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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문봉선 개인展·추사 김정희와 조각가 김종영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9. 20. 21:52

전시장에 불어옵니다, 묵향 품은 秋風

입력 : 2015.09.15 03:00 | 수정 : 2015.09.15 06:43

[동양화가 문봉선 개인展·추사 김정희와 조각가 김종영展]

전국 산천 다니며 담아낸 '문봉선표 묵죽화' 펼쳐져
서예와 추상조각의 만남… 꾸밈없이 사물 본질 드러내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 부는 초가을, 여름내 들떴던 마음을 묵향(墨香)으로 차분하게 잡아줄 두 전시가 열리고 있다.

문봉선의 바람 맞은 대나무

"천 년이란 전통의 무게를 지닌 동양화에선 1㎜ 나가기도 참 어렵습니다. 이 한 발짝 나가는 데 40년이 걸렸네요." 서울 대치동 포스코미술관에서 개인전 '청풍고절(淸風高節·맑은 바람 높은 절개를 뜻하는 말로 대나무를 가리킴)'을 여는 동양화가 문봉선(54)이 묵죽화 앞에서 조용히 웃었다. 전통의 현대화란 미명하에 동양화의 근본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이는 요즘 그는 대나무를 들고 전시장에 나왔다. 군자의 표상이자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정공법이다.

김종영의 청동 조각 ‘작품 68-1’(①)과 추사의 ‘자신불(自身佛)’(③). 추사의 옹골찬 필획과 김종영 조각이 지닌 구조미가 닮은 듯하다. ②문봉선의 ‘죽림도(竹林圖)’. 비단 위에 절개의 상징인 대나무와 바위를 그렸다. 

 

김종영의 청동 조각 ‘작품 68-1’(①)과 추사의 ‘자신불(自身佛)’(③). 추사의 옹골찬 필획과 김종영 조각이 지닌 구조미가 닮은 듯하다. ②문봉선의 ‘죽림도(竹林圖)’. 비단 위에 절개의 상징인 대나무와 바위를 그렸다. /학고재갤러리·김종영미술관·포스코미술관 제공

 

그러나 과거의 복제는 아니다. 그가 '1㎜ 전진(前進)'이라 표현한 '문봉선표 묵죽화'가 전시장 가득 펼쳐진다. 바람결에 댓잎이 하늘을 향해 15~30도로 비스듬히 움직이는 풍죽(風竹), 담묵 묻혀 큰 붓으로 쓱 그린 장대비 속 우죽(雨竹) 등이다. 흉중성죽(胸中成竹·대나무를 그리려면 붓 들기 전 마음속에 온전한 대나무가 있어야 함)을 위해 그가 전국 산천을 돌아다니며 사생(寫生)한 결과물이다. 10월 6일까지. (02)3457-1665

◇추사와 김종영의 만남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 ~1982)은 생전 1000여점의 서예 작품을 남겼지만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는 동양의 추사 김정희와 서양의 세잔밖에 없다"며 추사로부터 영향받았음을 종종 내비쳤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불계공졸(不計工拙·기교의 능함과 서투름을 따지지 않음)과 불각(不刻)의 시공(時空)'전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간극을 넘어 추사에 대한 김종영의 오마주를 보여주는 전시다. 추사의 작품이 현대미술 작품과 나란히 전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은 "'미는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해 있는 형(形)을 자연에 돌려준다'는 김종영의 '불각(不刻)'은 '통나무같이 고박하고 고졸한 사물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게 한다'는 추사의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추사의 '자신불(自身佛)''순로향(蓴鱸鄕)' 등과 김종영의 추상 조각을 번갈아 보다 보면 부박하면서도 옹골찬 추사의 필획이 김종영의 조각에서 입체로 살아난 듯하다. 10월 14일까지.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