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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예술 지원 정책에서 사후평가가 중요한 까닭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 15. 14:59

예술 지원 정책에서 사후평가가 중요한 까닭

- 충청투데이, 2012. 4. 2 -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7164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달가워하는 예술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언제나 찬사를 받는 예술가라도 다른 이가 내리는 평가에는 그리 흡족해하지 않는다. 예술가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자존감, 예술 스스로가 지니는 애매성, 평가자들 간 서로 다른 잣대, 그리고 모든 평가 행위나 제도가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함 들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예술 작품은 늘 평가되고 있다. 어떤 미술관이나 화랑이 초청 전시를 기획하거나 작품을 구입할 때, 또 어떤 장르든 공모나 경연에서 수상작을 결정할 때는 평가가 필수적이다. 관객들의 감상 행위도 엄연한 평가 행위의 하나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가 의외로 이와 같은 작품 자체 평가보다는 공적자금 지원 결정을 위한 심의에 더 예민하다.

창작·발표 이전에 이뤄지는 거의 모든 심의가 예술 ‘작품’ 평가 성격이라기보다는 공적자금 지원을 전제로 한 ‘활동’ 평가 성격임을 이해하게 된다 해도 과연 그럴까? 작품성이나 예술성 등 ‘예술적 완성도’ 이상으로 ‘공적자금을 지원 받는 행위’에 대한 종합적인 관점이 중시된다는 데 동의할 수 있다면, 그때도 그럴까?

여러 심의위원의 공통된 생각이라 해도 서류나 인터뷰만으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를 갖기 마련이다. 어느 예술가나 예술단체의 지난 성과들은 지원심의 때 마땅히 반영되므로 그 ‘예술적 완성도’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이미 주요한 심의기준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결코 사전평가의 한계를 다 극복할 수는 없으며, 특히 예술 정책에서 지원 결정 이후의 평가가 필요한 까닭은 이런 때문이다.

평가에는 사전평가와 사후평가가 있다. 사전평가는 서류나 인터뷰 따위에 의한 일반적인 지원심의를 말하며, 사후평가는 과정평가와 결과평가를 말한다.

과정평가는 해당 장르 전문가나 일정한 소양을 갖춘 관객에 의해 주로 창작·발표 현장에서 이루어지며, 모니터링이라고도 불린다. 우리 대전문화재단은 이 모니터링 결과를 다음해 지원심의 때 20% 비중으로 반영하는데, 지난 1월초 정책 간담회에 초치한 전문가들의 상당수가 지원금의 소모성 분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결과평가는 지원 사업의 종합 마무리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로서, 사업성과보고서 제출 등 기본 행정절차 이행의 성실성, 관객 만족도 등을 내용으로 한다. 올 지원심의 때 재단은 앞엣것만 10% 비중으로 반영하였는데, 좀 더 개선할 방침이다. 이제야 밝히자면, 사후평가 결과에 따라 지원 당락이 결정된 신청 사업은 한둘이 아니다.

현재 운영 중인 12개 광역단위 문화재단에서 사전평가인 지원심의가 전혀 문제되지 않은 곳은 한군데도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지원심의가 계획서 중심의 부정확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는 데서부터 찾아져야 할 것이다. 다음해 지원심의에 그 결과가 직접 반영되는 적절한 사후평가는 사전평가의 본질적인 한계와 함께 심의위원회 구성의 잘못까지도 최소화할 수 있다.

예술 공공지원을 둘러싼 이러한 특성들을 염두에 둘 때 예술계는 서류나 인터뷰 중심인 지원심의의 구조적인 문제를 줄이고자 하는 사후평가가 왜 중요한지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사전·사후 평가 시스템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공공기관의 선의의, 그리고 충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예술 지원 사후평가, 사전 심의의 한계와 문제를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안이다.

- 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