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한국 현대시에서 김행숙(43)의 존재감은 독보적으로 평가된다. ‘미래파’로 지칭되는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젊은 시인을 언급할 때 그의 이름은 맨 앞자리에 놓인다.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김행숙으로부터 시작돼 김행숙으로 흘러들어간 시적 변이는 2000년대 한국 시단의 거부할 수 없는 뉴웨이브가 됐다”고 평할 정도다. ‘김행숙론’으로 등단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초기에 비해서 가독성이 커졌다고 하지만 난해시의 대표주자답게 그의 시는 여전히 읽기 어렵다.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정원 앞에 선 기분이랄까. 난해시라 불리는 시를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감정이든 생각이든, 보는 것이든 느끼는 것이든 정확하게 쓰고 싶어요. 언어는 너무 성겨서 정확한 표현이 안 돼요. 말은 분절된 것으로 연속된 표현이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정확한 지점을 포착하고 싶거든요. 산술적인 정확함은 아니더라도.”
그러며 김수영의 시론에 등장하는 ‘정확한 미지’를 언급했다. “시인이 다 알고 쓰는 건 아니지만, 뭔지 모르지만 이것 말고는 아니라는 내적 확신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것을 안에서 뭉개거나 미적으로 타협하고 싶지는 않아요.”
대화체나 고백체가 등장하는 그의 시는 낯설다. 예심위원인 권혁웅 시인은 “김행숙은 시에서 고백체와 대화체 등 구어체를 구사하면서 우리말의 가능성을 열어젖혔고 이는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첫 시집에서 특히 구어체를 많이 썼는데 그때는 그렇게 나와서 그렇게 쓴 거에요. 그런 문체에 집중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기에 새로운 도전이나 시도도 부담스럽지 않다. “실험에 대한 강박은 없어요. 시가 시를 밀고 가는 부분이 있으니. 내 안에서 스스로 지겹지 않고 내 세계가 나에게 덜 익숙했으면 좋겠어요. 내 안에서 내 말이 쉬워지고 익숙해질 때가 경계해야 할 때죠.”
관계를 파고들었던 그는 요즘 시간에 관심이 많다.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물결처럼//우리는 깊고/부서지기 쉬운//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인간의 시간’)과 ‘연못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세계의 차원이 바뀌는 순간이 온다. 친구여, 식물세계에서 약을 찾는, 제약회사에 다니는, 밤잠이 줄어드는, 점점 줄어들어서 언젠가 없어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말하는’(‘연못의 관능’ 중) 등에서 시간에 대한 그의 관심이 엿보인다.
“물리적인 시간의 중요도보다 인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윤동주의 ‘서시’ 중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 와 닿아요. 사람과 타인을 사랑하는 건 어렵지만 죽음을 놓게 되면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무엇인가를 찾는 이야기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이야기가 같은 이야기라면’처럼 모순의 공존에 대한 언급도 시에서 자주 등장한다.
“모순의 공존이 인간인 듯해요. 시는 이분법을 말하는 게 아니라 비스듬한 차이를 말하는 거에요. 다르다고 말할 수 없지만 사소한 차이 같은 걸 말하는 거죠.”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행숙=1970년 서울 출생. 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문학에세이집 『에로스와 아우라』. 노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