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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본질에 관한 우문과 현답 (2)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8. 3. 01:15

 

시의 본질에 관한 우문과 현답 (2)

 

이형권 : 문학평론가, 충남대교수 ,2012년 UCLA 방문교수

 

2. 시는 왜 시대적합성을 확보하지 못하는가?

 

시가 시댁적합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시대가 날이 갈수록 현실적,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시가 시대적합성을 견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주지하듯 시는 이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예술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시는 문학 가운데서는 단연 최고(最古/最高)의 양식으로서 인간의 정신적,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켜 왔다. 시는 원시종합예술 시대부터 예술의 근간이 되는 양식으로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학 유산 가운데 하나인 고대 중국의 민요집인 『시경』이나 고대 희랍의 서사시인 『일리어드』 , 『오디세이』 등은 모두 시의 양식으로 존재한다. 18 -19세기의 저 낭만주의 시대나 상징주의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도 시 양식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는 근대의 문학 양식인 소설이 등장하기 수천 년 동안 문학의 중심 장르로서의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가 물질주의적이고 반인간적인 이 시대와 불화를 겪는 것은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가깝게는 1980년대 한국에서 시는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당시 시의 부흥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경직된 다양한 가치관의 추구라는 시대정신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반민주적이고 폭압적인 정치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짧은 형식으로 인해 응전의 민첩성을 갖춘 시 장르가 크게 유행했던 것이다. 각종의 무크지가 발간되고 민중시, 해체시, 신서정시, 페미니즘시, 생태시 등의 다양한 시 양식이 등장한 것도 같은맥락에서 이해된다. 또한 1980년대는 문단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상당한 정도의 부흥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박노해나 백무산 같은 민중 시인들, 황지우나 박남철 같은 해체 시인들, 김용택이나 안도현 같은 신서정시 시인들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도종환이나 서정윤 같은 시인은 한국문학사상 처음으로 대형 베스트셀러 시집을 생산해 낸 것도 1980년대였다. 이들 시집은 물론 문학적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미진한 면이 없지 않지만 시를 대중들의 인기 있는 독서목록에 올려놓은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2010년대에 이르러 시의 위상은 어떠한가? 한국은 물론 동서양의 문화 선진국들에서도 시는 과거에 비해 그 문학적, 문화적 위상이 많이 위축된 듯하다. 외국 문학 전공자들에 의하면, 유럽이나 미주에서 당대에 활동하는 시인들의 시집이 출판되는 사례는 아주 드물다고 한다. 한국의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도 시집은 장르의 균형을 위한 차원에서 출판되는 경우가 많다. 저 1980년대 이전, 시가 시대정신을 선도해 나가면서 그 위의를 자랑했던 시절은 지나가고 말았다. 시의 생산자인 시인은 더 이상 시대의 예언자도, 사상의 지도자도, 이념의 선구자도 아니다. 시인이 차지했던 시대의 선도자 역할은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 혹은 스포츠 스타 쪽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각종 집회나 저널에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지난한 일이 되어 버렸다. 문화 생태계의 차원에서도 시는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영상 문화의 폭발적인 인기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 시대, 시의 위의는 분명히 낮은 곳으로 임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가 장르적 특성으로 볼 때 우리 시대와 어울리지 못할 무슨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는 분명히 이 시대에 존재하는 다른 예술 장르가 갖추고 있지 못한 장점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시는 함축적, 서정적 언어를 매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시는 소리나 색채, 물체와 같은 물리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라고 하는 관념적 기호체계를 매개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사유와 감각을 서정적으로 밀도 높게 드러내는 데 가장 유리하다. 특히 시의 언어는 인간의 깊은 사유와 절실한 느낌을 가장 구체적, 서정적, 경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특장점이 있다. 둘째, 시는 물질적 기반이나 기계적인 장치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창작하거나 감상할 수 있다.시는 아주 짧은 시간만 있어도 어느 장소에서나 책이나 모니터를 통해서 읽거나 쓸 수가 있는 장르이다. 시는 다른 예술 장르나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기에 누구나 바쁘게 살아가는 이 시대에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시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할 수 있고, 다른 예술 장르와의 혼성성이나 상보성이 아주 강하다. 시는 육필 원고에서부터 종이책, 이북, 휴대폰, 모니터 등 모든 매체를 통해 손쉽게 유통될 수 있으며, 소설이나 영화, 연극, 드라마, 게임 등 어떤 장르와도 상호텍스트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이 시대에 시가 소외되고 있는 것은 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시대의 문제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이 시대가 진지하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한 탓에 시가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는 역설적 존재이다. 사실 시는 어느 시대이든, 특히 근대 이후에 시는 속악한 문명 현실과 조화를 이루면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시는 차라리 그러한 현실에 태클을 걸고 불화를 깊게 해야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로 생각해 왔다. 물질문명이 정신문화를 압도하는 시대에 시가 물질문명을 위한 찬가를 부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시는 오히려 물질문명에서의 소외를 무기로 삼아 간결한 정신과 맑은 영혼의 지렛대 역할을 해 왔다. 혼탁한 세상일수록 촛불과 소금의 역할이 증대되는 것처럼, 인간 영혼의 순수 형식인 시는 세상이 속악해질수록 그 존재 의의를 역설적으로 부여받는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김종삼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전문)

 

이 시의 “시인”은 현실에서는 “엄청난 고생”을 하는 사람들과 동격이다. 영혼이 맑은 시인은 속악한 현실과 비굴하게 타협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냥저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불순과 부정과 불의에 대해서도 시인은 끝까지 태클을 건다. “시인”은 가변적인 시대성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시대성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현실에서 “엄청난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대신 “시인”은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과 동격이다. 이처럼 “시인”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녀야 할 심성과 가치를 지닌 인간다운 인간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당연히 그는 세상의 “알파”이자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일 수밖에 없다.

 

하여 “시인”은 속악한 시대에 매몰되지 않은 채 순수와 진실을 지켜나가는 존재이다. 만일에 시대적합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그러한 시대에 무리 없이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면, “시인”은 그러한 시대적합성에서 멀어지는 것이 오히려 시적 진실을 지켜나가는 일이 된다. 진정한 “시인”은 비속한 시대와의 불화를 꿋꿋이 지켜나가면서 스스로 고난에 빠지는 존재이다. 그의 고난은 예수님의 그것처럼, 부처님의 그것처럼 세상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한 희생정신의 발로이다. 그의 고난은 속악한 현실의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자신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자본도 권력도 되지 못하는 시를 위해 밤을 지새우는 시인의 눈빛은 어두운 방안의 촛불처럼, 캄캄한 하늘의 별빛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시인은 자본도 권력도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한다. 시인은 성찰을 통해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발견을 통해 자연과 세상을 재창조하고, 고발을 통해 속악한 세상을 질정한다. 그는 다른 예술가들이 갖지 못한 위대한 언어, 함축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세상의 “알파”이고 오메가이다. 따라서 그는 시대적합성을 넘어 인간적합성, 영혼적합성을 지닌 위대한 존재이다.

 

 

『미주시정신 Korean -American Poets Association』 201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