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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본질에 관한 우문과 현답 (3)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8. 6. 11:46

 

 

시의 본질에 관한 우문과 현답 (3)

 

이형권 : 문학평론가, 충남대교수 ,2012년 UCLA 방문교수

 

3.

 

시는 왜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가?

 

시가 물질적 상품 商品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시는 문화상품의 목록에서 그다지 비중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실제로 요즈음 시중 서점에 나가보면 시집의 진열대가 예전에 비해 뒷전으로 많이 밀려나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도 구매지수를 살펴보면 시집을 상품으로 구매하는 비율은 아주 낮은 편이다. 시집 한 권의정가가 대개 7-8 천원에 불과한데, 이런저런 할인 혜택을 받으면 그 가격에서 1-20%가 저렴해진다.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발간하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너무도 값싼 편이다. 요즈음 영화 한 편을 보는데도 시집 한 권 가격과 비슷하고, 냉면 한 그릇의 가격도 시집 한 권보다 결코 저렴하지 않다. 시는 영화의 대중성이나 음식의 일상성과는 다른 차원의 밀도 높은 예술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문화 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은 셈이다.

 

물론 시장에서 물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수요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공급이 과잉이니 가격이 높을 리 없다. 매년 발간되는 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통계연감에 의하면 한 해에 출간되는 시집이 보통 1,200여 권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0여 권씩의 시집이 발간되는 셈인데, 이 정도면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양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많은 시집들을 소비하는 사람이 극히 적다는 것이다. 그나마 시집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시인들이나 비평가들, 대학원생들, 혹은 학습과제를 하기 위한 학생들에 국한되고 있는 형편이다. 문학과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의 시집 구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집 출판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법 유명한 시인도 괜찮은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려면 한두 해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다반사이고, 그나마 기다리지 않으려면 군소 출판사에서 자비 출판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보통의 시인들의 시집 출판 환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열악하다. 그 이유는 췌언의 여지없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가 사라진 문화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도르노가 말했던 ‘문화 산업’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문화 산업은 문화 본연의 고상한 가치를 자본의 논리에 복속시킴으로써 문화를 상업주의의 틀 속에 가둔다. 문화 산업의 체제 하에서 진정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진지한 예술은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예술적 완성도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문화 상품의 구매자인 일반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재미와 오락성이다. 소수의 전위적 소비자가 고급의 소비자는 문화 산업에서 전혀 환영을 받지 못한다. 대중추수적인 문화가 사람들의 시간과 관심을 잡아둠으로써 진정한 예술의 위축이 가속화된다. 사람들은 상업적으로 생산된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값싼 대중문화를 매개로 하여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인기 있는 TV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기 때문에 자신의 문화적 취향과 관계없이 그 드라마를 시청한다. 사람들은 문화의 주체가 아니라 문화 산업의 상업적 메커니즘에 끌려 다니는 기계적 소비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 산업은 사람들을 자발적인 억압에 빠져들게 하는 독재자의 생리를 닮았다. 문화 산업은 새로울 것도 치열할 것도 없는 뻔한 내용의 상업적 영화나 드라마, 대중가요에 자신의 진정한 문화적 욕구를 던져버리게 유인한다. 그러나 많이소비된다고 반드시 좋은 작품은 아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말한 문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진술은 오늘의 우리 문화와 관련하여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그들은 “영화나 라디오는 더 이상 예술인 척 할 필요가 없다. 대중매체가 단순히 ‘장사business'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하며, 더 나아가 그 사실은 그들이 고의로 만들어낸 허접한 쓰레기들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문화가 장사의 수준으로 전락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적 성찰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성찰이 없다는 것은 진실하지 않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화 산업의 메커니즘은 상업성을 지향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그 소비자들은 재빠르게 지나가는 장면들을 순발력 있게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만 익숙하다. 수동적이거나 피동적인 문화의 수용에 머물러 자아의 발견이나 세계의 창조에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문화가 장사꾼들의 자본에 예속될 때 속화와 악화의 길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화 산업이 지배하는 엇나간 문화의 세계를 정상적인 문화의 세계로 돌려놓는 데에 시는 가장 효과적인 예술 장르이다. 시가 문화 산업에 가장 어울리지 못하는 예술 장르라는 것은 오히려 시의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시는 문화 산업의 측면에서 장사를 하기에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갖고 있는 예술 장르이지만, 시에는 분명 시장 경제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매력이 존재한다. 시는 물질적,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상품 商品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와 영혼을 고양하는 정신적 차원의 상품 上品으로서 가치가 있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 전문)

 

이 시는 “시 한 편에 삼만 원”하던 시절, 지금부터 십 수 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다. 시인은 “시 한 편”의 가격이 “너무 박하다”고 생각을 하다가 그 가격이면 “쌀이 두 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을 달리 먹는다. 시는 무엇보다도 “마음이 따뜻한 밥”이되는 순간인데, 이 밥의 가격은 물질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한 밥”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또한 “시집 한 권”의 가격이 “삼천 원”에 불과한 것은 “든 공에 비해 헐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국밥 한 그릇”의 가격이고, 자신의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 마음을 달리 먹는다. 이 순간에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한 성찰을 한다. 자신의 시가 “사람들 가슴”을 감동시키기에는 “아직 멀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 도저한 성찰의 마음은 성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 시인은 사실 성자와 비슷한 존재이다. 시인은 현실에서는 스스로 고난에 빠짐으로써 높은 영혼의 세계에 이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에는 그러한 존재감이 강조된다. 시인은 시집 한 권의 인세로 받는 “삼백 원”이라는 적은 금액도 “굵은 소금 한 됫박”의 가격이라면서 “긍정적인”, 너무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소금”의 가치는 물론 물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차원의 것이다.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라는 시구에 드러나듯이, 시인의 “마음”은 “푸른 바다”의 출렁이는 물결처럼 깨끗한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바로 황금만능주의, 물신주의, 천민자본주의에 찌든 현대인의 부패한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소금”인 셈이다. 시가, 시집이 이처럼, “소금” 역할을 하면서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고양해 준다면 그것이 시장바닥에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마음 상할 이유 하나도 없다. 시는 분명 정신과 정서의 높은 품격(上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만금을 가지고도 구매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미주시정신 Korean -American Poets Association』 201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