나 한·일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1980년대부터 한국의 변화상을 추적했다.


“미국하고 한국은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 양국 젊은이들이 특히 그렇다. 취업 같은 앞날에 대한 걱정이 많기 때문에 그들은 변화를 원한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젊은이를 만족시키는 정치가 나올 것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는데 식당에서 밥 먹고 술 마실 때 큰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물론 만나서 반가우니까 그렇겠지만.”

-한국인을 ‘아시아의 이탈리아인’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과 더 비슷하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조용하다. 술을 좋아하지만 조용하게 마신다. 수줍음을 탄다. 한국 사람은 다혈질이다. 특히 50대가.”

-한국 사람, 일본 사람을 비교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음식·주거 환경뿐만 아니라 조직도 비슷하다. 서울대 교수 할 때 교토대에서 교수 생활 경험 덕분에 쉽게 적응했다. 다른 점도 많다. 한국 사람은 낙천적이다. 제가 외국인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국인은 일본인과는 달리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절(friendly)하다. 한 2년 전에 가방을 넣을 물품보관함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자기 사무실에 가방을 보관해줬다. 일본 사람들도 친절하지만 뭔가 ‘넘으면 안 되는 선’ 같은 게 있다.”

 

-한국인은 역시 정(情)인가.
“정하고는 또 다르다. 정은 뭔가 더 깊은 관계를 요구하는 감정이다. 한국인의 친절은 사실 표현하기 힘들다.”

 

-한국인의 한(恨)은 또 어떤가. 제일 비슷한 영어 단어는?


“이 문제에 대해 몇 명은 박사논문을 썼을 거다. ‘Remorse’ 등 여러 단어가 있지만, 사실 저는 한국인에게서 한을 그리 강하게 느끼지 못한다.”

-현대 한국인은 이미 한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뜻인가.


“그렇다. 한이 한국과 다른 나라를 구분 짓는 차이점 같지는 않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을 겪어보니 어떤 게 두드러지는가.


“저는 한옥 보존에 관심이 있다. 언론에서 ‘파란 눈의 한옥 지킴이’라는 표현으로 화려하게 포장해주기도 했다. 한옥 보존 활동을 하다 느낀 것은 ‘공공 이익’과 ‘개인 이익’의 균형이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미흡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급하게 달려왔다. 개인 이익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후손에게 역사를 남기는 것 같은 공공 이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 이익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확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좀 부족하다.”

 

-일본 각료들이 주기적으로 망언을 해댄다. 일본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문이 생긴다.


“일본식 민주주의이기는 하지만 일본은 민주화됐고 공공 이익과 개인 이익 사이에 균형이 잡혔다. 고령화로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일본은 유럽의 복지국가 같은 느낌도 준다.
한국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일본의 진보·좌파 세력과 공산당은 한국에 추가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자신의 입지에 대해 예민한 나라다. 고령화와 경제력 약화의 와중에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 언젠가 ‘한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공론이 형성되면 망언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 때 한·일 관계가 개선됐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개방으로 일본인들도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는 한류 붐이 크게 일었다. 정치 문제와 국민 교류를 분리시키는 방법을 찾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번 책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


“한국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개인적으로 기쁘다. 제 자신을 시험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외국어로 책을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예상 독자층을 상정하고 책을 썼는지.


“처음에는 40~50대 생각을 했지만 젊은 층도 읽을 것 같다. 이 책의 영향으로 젊은 층이 시민의 권리를 좀 더 ‘개인’ 차원에서 주장했으면 좋겠다. 사실 민주주의에서는 집단보다 개인이 중요하다.”

 

-책에 정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한국 대통령들을 보면 특별히 떠오르는 게 있는지.


“한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과 큰 차이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노선에 대한 신념과 ‘끼’가 세다는 점에서 로널드 레이건과 비슷하다. 기득권 바깥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오바마를 연상시킨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게는 애매한 존재다.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는 점에서 약간 조지 W 부시 같다.”

-그 사람이 500번 이상 들었을 질문은 안 하는 게 좋지만, 하겠다.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 게 영어 교육과 학습의 중심이 돼야 한다. 한국에서는 발음 등 정확성을 지나치게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영어 학습자는 너무 자신감이 없다. 발표·토론 기회와 작문 경험을 늘려야 한다. 문제는 한국어로도 자신의 생각을 써보는 활동을 못해봤기 때문에 갑자기 영어로 하려니까 더욱 무리가 따른다는 점이다.”

 

-한국어·일본어를 잘하게 된 비결은.


“학습 방법을 개발했다. 혼자서 신문을 읽으며 독해 중심으로 공부했다. 어휘를 늘려가며 한국·일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았다. 듣기는 신경을 많이 안 썼다. 그저 일상생활 속에서 익혔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