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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기초 세워야 민주주의 작동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3. 30. 15:19

 

도덕적 기초 세워야 민주주의 작동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정치와 도덕’ 강연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 제368호 | 20140330 입력
“보수는 경제와 성장을 앞세우다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한 여러 영역의 문제를 불러일으켰고 그에 대한 해결 방향 제시에도 미흡하다. 진보는 진보대로 지향하는 가치나 이상이 불분명하고 불평등 해소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 결과 별 내용 없는 권력투쟁만 벌어지고 있다.”

최장집(71·정치외교학·사진) 고려대 명예교수가 진단한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그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도덕적 기초가 필요하며, 현재 중요한 것은 평등의 가치”라고 주장했다. “평등의 가치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부단한 긴장 관계에 있고,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타락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최 명예교수는 29일 네이버문화재단과 세계문화오픈(WCO) 코리아가 후원하는 ‘문화의 안과 밖’ 릴레이 강연에서 ‘정치와 도덕’을 주제로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에게 민주주의의 윤리적 기초를 제시했다.

그는 우선 미국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였던 존 롤스(1921∼2002)가 『정의론』(1971)에서 주창한 공정한 사회 구현의 이론을 소개했다. 롤스는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동등한 존재(‘원초적 입장’)라는 전제하에, 자신이 그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갖게 될지 모른다(‘무지의 베일’)고 가정하고, 사회 구성의 계약에 합의하는 관념적인 모델을 정의로운 사회로 규정했다. 롤스는 또 모든 시민은 기본적으로 평등하며,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만드는 일은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범위 내에서만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최 명예교수는 “한국 진보진영에서의 정의나 평등에 대한 논의는 주로 마르크스주의 등의 사회주의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 여러 한계를 나타냈다. 정치의 도덕성 확보의 원천으로서,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롤스의 이론은 훨씬 풍성한 논점을 제공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롤스의 정의론에 입각한 도덕적 비전을 현실 정치에 접목시키면 사회민주주의가 된다. 이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해 이상적으로 발전된 형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인의 도덕에 대해서도 논했다. 그는 정치인에게는 ‘내면적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독일 학자 막스 베버(1864∼1920)가 제시했던 덕목이다. 정치적 신념에 헌신하되 순수한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목적을 실현하는 실용적 인식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연 뒤 질의응답에서 “민주당과 연대해 새정치국민연합을 만든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측면에서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최 명예교수는 “안철수씨를 사례로 들었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정치인에서 느끼는 것은 책임윤리 이전에 신념윤리도 없다는 점이다. 신념이 뭐냐고 물으면 제대로 얘기를 못한다. 정치공학만 난무하고 있다. 신념윤리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고 답했다. 최 명예교수는 지난해 5월 안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을 맡았다가 석 달 뒤 사퇴했다.

그는 또 강연에서 “한국의 시민운동 집단은 정치집단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분노와 적개심 같은 격렬한 감정이 표출되고, 현실의 실천적 재구성보다 이념과 이데올로기 등의 관념적 추상화에 천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를 “의사소통적 윤리의 위기”로 진단했다. 이에 대해 영산대 장은주(철학전공) 교수는 “제구실 못하는 정당을 대신해 시민사회가 정치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최 명예교수는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민운동과 전문화된 조직으로 활동하는 정당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