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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본질에 관한 우문과 현답 (6)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8. 10. 10:54

 

시의 본질에 관한 우문과 현답 (6)

 

이형권 : 문학평론가, 충남대교수 ,2012년 UCLA 방문교수

 

6.

에필로그

 

지금까지 우리는 시의 본질에 관한 우문들에 대한 현답을 살펴보았다. 세상에는 시에 관한 우문들, 혹은 진지한 예술에 대한 우문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시의 시대적합성, 상품성, 대중성, 정치성 등과 관련된 우문들의 공통점은, 첨단 과학과 디지털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시대에 시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문들이 말하는 쓸모라는 것은 실용적이거나 생활 차원의 용도를 의미하는 것일 터, 그렇다면 시는 정말로 쓸모가 없는 것이 맞다. 무한 경쟁의 시장경제원리가 지배하는 후기 산업시대에 시는 돈이 되지 못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아직도 시를 돈을 주고 구매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회고주의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시집 한 권을 사 보느니 영화 한 편을 편하고 재밌게 즐기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시집을 들고 다니거나 책장을 넘길 일도 없이 모니터나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감각적 영상을 그대로 좇아가면 되는 것이다. 시를 읽을 때처럼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상업적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한 구절 한 구절을 느리게, 찬찬히 음미하면서 그 깊은 사유와 절실한 감각을 공유해야 하는 시를 좋아할 리 없다.

그러나 시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쓸모가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말한 대로 “ 문학은 배고픈 거지 하나 구하지 못한다. 문학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오히려 가치가 생긴다”. 사실 현대 사회는 쓸모를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에 아름답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자본이라는 쓸모, 권력이라는 쓸모, 혹은 석유와 같은 쓸모, 곡물과 같은 쓸모 때문에 전쟁도 살인도 불사한다. 하여그런 쓸모에서 자유로운 시는 오히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 쓸모가 크다. 시는 속악한 현실에서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속세의 셈법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계산해서도 안 되는 위대한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밀란 쿤데라가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그런 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왜냐하면 삶이라는 셈이 그대에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 낮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지”( 「시인이 된다는 것」 부분) 라고 노래했듯이.

또한 아래의 시에서처럼 시(인)은 현실적으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높은” 영혼을 간직한 고귀한 존재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더 빛나는 것처럼 세상이 타락할수록 시(인)은 존재는 더욱 가치 있다. 시가 근본적으로 역설이듯이, 우리 시대의 시인도 역설적으로, 아주 역설적으로 존재(해야)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세상, 아름다운,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은 시(인) 이다.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살아 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또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잼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이형권 약력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한국시의 현대성과 탈식민성”, “타자들의 움 길에 서다”, “발명되는 감각들”,외 다수

문예전문지 “시작”, “애지” 편집위원

등재학술지 “한국시학 연구”, “비평문학”, “현대문학이론연구” 편집위원

2010년 편운문학상(문학비평부문)본상수상

“발명되는 감각들”등의 저서가 대한민국 학술원 및 문화관광부(문화예술위원회)우수 도서로 선정

 

『미주시정신 Korean -American Poets Association』 201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