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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화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4. 27. 22:50

 

 

 

시의 화법(화자와 청자)

 

 

일상에서의 대화와 마찬가지로 시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기를 전제로 해서 쓰여진 글이다. 쉽게 생각하면, 시는 시인이 독자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글이다.

무릇 모든 발언은 들어줄 상대를 전제로 해서 발화發話된다. 독백조차도 자신이 청자로 설정된 담화라고 할 수 있다.

이스토프(A. Easthope)

서정 양식도 서사 양식이나 극 양식과 마찬가지로 담화(discourse)의 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바흐진(M.M. Bakhtin)은 모든 담화는 극이다. 시적 담화는 시인과 독자 그리고 작품 속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삼중창이라고 말한다.

 

흔히 작품 속의 화자를 ‘persona’라고 하는데 이는 작품의 화자가 작자 자신과 다름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 말은 고전극의 배우들이 쓰던 가면(mask)을 지칭하는 라틴어였는데, 연극의 등장인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다시 작품의 화자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시에서는 서정적 자아 혹은 시적 자아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시와 같은 서정 양식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소설이나 희곡처럼 극적인 구조를 설정하기도 한다.

 

소월의「진달래꽃」의 화자는 소월 자신이 아니라 ‘이별을 앞둔 한 여성’ 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여성이 님을 향해 내쏟는 간곡한 발언이 이 작품의 내용이다. 말하자면「진달래꽃」은 소월이 한 여성의 탈(persona)을 쓰고 간접적으로 발언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차트먼(S. Chatman)은 한 작품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구조를 다음과 같이 여섯 단계로 세분해 보이고 있다.

 

①실제작가 → ②내포작가 → ③화자 → ④청자 → ⑤내포독자 → ⑥실제독자

 

(real author) (implied author) (narrator) (narratee) (implied reader) (real reader)

 

 

 

①실제작가 --- 자연인, 총체적 작가

②내포작가 --- 그 작품을 의도한 작가, 작품 속에 투영된 작가

③화자 --- 작품 속에 등장한 목소리의 주인

④청자 --- 작품 속에서 목소리를 수용하는 인물

⑤내포독자 --- 작가가 상정하고 있는 독자(읽기를 기대하는 독자)

⑥실제독자 --- 실제로 작품을 읽는 독자

 

<작품 예>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오날 처음 만나든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드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쏘내기 되야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 서정주, 「 춘향유문春香遺文」전문

 

<해설>

 

작자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 곧 이 작품의 주지는 ‘영원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작자는 영원한 사랑을 죽음조차도 갈라놓을 수 없는 . 저승까지 이어지는 구원한 것으로 노래하고자 했으리라. 그래서 이 지상에서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는 한 여인을 화자로 선택했다.

더욱이 그 여인을 고전 속의 인물 춘향으로 설정하여 극적인 효과를 노린 셈이다.

 

이 작품은 자연인 서정주(①실제시인) 중에서도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자 하는 서정주(②내포시인)가 춘향(③화자)으로 하여금 도련님(④청자)께 보낸 유서의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작가가 은근히 읽어 주기를 기대한 대상은 어린이나 노인들이기보다는 청춘남녀(⑤내포독자)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실제로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나(⑥실제독자) 읽을 수 있다.

 

그러니 담화로서의 의사소통의 회로는 이중적인 구조를 지닌 것이 된다.

즉 A(②내포작가 ↔ ⑤내포독자)와 B(③화자 ↔ ④청자)의 두 회로인데,

작자가 의도한 중요한 것은 B보다는 A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A는 숨고 B만 드러난다. B는 A의 매개 역할을 하는 수단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모든 서정양식이 이처럼 복잡한 극적 구조를 지닌 것은 아니다.

 

야콥슨(R. Jakobson)은 ‘화자(addresser)---화제(message)---청자 (addressee)’의 세 단계 구조로 파악한다. 그리고

 

①화자 지향(1인칭 ‘나’중심)의 작품은 서정성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②청자 지향(2인칭 ‘너’중심)의 작품은 계몽성이 짙은 특성을 보이며,

③화제 지향(탈인칭 ‘그, 그것’중심)의 작품은 정보 전달에 적합한 양식으로 사실성이 강한 특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화자와 청자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시의 구조를 다음의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화자 중심 구조

 

특정 화자만 설정되어 있는 경우다. 김영랑의「모란이 피기까지는」은 화자인 <나>가 등장하지만 청자는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김종해의 「항해일지④」역시 특정 청자는 없지만 화자를 <나(선원)>로 등장시키고 있는 화자 중심 구조다.

 

둘째, 청자 중심 구조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특정 화자만 설정되어 있는 구조다. 신동엽의「껍데기는 가라」나 김수영의「가다오 나가다오」는 ‘껍데기’와 ‘미국인 소련인’을 청자로 설정하고 있지만 화자에 대한 정보는 드러나지 않는다.

 

셋째, 극적 구조

 

특정 화자와 특정 청자가 모두 설정된 경우다. 앞에서 예로든 서정주의 「춘향 유문」이나 소월의「진달래꽃」이 이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넷째, 객관적 서술 구조

 

화자와 청자가 밝혀져 있지 않은 화제 중심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박목월의「산도화·1」나「불국사」와 같은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데생을 하듯 사물을 그리는 즉물시들이 좋은 예가 된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소재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택된 소재를 효율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화법話法을 설정할 것인가가 또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임보 -「 화자話者와 청자聽者」『엄살의시학』p.6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