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뭇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마음글)

남쪽으로 튄 자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3. 3. 14:25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01] 남쪽으로 튄 자유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행동생태학
  • 입력 : 2013.02.18 23:0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행동생태학
    김상용 시인은 남으로 창을 내겠다며 왜 사냐건 그저 웃는다 했다. 밭은 '한참갈이'지만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느냐 묻는다. 참다 못해 국민의 의무마저 거부하고 남쪽으로 떠나버린 한 가족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 우리에게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감동을 선사했던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라는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두고 사회 통합을 부르짖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무정부주의를 부추긴다며 마뜩잖아하는 이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이미 40여 년 전 미국 개척시대에 가장 악랄했던 은행 강도들의 이야기를 미화한 '내일을 향해 쏴라'도 여유롭게 받아들였던 우리가 왜 이 정도의 영화에 거부감을 느껴야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시대는 우리더러 다름과 차이를 단순히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 포용하라 요구하고 있건만.

    미국 유학 시절 나는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보스턴에 살며 자기 선택권에 관한 한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미국 시민의 투철함을 보았다. 훗날 대권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바 있는 당시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클 두카키스는 안전띠 착용을 법으로 제정하려다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억누르지 말라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동네에서 고스란히 장년기를 보낸 터라 나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참기 어려워한다.

    2011년에 펴낸 책 '과학자의 서재'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가장 '자기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영화 '남쪽으로 튀어'의 최해갑은 마뜩잖은 건 하지 않고 할 말은 하며 살고 싶은, 말하자면 자기답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김상용 시인은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라고 했다. 시간이 있으면 영화관에 가서 잘 익은 강냉이 한 바구니를 끼고 최해갑에게 자신을 투영해보라. 그를 보며 무상해탈(無相解脫)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함께 웃어넘길 수 있어야 이른바 '국민 대통합'에 동참할 수 있다. 어찌 됐든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꼭 안전띠를 매기 바란다. 물론 철저하게 당신의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하기 바란다. 모두 '소마'를 복용하고 완벽하게 길들여져야만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뭇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마음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탐험   (0) 2013.03.10
    작가의 길   (0) 2013.03.09
    제대로 이름값하며 산다는 것/김경집  (0) 2013.02.16
    제사를 회상함  (0) 2013.02.13
    타인의 삶  (0) 2013.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