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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기도·위로·러브레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2. 18. 23:23

 

시는 기도·위로·러브레터 … 폭력의 시대 견디는 힘

[중앙일보] 입력 2013.12.18 00:30 / 수정 2013.12.18 00:30

시 전집 낸 이해인 수녀
"조금 더 참아줘, 살게 해줘"
항암치료 중 암세포와 대화

이해인 수녀가 색연필로 곱게 사인한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별칭은 모든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국민이모’ 수녀님이다. [사진 문학사상]

“단 한 번도 제가 훌륭한 시인이라 여긴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이렇게 사랑받았잖아요. 몸과 마음이 아파도 더 희생하며 ‘위로 천사’ ‘기쁨 천사’가 되어야 겠다고 느껴요.”

 수도자이면서 시인의 길을 걸어온 이해인(68) 수녀는 40년 문학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며 맑게 웃어보였다.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이해인 시전집 1, 2』(문학사상) 출간 기자간담회서다. 시전집엔 지금껏 발표한 1000여 편의 시 중 800여 편을 묶었다. 그는 “바다 해(海)와 어질 인(仁)을 붙여 해인이란 필명으로 첫 투고를 했는데 지금은 본명 이명숙보다 더 많이 알려졌다”며 “사실 해인스님으로 착각하는 분도 있는데 불교적이면서 부드러운 이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수녀는 1970년 가톨릭 잡지 ‘소년’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민들레의 영토』(1976) 등 9권의 시집과 기도시집·동시집·시선집·산문집 등을 펴냈다. 그의 책은 누적 판매부수 500만 권을 넘기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특히 70~80년대엔 인기가 대단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 책 좀 안 팔리게 해달라고. 더 좋은 시인도 많은데…. 거기에서 파생된 유명세도 있었고요. 이러다 수도생활을 망치면 어쩌나 걱정도 했어요. 베스트셀러가 어느 날 스테디셀러로 넘어가면서 마음에 평화가 왔지요.”(웃음)

 시작(詩作)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엔 “모태신앙이 낳아준 순결한 동심”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 페이지는 단상을 메모하며 문장 연습을 한다. 지난 5년간 대장암 투병을 하면서 더 많은 시상이 떠올랐다. “아픔을 직접 체험하니까 동시대인들의 아픔을 대신 아파하며 시를 써야겠다는 배려의 갈망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수도자이면서 시를 쓰고, 단순하면서 공감 가는 시를 쓰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 같다고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제가 쓰지 않은 시 앞에 제 이름이 붙어 있어요. 한 40여 편 되는 것 같아요.(웃음) 얼마나 시를 좋아하면 그럴까 다 용서하게 돼요.”

 수녀는 아직 완치 판정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항암치료와 수십 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몇 달 전엔 결장에 혹도 발견했다. 그는 “아프더라도 명랑하게 아프겠다”며 “암세포와 대화하면서 ‘조금 더 참아줘, 살게 해줘’ 기도를 한다”고 했다.
 최근엔 50년 지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앞날을 대비해 유언장을 썼다. 인세가 들어오던 통장명도 수도원 재단법인으로 돌렸다. “수도자는 철저히 무소유의 삶이니까. 이제 마음이 더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그러니까 수녀에겐 진정 구도와 시의 길만이 남았다.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이 총살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어린 시절 북한으로 납치된 것도 떠오르고. 시베리아 같은 추위가 와서 못 잤어요. 이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시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는 기도이고 위로이며 러브레터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