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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집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 펴낸 최승호 시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1. 25. 21:33

 

순대가 왕코브라로 … 레고 조립하듯 이미지 쌓아봤죠

[중앙일보] 입력 2013.11.25 00:24 / 수정 2013.11.25 00:24

신작 시집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 펴낸 최승호 시인

최승호 시인은 새 시집에서 이질적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영화의 몽타주 기법을 구사했다. 그는 “지층의 단면을 살펴보면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중간에 다른 층이 섞이고 끼어있는 듯 다양한 결을 보여준다. 이번 시집에서는 사물과 세상에 다양한 결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상상력은 중력에서 자유롭다. 지상에 발을 디디지 않고 부유하기에 어디로든 가볍게 갈 수 있다. 최승호(59·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인의 새 시집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난다)는 허공을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그러잡는 유쾌한 경험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 … 유쾌한 경험

 무중력 공간을 떠가는 듯, 시집 속을 유영케 하는 것은 ‘몽타주 기법’(Montage·일련의 짧은 장면을 극적으로 병치하는 영상 편집) 덕분이다. 전작 시집 『아메바』에서 자신의 시 이미지를 변주하는 실험을 했던 그가 이번에는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편집 기법을 활용해 56편의 시를 썼다. 말하자면 이런 방식이다. 200여 편의 시 중에서 각각 2~3편을 골라 하나의 제목 아래, 하나의 시로 다시 묶어낸 것이다.

 예컨대 서울 광장시장 순대에서 느닷없이 왕코브라로 튀어갔다가 허물이, 허공이 허무를 삼키는 것에 대한 의문(‘순대’)으로 퍼져나간다. 이 느닷없음이 당혹스럽지는 않다. 연상의 꼬리를 물고 가다 보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에 다다를 뿐이다.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의미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겹이 생기지 않죠. 한 편의 시 공간 안에 이질적인 이미지나 시적인 것과 비 시적인 것, 산문시와 자유시를 함께 배치하고 그 속에서 생기는 충돌과 불협화음 속에서 발생하는 메아리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의 설명을 빌리자면 시는 사유의 겹이자 리듬의 겹이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 골짜기가 있듯, 겹이 생기면서 틈이 만들어지고, 그 틈에서 공명하는 메아리도 생기게 마련이다. 허공이 이번 시집의 화두가 된 까닭이다.
끝 없는 형식 실험 … 시는 충돌의 미학

 “허공이 있어야 지구가 굴러가고, 텅 빈 게 있으니 메아리도 생기고 멀리 바라볼 수도 있죠. 상상력도 펼쳐지는 거고. 말의 저편에 있는 것이 허공이고 우리 존재도 허공이 관통하고 있는 거에요. 그 속에서 고정된 것도 없고, 머물 것도 없고 자유로운 듯한 느낌이 들어요.”

 몽타주 기법을 도입한 이번 시집도 그렇지만, 시의 형식과 스타일에 대한 그의 실험은 늘 진행형이다. “주제는 새로운 것이 없어요. 어떻게 새롭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죠. 하지만 우리 시에서는 형식 실험이 부족해요. 내용을 천착할 뿐이죠. 형식에 의해 새로운 내용이 만들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때문에 그는 메시지보다 느낌에 무게를 둔다. “메시지는 지식의 영역이에요. 그 동안 메시지 때문에 시가 많이 망가지고 언어가 혹사당했죠.”

 시에서 느낌이 살아있는 감성을 강조함에도 그는 감상은 경계한다. 다양한 스타일 실험에도 건조한 문체는 그대로인 이유다. 대상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탓에 ‘객관주의 시인’으로 불리는 그는 진술보다 묘사를 많이 구사한다. 그러며 자신의 문체를 바짝 마른 ‘북어 문체’라 명명했다. 서체로 말하자면 ‘갈필’(渴筆· 먹을 쓰는 것을 억제하고 물기가 없는 붓을 문지르듯 그리는 기법), 그림에 비유하자면 유화에 가깝다고 했다.

베케트는 지렁이 … 김수영은 코뿔소 문체

 그의 문체론을 듣다 보니 이 시가 떠올랐다. ‘코뿔소 문체로 얼룩말 문체로, 바람의 문체로 공검(空劒)의 문체로 아니면 광인의 문체로 덤벙의 문체로 글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왜 지렁이 문체를 고집하는 걸까’(‘문체연습’ 중).

 “지렁이 문체는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는지 모를, 그러면서 축축한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을 떠올리며 쓴 거에요. 코뿔소 문체는 들이받고 지르는 뿔 같은 김수영의 시일 테고, 카뮈의 『이방인』은 독을 품고 건조한 ‘전갈의 문체’와 같아요. 그리고 풍경(風磬)의 문체, 파도의 문체….”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라는 그가 말하는 문체 강의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다음 탐구영역은 문체 실험일 수 있겠다는.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승호=1954년 강원 춘천 출생. 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대 물질 문명을 비판하고 생태주의적 세계관이 반영된 시를 써왔다. 시집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아메바』 등. 미당문학상·김수영문학상·대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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