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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고해(苦海)에 배 띄운 선장들.. 각자의 허물 돌아봐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5. 1. 23:29

 

"모두가 고해(苦海)에 배 띄운 선장들.. 각자의 허물 돌아봐야"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만난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

 

경향신문 | 글 김석종 선임기자·사진 김영민 기자 | 입력 2014.05.01 21:51 | 수정 2014.05.01 22:35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초상집이다. 부처님오신날(6일)을 앞두고 사찰에 내건 연등도 빛을 잃었다. 설악산 신흥사·백담사의 조실(祖室·사찰의 큰어른)이자 시조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설악산 도인' 오현 스님(82). 지난달 28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흥천사 조실채에서 만난 노스님은 "천지 만물이 나와 한몸이라는 동체자비(同體慈悲)의 불교사상에서 보면 세월호와 함께 지금 온 국민이 바다에 침몰한 셈"이라며 "남의 허물만 말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모두 자기 자신의 이기심을 돌아봐야 한다"고 일갈했다. 짙어가는 신록 사이로 봄비가 처연하게 내리고 있었다.

 

 

 

 

 

                                                                       ▲ 다른 이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 부처님

민심은 천심이라 했건만 민심 외면하고 천심을 구하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선장… 힘 빼고 여유와 친화력 보이길

 

- 이런 때 부처님 오신 뜻은 무언가.

 

"작년 피었던 꽃이 올해도 피었을 뿐이다. 그 꽃을 보는 마음이 밝고 맑아져야 한다. 부처님의 자비가 바로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자비를 베푸는 것이 이 세상에 부처님 오신 뜻이다."

 

- 이번에 가족을 잃은 이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세상의 어떤 말이 위로가 되겠나. 내가 죽도록 좋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저 말일 뿐이다. 다만 저 바다만 바다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물 없는 바다다. 그래서 고해(苦海)라고 한다."

 

- 청와대, 정부, 여야 정치인들이 다 욕을 먹고 있다.

 

"불교 화두에 병정동자래구화(丙丁童子來求火)라는 말이 있다. 불(병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에게 불을 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권력이나 힘만 좇는 요즘 정치꾼들이 딱 그 모양이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는데 민심은 외면한 채 천심만 구하는 꼴이다."

 

- 이 나라의 어른인 게 부끄럽다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 개개인이 고해에 배를 띄운 선장들이다. 자기 허물을 못 보고 남의 허물만 들춰내면 세상이 혼란해진다. 우리는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총칼 대신 부처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만들 정도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면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너무 커졌다. 자기 가족 빼놓고는 관심조차 없다. 그런 이기심을 반성하지 못하면 반드시 또 큰 사고가 일어난다."

 

-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아버지한테 배운 걸 죄다 내다버려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아버지식 대통령에 집착하고 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선장이다. 선원들도 역할이 있고 전문분야가 있는데 선장이 자기 혼자 모든 걸 다 하려고 하면 잘한다는 소리 듣기 어렵다. 장관이나 공무원들이 잘못해도 내가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할 수 있는 여유와 친화력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이 힘을 빼야 나라가 편안하다. 나라 걱정을 혼자만 하지 말고 야당과 대화하고 국민과 함께해야 불통이란 소리를 안 듣는다."

 

- 불교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불교의 진리가 어디 있나.

 

"절에 부처 없다. 각자 자기 자신이 미완의 부처다.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 즉 선에도 집착하지 말고 악에도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차별과 분별심을 버리라는 것이 불교다. 불교를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불교 가르침은 우리 속담에 다 들어 있다. 팔만대장경을 줄이면 '사람 차별하지 마라',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지 마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가 전부다."

 

오현 스님은 강원도 불교계의 좌장이다. 신흥사·백담사 외에도 불타서 복원한 낙산사, 진전사 등 설악산 일대의 모든 사찰을 관장한다.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상과 만해축전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산중 선승이면서도 고은, 신경림, 조정래, 이근배 등 문인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정치인, 학자, 관료, 종교인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다. 그의 화려한 인맥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에 받아줬고, 이소선 여사 등 어려운 재야인사들도 도왔다. 기행으로 유명했던 중광 스님도 말년을 그에게 의탁했다.

 

- 스님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다 헛소문이다. 내가 아니라 설악산과 백담사, 만해축전이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다. 본래 사람 차별 안 하는 게 중노릇이다. 전 전 대통령은 미망(迷妄) 때문에 백담사까지 왔다. 승적을 박탈당한 중광 스님은 말년에 중으로 죽고 싶다고 해서 백담사에 거처를 마련해줬다. 나 역시 제대로 된 중은 못되고 낙승(落僧)이다. 장미가 아무리 고와도 길가의 패랭이꽃 향기와 빛깔은 갖지 못한다. 그것처럼 내가 모르는 세계,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이 무진장한 법이다. 선악, 크다 작다, 잘났다 못났다는 생각이 다 분별심이다."

 

- 낙산사 화재 땐 어떤 마음이었나.

 

"나무 법당이 불타는 것은 자연법칙이고 부처님 법이다. 스님들에게 호들갑 떨 것 없다고 했다. 네 몸 태우는 탐(貪·욕심), 진(瞋·성냄), 치(癡·어리석음) 삼독(三毒)의 불부터 끄라고 했다."

 

- 지난해엔 그동안 공들여 운영해온 만해마을을 동국대에 통째로 기부해서 화제가 됐다.

 

"원래 내 것이라는 게 어딨나. 가진 게 없는 것이 무소유가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것이 무소유다. 이제 나는 죽을 일만 남았다. 내가 죽고 나면 만해와 인연이 있는 동국대가 잘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에게 맡기면 반드시 시비가 생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더 가지려고 하는 데서 싸움이 일어난다. 돈은 버는 바 없이 벌고, 쓰는 바 없이 써야 한다."

 

- 스님에게 시는 수행과 같은 것인가.

 

"뿌리는 같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 내게 선(禪)은 나무의 곧은 결이고, 시는 나무의 옹이 점박이결 같은 거다. 선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고, 시는 인생이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스님은 시 '아득한 성자'를 낭독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내가 가만히 보니까 뜨는 해 지는 해 봤으니 더 볼 거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가 성자다."

 

-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나.

 

"매화꽃을 찾아서 산과 들을 헤매다 지쳐서 집에 돌아오니 뜰 안에 매화가 피어 있더라는 고사가 있다. 행복을 밖에서 구하지 말고 가까운 곳, 자기 안에서 찾으라는 말이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7살 때 절간 소머슴으로 맡겨져 출가했다. 법명은 무산(霧山), 호는 설악(雪嶽)이지만 필명인 조오현 스님으로 통한다. 설악산권의 신흥사·백담사·낙산사 등을 중창, 복원하는 등 '설악산 산지기'를 자처하며 평생을 보냈다.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언행과 기행의 일화가 수두룩하다. 한때 미국에서 접시를 닦으며 만행을 했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 아득한 성자 > < 적멸을 위하여 > 등의 시집으로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한국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1997년 만해상을 제정해 만델라, 달라이라마 등 세계적인 인권·평화 운동가들에게 시상했다. 현재 제자 정념 스님을 통해 서울 성북구의 쇠락한 고찰인 흥천사를 중창하고 있다.

 

< 글 김석종 선임기자·사진 김영민 기자 sjkim@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