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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7. 25. 20:12

산티아고 순례길, 행복을 주는 2천 리

레이디경향 | 입력 2014.07.08 14:33

행복은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행복은 생각이나 이야깃거리가 아닌 실천과 행동이 돼야 한다. 지난 6월호에서 순례길의 벅찬 감동을 안겨주고, 도전의 용기를 심어주었던 도보 여행가 김효선씨와의 인터뷰에 힘을 얻어 행복 체험에 나섰다. 멀고 먼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말이다.

길을 떠나는 이유

"얼마라고? 800km? 농담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 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설마!"가 지배적이었다. 제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서울-부산 왕복 거리와 비슷한 거리이니 말이다. 10리가 4km이니, 2천 리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냥 걷는 길이 아니고, 해발 1,500m를 넘나드는 높다란 산을 몇 개나 정복해야 하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나무 그늘 한 점 없는 메세타 평원을 몇 날 며칠 동안 통과해야 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로 9개의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라에서 시작하는 '프랑스길'을 걸을 것이며,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이하 산티아고)까지 800km가 맞고, 커다란 배낭에 생활용품을 넣어 짊어지고 온전히 두 발로 걸어서 간다고 하면, 꼭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거길 왜?"
왜냐고? 무엇 때문에 그 길고 험한 길을 걸으려고 하냐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답을 하면, 의아해하는 눈치다. "한 달 내내 걷기만 하는데 행복해질 수 있겠느냐" 혹은 "혹시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면 더 행복해지지 않겠느냐"라고 반문도 한다. '걸으면 행복해진다'라는 과학적 증거를 대보아도, 잘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틀림없는 사실은 최근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고, 특히 한국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명숙아!" 하고 부르면 절반이 돌아본다는 농담까지 있다. 무엇이 있기에 그 길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까? 도보 여행가 김효선씨는 물론이고, 그 길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많은 경험자들이 그 순례길을 다시 걷길 원하는 것을 보면, 그 길에는 긍정적이고 매력적인 무엇인가가 있음은 틀림이 없다.

결국 "거길 왜 가느냐?"라는 질문의 답은, 길을 다 걷고 답해줄 수밖에 없다. 과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행복해질까? 만약 그렇다면 무엇이 행복하게 만들까?



순례자의 하루

지난 봄 어느 날. 비행기, 버스, 택시를 번갈아 타고 무려 21시간이나 걸려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인 생장피드포르라는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의 작은 도시에 닿은 것은 밤 10시경. 막 문을 닫으려는 순례자 사무실을 찾았다. 자원봉사자에게 순례자 여권과 지도를 얻고, 순례자의 표식인 조가비를 배낭에 매달면 제법 순례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다음날 아침,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피레네 산을 거쳐 론세스바에스까지의 첫날 여정을 필두로,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29일간의 순례길이 시작됐다. 순례자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 간단한 아침 식사를 들고 길을 나선다. 10시 전후까지 3, 4시간을 걷고는 바에 들러 음료와 샌드위치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신발 끈을 조인다. 3시간 정도 걸어 오후 1, 2시경이 되면 점심을 먹는다. 칼로리 소모가 많아 넉넉히 먹어야 버틸 수 있다. 식사 후 '올라('안녕'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와 '부엔 카미노('좋은 여행'이란 뜻의 스페인어)'라는 인사말을 들으며 2, 3시간을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발과 종아리가 아프고 힘이 들어 당장이라도 다리 뻗고 쉬고 싶지만, 일단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를 찾아야 한다.

순례자 여권으로 알베르게에 등록하고 나서야 짐을 푼 뒤 땀을 씻어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빨래 또한 일상 중 하나다. 그 후에는 한가롭다. 필자는 주로 글을 쓰고,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함께했다. 저녁 식사는 알베르게 주방에서 해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근처 식당에서 해결한다. 재미있는 것은 식당에는 '순례자 메뉴'라는 것이 있는데 전식, 주식, 후식과 더불어 와인을 1병씩 준다. 9~12유로 정도 하는 순례자 메뉴에 곁들여지는 와인은 그 마을 특산품이다. 당연히 거의 매일 다른 종류의 와인을 맛본다. 밤 10시 전후가 되면 알베르게의 공동 침실(적게는 6명, 많게는 1백여 명이 함께 쓴다)에서 잠을 청한다.

친구들 이야기

길 위에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많은 감동적인 순간들을 맞이했다. 마치 순례자들 모두가 드라마 같은 위대한 역사를 갖고 있는 듯했다. 길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 중 순례길을 완주한 5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이클(호주·74)

벤토사의 한 바에서 만난 이 용감한 노인과는 이틀을 함께 걷고, 세 번 이별을 하고 네 번 재회를 한,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다. 베트남전에 공병으로 참전했으며, 현재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오려고 했으나, 두 달 전 아내가 양쪽 무릎 수술을 한 탓에 혼자 왔다. 양쪽 발 앞뒤로 물집이 생겼고, 왼쪽 엄지발톱이 빠지는 부상에도 완주를 했다.

"완주가 목표야! 원하던 것을 성취하는 기쁨을 맛보고 싶은 거지. 사람들이 그러더군. 그 나이에 성취가 무슨 소용이냐고. 모르는 소리! 나이가 들어도 무엇인가 자신만의 힘으로 이룬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경험이거든!"

질리언(아일랜드·37)

로그로뇨로 가던 길에 만난 매력적인 여인. 길 위의 많은 순례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유명 인사다. 적십자사에서 일하는 그녀는 잠비아 등 분쟁 지역에서 통역 일을 했고, 때로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앞으로 같은 일을 해야 할지가 고민이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 길을 나섰다. 그녀는 필자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26일 만에 순례길을 완주했다.



"내 직업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그래요. '너는 참 훌륭한 일을 한다. 너의 희생은 인류 전체를 위해 무척 중요하다'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어느 누구도 내가 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가 고민이에요. 이 길을 걸으면 답을 주려나요?"

사울(핀란드·43)

수년 전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요즘은 아프리카에서 빈민 구호활동을 하는 호탕한 성격의 이 친구와는 서로가 가장 필요할 때 만났다. 산토도밍고에서 다리 근육통으로 고생하던 그에게 간단한 의학적 처치를 해주었고, 거꾸로 필자가 무릎 통증으로 주저앉을 뻔했을 때 기적처럼 내 뒤에 나타나 약을 주고 갔다.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나 진하게 우정의 술 한 잔을 나누었던 그는 행복해서 걷는다고 했다.

"사고가 나고 아내와 이혼을 하고…. 아주 힘든 시기였지요. 그때 힘을 준 것이 아프리카에서 한 봉사활동이었어요. 하지만 수년간 버려진 사람들을 돕다 보니 많이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나를 위해 행복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찾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 길을 걸으니 행복해지잖아요! 좋은 친구들은 내게 행복을 주는 에너지예요. 정말 좋아요. 당신도 행복하지요?"

에미(네덜란드·19)

이 귀여운 소녀 덕분에 네덜란드의 '커피숍'에서는 커피를 팔지 않고 술을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학에 합격하고 1년 동안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의 하나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았다고. 부모님의 반대를 물리치고 용감하게 나선 그녀의 성숙함에 박수를 보냈다. 부모의 반대는 마치 우리를 보는 듯했다.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을 졸랐어요. 그랬더니 아빠가 조건을 두 가지 내놓으셨어요. 하나는 버튼을 누르면 수백 미터까지 들리는 경보장치고요. 또 하나는 스마트폰에 깔아놓으면 GPS를 통해 늘 제 위치를 알려주는 앱이었지요. 둘 다 거절했어요. 진짜 독립하려면 그러면 안 되니까요! 근데 어른이 된다는 것이 영 쉽지 않네요(웃음)."



안드레아(볼리비아·32)

길 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그녀는 명랑 쾌활한 모습과 달리 마음의 짐이 무거운 듯했다. 이제 곧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며, 이 길에서 용기를 얻고 싶다고 했다. 주말이면 스페인에 사는 스위스인 남자친구와 함께 길을 걸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늘 최선을 다해 사랑했지만, 그때마다 남자들이 떠났지요. 그러고 나면 몇 달을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어요. 몇 번 그런 일을 겪어서인지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요. 이제 저도 스페인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직장이 필요한데 아무리 노력해도 불안하기만 한 거예요. 그 마음을 알고 지금의 남자친구가 이 길을 추천해주었어요. 이 친구는 예전의 남자들과는 달라서 다행이에요. 물론 이 친구에게도 많이 의존하면 똑같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혼자 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해요."

욕심이 부른 화

필자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제일 중요한 짐은 노트북과 카메라였다. 결코 10kg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배낭의 무게를 무려 15kg으로 만든 물건들이었지만, 이 길을 온전히 기록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빼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16일 차에 노트북 충전기는 사망했고, 21일 차에는 카메라마저 부주의하게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루 종일 걷고 나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서너 시간 동안 하루의 일상을 적어 내려가던, 개인적으로는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 날아가버렸다. 그 남는 시간에 더 많이 걷게 됐다. 더구나 기가 막힌 풍경을 보면 그때 느낀 감동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열심히 찍어대던 카메라가 없으니, 결국 이전보다 빨리 걷게 됐다. 노트북과 카메라의 고장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거리를, 더 빨리 걷게 된 것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필자의 욕심이었다. 욕심은 늘 화를 부른다. 무리해서 더 빨리 더 많이 걷기 시작했더니, 무릎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은 휴식을 취하라는 신호다. 하지만 더 빨리 걷고 더 많이 보고 싶은 욕심으로 그 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린 결과, 목적지 산티아고를 100km 남기고는 마운틴폴에 의지해 거의 한 발로 걷다시피 했다. 당연히, 행복해야 할 길이 고통이 됐다.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쉬면서 걸었다면, 더 행복한 길이 됐을 텐데….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그리고 깨달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산티아고. 어떤 이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건네는 "Congratulation!(축하해)" 한마디에도 눈물을 쏟아내고, 또 어떤 이는 대성당의 종탑을 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서 올라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고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지나치게 담담해서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순례 완주 증명서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을 때는 시니컬한 생각마저 들었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를 왔고, 또 무엇을 얻은 것일까?'
그런데 그날 저녁, 길에서 우연히 만나 누구보다도 친해진 6명의 친구들과 순례 완주 기념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벌써 세 번째 완주라는 독일인 친구가 자신은 처음 이 길을 끝마치고 깨달음을 얻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 나를 위로했다. 다행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와 일기와 사진과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길에서 얻은 깨달음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떻게 우릴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우선 '노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놀아본 적이 없다. 유럽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OECD 국가 중 최고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로서는 '노는 시간'은 귀하디귀한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행복은 여유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몰입과 성취에서도 행복을 얻을 수 있으나 반드시 적당한 휴식과 여유가 보장돼야 한다. 이 길은 우리에게 노는 시간을, 게다가 '순례'라는 정당한 합리화를 제공한다.

그리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길이 있다. 처음 1주일 정도는 매일 비를 맞아야 했지만, 그 뒤로 20여 일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신비롭게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 늘 앞쪽으로 펼쳐지는 내 그림자(산티아고 순례길은 서에서 동으로 걷기 때문에 해를 등지고 걷게 된다), 이름 모를 들꽃의 영롱한 빛깔과 향기, 끝이 보이지 않는 넓디넓은 메세타 평원, 드라마틱한 능선을 그리며 펼쳐진 고봉, 짙은 녹음의 나무 터널 등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특히 하늘에 매료됐다. 때로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때로는 구름이 그려놓은 신기한 그림에 가슴 벅찼다. 짙푸른 하늘 사이사이로 보이는 옅은 코발트 빛깔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만약 내게 이 길에서 한 가지만 가지고 가라면, '하늘!'이라고 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길, 하늘 그리고 푸른 자연과 동화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지만, 더욱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 길에 홀로 남겨지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속에서 용서하고, 화해하고, 꿈꾸게 된다. 바쁜 일상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여유 있는 사색이 우리의 내면을 더 깊게 만드니, 행복은 저절로 솟아오른다. 또 순례길만이 갖는 독특한 문화가 순례자들을 행복하게 한다.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고, 유구한 종교적 배경을 품고 있다. 덕분에 마을마다 성당을 비롯한 수려한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부르고스나 산티아고와 같은 대도시의 규모가 큰 성당도 좋지만, 작은 마을의 단순하고 검박한 성당 또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스페인 사람들의 건축에 대한 사랑과 열정 덕분에 마을의 관공서와 개인 주택 또한 눈여겨볼 만한 것들이 많다. 특히 레온과 아스트로가에서는 세계적인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사치도 누릴 수 있다.

음식 또한 순례자들을 들뜨게 한다. 특히 갈라시아 지방에 들어서면, 더욱 맛있는 음식들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멜리데에서는 마치 우리의 문어숙회 같은 '뿔뽀'가 입맛을 돋운다. 또 마을마다 있는 바에서는 특색 있는 타파스(일종의 전채 요리)와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와인은 특히나 매력적이다. 각 마을별로 재배하는 품종이 다르고, 양조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아주 훌륭한 수준의 와인을, 그것도 마을마다 색다른 맛을 내는 와인을 매일 마실 수 있다니! 에스테야에서는 세계 최상급의 로제 와인을, 카리온에서는 탄산이 들어간 매우 독특하고 희귀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은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은 물론이고, 음미를 통해 삶의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하게하기도 한다.

순례길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순례자들 자신이다. 한 달여 동안 걷기만을 자청하고 나선 이 길에 목적이나 다짐이 없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모두가 나름의 명분과 이유를 갖고 있는 이 좋은 사람들을 친구로 만드는 것은 예상 밖으로 쉽다. 이유가 있다. 첫 번째, 길 위의 사람들은 모두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라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순례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동 침실과 욕실을 함께 사용해야 하는 등 다소 열악한 환경으로 생긴 고단함을 서로 잘 이해해주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다소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낯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하다는 점도 있다. 이 길을 떠나면 다시 볼 일이 없으니…. 어쨌든 좋은 친구와 함께 고난을 이겨내고 목적을 성취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끝으로 성취를 빼놓을 수 없다. 비록 결과보다는 과정이 행복에 있어 중요하지만, 중년 이후 성취를 잊고 살던 우리에게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증명서'는 비록 얇은 종이 한 장이지만 잊고 살았던 행복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늦었지만,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은 훗날 또 다른 도전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여유, 아름다움, 사색, 음미, 친구 그리고 성취.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니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길은 온통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의지, 용기, 인내가 준비되고, 건강한 신체적 조건을 갖출 수 있다면 그리고 길 위에서 지나친 욕심만 버린다면, 우리는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이제 길을 걸어 봅시다. 부엔 카미노!



Profile 행복 디렉터 김진세 박사는…


여자보다 여자 마음을 더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는 한편, '행복연구소 해피언스'를 통해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행복 멘토'라 불리고 있다. 본지에 2008년 1월호부터 3년간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을 진행했으며 2012년부터 2년간 '행복학 개론'을 통해 명사들의 행복법을 전해왔다. 저서로는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심리학 초콜릿」, 「스타트 신드롬」, 「애티튜드」가 있다. 트위터 @happy_mentor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사진 / 김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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