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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집 『청담 晴曇』( 1964.12. 一潮閣)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5. 5. 00:34

 

박목월 시집 『청담 晴曇』( 1964.12. 一潮閣)

 

後記

 

「蘭 ․ 其他」( 1959년 刊行) 이후, 5년간의 작품 중에서 추린 것을 여기에 수록 하였다. 가장 오래된 작품은 「枕上」 이요, 「迂廻路」 「動物詩抄」 「深夜의 커피」 「作品 五首」 「꽃나무」 「魚身」 등 15 ․ 6 편이 금년에 발표한 것들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40대 후반 - 인생의 傾斜感을 발바닥에 자각할 시기에 빚은 나의 가난한 열매들이다. 다시 말하면, 이 시집이 이룩되는 동안에 나는 머리에 서리가 덮이기 시작했고, 눈에 장막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정이라는 것의 고됨과 부모로서의 의무가 얼마나 무거운 것임도 겨우 깨달았다. 걸음걸이도 緩慢해졌고, 층층계도 단번에 뛰어오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성의만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 시집과 함께 나의 40대도 끝난다. 돋보기안경 너머로 보는 세계가 어떨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마는, 아제 자연이나 人事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主觀으로서 塗色하지 않고 神이 이룩하신 세계를 그것으로 바라볼 수 있을만큼 소란스러운 핏줄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금년 6월호 世代誌에 발표한 나의 짤막한 詩作 노우트다. 비교적 시에 대한 나의 견해가 솔직하게 나타나 있는 것 같아서, 후기를 대신하여 여기에 수록한다. (1964년 12월 6일 新倉洞 77번지에서)

 

*

시를 빚는 나의 붓 끝에 일종의 저항감을 느낄 때만 나의 정신은 高度로 긴장한다. 만일, 쉽사리 손에 익은 틀로서 시를 빚게 되면, 그만큼 안이한 것이 되어버린다. 안이하다는 것은 一種의 타락이다. 그러므로 시는 어떤 경우에도 鑄型을 의식하지 않는, 늘 처음 당하는 일처럼 막막하고 새롭고 망설이게 되는 작업이다.

시의 창조작업에는 熟練工이 없다는 뜻이다. 篇篇이 설익고, 서투르고, 휘어잡을 수 없는 저항감을 느끼는 그것이야말로 시를 빚는다는 사실이다.

字劃 하나 하나, 文字 한개 한개를 휘어잡기 위한 붓끝의 鬪爭 - 그것을 거침으로써 그 작품에는 語彙 하나하나에 그 시인의 指紋이 박히게 될 것이다.

「三冬詩抄」 이후, 나는 나나름의 새로운 틀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것이 완전히 손에 익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시가 무거운 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아는 세계가 되어 버렸다.

시를 써도 시를 쓴 것 같지 않다. 허전하다. 그것을 가장 깊이 느낀 것이 思想界에 발표한 「人間이 되었으면」 이라는 작품이다. 駄作이다. 태작이라기보다도 惰性的 불성실한 分娩이다.

또 한번 「暗中摸索」의 새로운 시련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첫 시험품이 사상계에 발표한 「迂廻路」요, 「深夜의 커피」다.

이 試驗品이 어떻게 완성되어가게 될지 나도 모른다.

물론 나의 작품을 늘 보아온 독자에게는 눈에 두드러지는 변모나 변화를 느끼지 못하리라.

당연한 일이다. 나의 호들갑스러운 이야기가 작품에서는 겨우 언어의 압축이 약간 강하다거나, 「인생」이라는 말이 탈락되었다거나, 그만 정도의 차이가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陶磁器를 빚는 데, 손길이 좀 더 섬세하다거나 거칠다는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시의 창조는 일종의 欲求요, 渴望이다. 그러나 빚어놓으면 일종의 分娩이요, 産卵이다.

다만 시를 빚는 작업과정 - 그 형언할 수 없는 긴장과 압박과 흥분과 上氣된 시간 안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롭게 伸縮되는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된다. 즉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詩作에 대한 보답은 이미 시작하는 동안의 팽창한 삶의 보람으로 전부 支拂 받게 된다.

그러므로 詩稿料는 언제나 의외의 횡재요, 항상 부수입이다.

더구나 시인으로서의 명성은 (그것이 아무리 하잘 것 없이 작은 것일지라도)시인으로서의 내가 입는 榮譽이기 보다는 일상인으로서 내가 걸치는 품이 안 맞는 화려한 衣裳이다.

水彩畵의 淡白한 色感을 나는 좋아한다. 그것은 영원히 탈피할 수 없는 나의 嗜好요, 나의 性癖이요, 趣味다. 또한 담담한 자세로 나의 세계를 그리기를 나는 좋아한다.

결국 나는 정신적인 水彩畵家이다.

내가 가진 재료는 수채화적인 질료의 언어뿐이다. 그러므로 내 시에서 密度짙은 質量感을 구하려는 그것부터가 무리한 要求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시는 우리 혀에 잘 익은, 그 心情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세계이다.

심정은 단순한 정신도 감정도 아니다. 인생의 깊은 迂廻曲折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어굴하고 답답하고 서러운 心的 事情이다. 말하자면 당신의 이해 깊은 감정에 호소하는 나의 人生內容이라는 뜻이다.

 

* 총 6부 42편 : 「날개」 연작 4편 「동물시초」 5편 「풍경」 3편

 

 

 

 

 

읽어볼 시

 

家庭

 

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玄關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詩人의 家庭에는

알 電燈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微笑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壁을 짜올린

여기는

地上.

憐愍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屈辱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地上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微笑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나무

 

儒城에서 鳥致院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修道僧일까. 黙重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은 鳥致院에서 公州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於口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過客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公州에서 溫陽으로 迂廻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門을 지키는 把守兵일까, 외로와 보였다.

溫陽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黙重한 그들의. 沈鬱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深夜의 커피

 

 

이슥토록

글을 썼다.

새벽 세 시,

시장끼가 든다.

연필을 깎아낸 마른 향나무

고독한 향기.

불을 끄니

아아

높이 靑과일 같은 달

 

겨우 끝맺음.

넘버를 매긴다.

마흔 다섯장의

散文(흩날리는 글발)

이천원에 이백원이 부족한

초췌한 나의 分身들.

아내는 앓고......

지쳐 쓸어진 萬年筆의

너무 엄숙한

臥身.

사륵사륵

설탕이 녹는다.

그 정결한 投身

그 고독한 溶解

아아

深夜의 커피

暗褐色 深淵을

혼자 마신다.

 

迂廻路

 

病院으로 가는 긴 迂廻路

달빛이 깔렸다.

밤은 에데르로 풀리고

擴大되어가는 아내의 눈에

달빛이 깔린 긴 迂廻路

그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手術은 무사히 끝났다.

메스를 카아제로 닦고.....

凝結하는 피.

病院으로 가는 긴 迂廻路.

달빛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昏睡 속에서 피어 올리는

아내의 微笑.(밤은 에데르로 풀리고)

긴 迂廻路를

흔들리는 아내의 모습

하얀 螺線通路를 내가 내려간다.

 

沈床

 

그를 두고 옛날에는

詩를 써 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머리맡에 조는 한 밤의 램프여.

당시에 나는

그를 외로운 新婦라고 생각했다.

쓸쓸한 나의 자는 얼굴을

지켜주며 밤을 새우는.

그러나

이제 나는 斷念했다.

나의 자는 얼굴을 지켜 줄

측은하게 어진 신부가

이 세상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의 孤獨은 그의 것.

나는 외로룬 얼굴을 하고

자다 깨다 혼자서

지낼만큼 지내다 가는 것이다.

나의 沈床의 허전한 자리는

태어나는 그날부터 나의 것.

램프여,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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