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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인간을 추구 芻狗로 여긴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0. 28. 13:49

 

<산림문학 시평>

 

자연은 인간을 추구 芻狗로 여긴다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1.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는 자연> 인간, 자연 = 인간, 자연< 인간 의 인식을 지나 다시 자연> 인간의 관계로 환원되는 느낌이다. 이를 다시 이야기한다면 현생인류가 출현한 이후에 자연의 광대한 메커니즘 앞에 공포를 느끼고 자연을 경배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자연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자연을 인간에게 도전하는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했던 근대의 2, 3 백 년 동안 산업혁명의 동력을 얻은 인간은 자연을 개발과 발전이란 도그마에 사로잡혀 착취의 대상으로 삼은 나머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자연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하고 자연의 반격에 무력해 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물론 서양의 역사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서양의 발전 모델을 따라가는 동양의 오늘날을 비추어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는 인식이 되어 가고 있다. 화산의 폭발, 지진, 쓰나미, 강력한 태풍,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급격한 기후의 변동 등 어떠한 인간의 도구(과학)로도 막아낼 수 없는 자연의 광포狂暴에 대해 다시 인간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너무 멀리 나아갔다. 자연과 신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물욕과 물욕으로부터 파생되는 자본주의적 이익과 안락함에 너무 깊이 파져들었던 것이다. 인간을 둘러싼 모든 자연은 재화財貨로 뒤바뀐다. 일례를 들어본다면 나무와 花卉화훼는 완상玩賞을 지나쳐 상품화되고 재화로 환산된다. 이와 같이 유한한 자연 산물을 대체하기 위하여 인간이 만든 가공물은 오히려 인간을 공격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인력과 축력의 대체재인 전기는 원자력 발전에 의해 한층 풍족해졌지만 체르노빌, 드리마일, 최근의 후쿠시마 등 원전 사고로 인한 가공할 인적, 물적 피해로 인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심각하게 재고하게 만드는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너무 상식적인 말이 되었지만 생태生態적 관점은 앞으로 인류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생태는 한 마디로 유교적 잠언으로 대치한다면 거인욕 존천리 去人欲 存天理이다. 인간의 욕망을 최소화하고 자연법칙에 순응하라는 이야기는 인간의 초월적 결단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인간이 더욱 많은 시간을 이 지구상에 존속하기 위해 내딛는 첫걸음이기 때문에 의의를 갖는 것이다.

 

2.

 

위와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산림문학』은 거인욕 존천리 去人欲 存天理의 실천적 면모를 드러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매체로서 2012년 『봄. 여름호(통권 15호)』에도 자연과 관련을 맺는 많은 작품들을 게제하고 있다. 42명의 시인의 82편에 이르는 대부분의 시가 『산림문학』이 지향하고 있는 자연과 생태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은 세태를 반영하고 반성하는 새로운 문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들이 익숙하게 다루고 있는 시적 대상(소재)이 자연이며, 이 자연 속에는 인간사의 사건과 현상, 유물 遺物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의 자아화’라는 서정시 抒情詩의 맥락에서 볼 때 자연물의 완상 玩賞과 비의秘意에 대한 찬탄, 더 나아가서 그러한 자연물을 통한(객관적 상관물) 삶의 양식에 대한 반성과 결단의 촉구 등이 새로운 시의 방향성을 가늠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와 같은 몇 가지 관점에서 짧게나마 몇 편의 시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먼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들을 논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다. 김귀녀의 「조롱박」, 백인수의 「참나물」, 박명숙의 「숲 속의 하늘」 등은 맑은 시심과 자연의 소박함이 어우러진 풍경들을 그려내고 있다.

 

플라스틱제품에 밀려 우리의 부엌에서 사라진 조롱박을 ‘누가볼까 두렵다/ 뽀얀 알몸/퍼붓는 장대비에도/간간이 뿌리는 여우비에도/ 하늘 줄에 매달린 통통한 알몸, 에구머니나!/ 조롱조롱 부끄럽다’( 「조롱박」 2연)고 재탄생시킨다던가, ‘오월의 태양이 따사로운 봄날/ 윤기어린 살갗 아래로 감추고/ 보드러운 아가씨 손길 기다린다’(「참나물」, 마지막 연)고 먹고 먹히는 살벌함이 아니라 기꺼이 제 몸을 내어주는 상호교감을 노래하는가 하면, 숲 속에서 바라보는 하늘을 보며 ‘한발짝 걸을 때/ 눈 한 번 맞출 때마다/초록물/ 몸 속으로 스며든다’(「숲 속의 하늘」 중간부분)고 자연과 인간을 동화시키는 정밀한 묘파는 동심에 가까운 맑은 눈이 아니면 거두어들일 수 없는 소중한 감각인 것이다. 두 번째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자연과 생태의 관찰을 통해 삶의 관점을 전환시킬 것을 촉구하는 시들이다. 3 연 9행으로 이루어진 구자운의 「라일락 향기」는 우리의 고유종인 정향나무가 미스킴 라일락으로 美國種이 되어 자본화되는 실태를 보여줌으로서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애호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김자현의 「프랑의 그림」은 동화적 어법을 통해서 훼손되어가는 자연의 슬픔을 반추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시는 사실을 사실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상력, 즉 또 하나의 허구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반성의 탄력을 촉구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세 번째로, 특정한 자연(시적 소재)을 객관적 상관물로 받아들여 인간사의 단면을 드러내는 시법을 찾아볼 수 있겠다. 김준태의 「다섯 잠을 잔 누에」, 김재준의 「나무」, 윤준경의 「나무들의 아버지」, 임송자의 「첫사랑」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가는 시편으로 볼 수 있다. 「다섯 잠을 잔 누에」는 명주실을 자아내는 누에를 거동이 불편하도록 늙은 어머니와 대비하여 무애한 부모의 사랑을 전해주고 있고, 「나무」는 ‘나무’가 상징하고 있는 곧고, 굳은 의지에 의탁하여 단독자로서의 나무가 아닌 공동체로서의 숲, 그 숲을 포용하는 산이 되어야한다는 지혜를 던져주고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나무들의 아버지」는 수많은 나무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그 나무들보다 부끄럽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꼿꼿하게 살라고 이름을 지어준 부모들의 염원을 저버리고 사는 인간일반을 반성하면서 다음과 같은 경건한 물음을 던진다. ‘나무들의 아버지는 누구신가요/ 참 훌륭한 자식을 두셨습니다’ (「나무들의 아버지」 마지막 연). 이와 같이 생명 자체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의 비의를 들려주는 시법은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첫사랑」은 구체적 실화를 자연의 섭리와 등치시키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하는 현실감을 돋우고 있다. 잘 못 돋은(인간에게 불필요한) 감자 싹을 떼어내는 것을 근친간의 연애로 비유하면서 이 금기 때문에 화자 話者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고백을 잘라내어야 할 감자싹으로 슬쩍 되받아치는 능숙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유형의 시법은 정서의 열거나 사건의 예증을 통해 독자들에게 직접적 감흥 전달을 용이하게 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형식 구조상의 단순함 때문에 본연적인 언어의 질감을 여유롭게 저작할 수 있는 여백을 차단한다는 단점을 유발하기도 한다. 작품을 통하여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열하고 선연할수록 독자들의 사유를 제한한다는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모든 시인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일지도 모른다. 시 속에 이야기를 담되, 이 이야기를 메시지가 아닌 이미지로 전환시키면서 독자들에게 동감同感이 아닌 공감共感을 유도하려는 시도는 김상숙의 「화개 花蓋9호선」 과 서안나의 「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과 「새의 팔만대장경」에서 발견된다. 이 시편들의 소재는 하나의 객관적 상관물이 아니라 복합적 사건이거나 현상이다. 즉 「화개 花蓋9호선」은 강화도와 교동도를 오가는 배의 이름 화개(꽃이 피어남)와 유배 流配의 역사적 사실을 직조하는 서사적 구조를 보여준다. 과거 유배지였던 교동도를 방문하고 되돌아가는 여정 속에서 현실이라는 유배지로 떠난다는 현대인의 고독을 서경적 필치로 그려냄으로서 자연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는 또 다른 진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과 「새의 팔만대장경」은 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당신’을 항하여 던지는 연서로 읽힌다. 병산서원이 의미하는 고답한 유학의 본거지에서 휘돌아가는 물도리동의 하염없는 흐름과 무심한 세월 속의 회고는 시적 문장의 유연함으로 시원하게 읽힌다. 그런가하면 「새의 팔만대장경」은 이질적인 나무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과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수만의 새의 비상을 하나로 묶어내므로서 앞 서 이야기한 이미지의 새로움을 제시한다. ‘당신’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들 시편의 행보는 무수한 감상의 갈래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3

 

오늘날의 시의 운명은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동화된 사유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제공되는 문명의 이기들은 더 이상 깊은 사색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사진과 같은 영상 매체, 우리의 촉감을 곧추세우는 음향의 위력은 문자로 형상화되는 인식의 틀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시는 기계화 될 수 없는 자연을 옹호하고, 생태의 섭리를 끊임없이 경고해야하는 책무를 저버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산림문학』 (2012년 봄. 여름호)에 옥고를 선보인 42명의 시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반년간 『 산림문학 2012. 가을. 겨울호』에 게제.

 

<인용된 시들>

 

라일락 향기

 

구자운

 

사춘기 때의 첫사랑이

수수꽃다리가 되어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가

 

밤공기 신선한 신록의 계절에 창문을 열면

라일락향기가 되어

싹 하니 밀려오는데

 

군대 있을 때 시궁창에 흘려버린 동정이

정향나무가 되어

Miss Kim Lillac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조롱박

김귀녀

 

바람도 숨어버린 한여름 뙤약볕에

철망을 넘어 하얀 꽃 피우더니 호리병을 닮은

조롱박들 하늘에 매달았다

내 허벅지 살을 닮아

우유빛이 난다

 

누가 볼까 부끄럽다

뽀얀 알몸

퍼붓는 장대비에도

간간이 뿌리는 여우비에도

하늘 줄에 매달린 통통한 알몸, 에구머니나!

조롱조롱 부끄럽다

 

지나치는 사람

눈길 주지 않아도

밤 지나 새벽 시간 몰래 몰래 커버리고 아침을 맞네

보름달처럼 곱게 잘도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우리 집 하나님이 키우고 계셨다

 

 

화개 花蓋9호선

 

김상숙

 

유배라는 이름조차 고달픈 고향 오빠가 있었다

이마주름이 뱃길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듣다보면 어느새 측은지심 몰려든다

삶이 죽기보다 힘들어지면 텅텅 벽에라도 부딪쳐보는

유배란 말을 우물거리다보면 물 한 잔에도 쉬이 취한다

강화도에서 선사시대를 빠져나오려면 괸돌 앞에서 턱 괴고 앉아 한참을 졸아야 한다

그래도 깨어나지 못하면 안평대군 임해군 광해군 능창대군 숭선군 익평군 기센 조선 권력들의 적이 가득했던 교동도 강물들 물길 싸움을 보아야 한다

왜 바람은 늘 뱃머리를 흔들고 사랑은 사람을 흔들며 실랑이를 하는 것인지

섬을 벗어나려고 화개 7호선 보다 넓고 아늑한 화개 9호선을 탔다

마음 흐드러지게 피우고 돌아오는 화개선

갈매기들 따라오며 철통 경계 하느라 끼르륵 끼륵 머리 뚜껑이 열린다

유배길 하루 만에 석방되어 나가는 나는, 여전히 포승줄을 묶으며 평생 유배지로 돌아가고 있고......

 

프랑의 그림

 

김자현

 

자고 나면 하늘이 노란 물감으로 자꾸 붓질을 하더니 산신령이

끙 돌아누우며 하품을 하면 노란 바람이 불어요 검뎅이

개 코카스 페니얼, 프랑이가 짖으면 쳄발로 같은 노란 소리의

사슬이 동글동글 떨어질 때죠 느티나무 작업실 앞에 윗말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더니 호 - 아랫마을 예쁜 아망이 비취색 잠바를 입고

지나가다가 엉? 하산을 하던 초록색 등산조끼가 개울 건너다 우뚝!

 

2층 보다 더 높이 올라간 느티나무 가지에 빨간 챙 모자를 쓴

농부가 매달렸어요 는실거리는 여름을 불러오던 착한 나무, 딱새와

직박구리가 자주 와서 장을 보던 장터, 왁자지껄 까치의 법정이

오늘 헐린다네요 외 사다리 양각 사다리를 받쳐놓고 나무 큰가지를

다리를 짝짝 벌리며 빨간 모자를 쓴 자벌레 농부가 이 가지 저 가지로 이동하면서

가을을 베고 있어요 곤충들의 락카룸을 베고 있어요

 

 

다섯 잠을 자고 난 누에

김준태

 

허리가 꺾이어지도록

머리를 치켜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서른 날 뽕잎을 갉아먹느라

닳아버린 누런 입에서는

하얀 명주실을 자아낸다.

 

차르르르 뽕잎 갉아먹던 젊은 시절에

차마 늙은 때를 생각해봤겠느냐마는

 

허연 백발로 방안에 웅크리며 누워계신 노모는

마치 다섯 잠을 잠을 자고 난 누런 누에 같으시다.

 

 

 

 

 

 

 

숲 속의 하늘

 

박명숙

 

숲에도 하늘이 있다

초록 피톨의 하늘

장대비가

숨 헐떡이는 대지

벌떡 일어서게 하듯

시들쩍 시든

우리 영혼도 힘껏 뛴다

한발짝 걸을 때

눈 한 번 맞출 때마다

초록물

몸속으로 스며든다

바람 지나가면

금새 초록으로 흔들리고

구름 지나가도 초록그늘로 차일 쳐

마음 비우고

초록 세상에 잠시

폭 빠지는 순간

깊디 깊은

사색의 바다 되는

숲속의 하늘

 

 

참나물

 

백인수

 

햇볕이 반쯤 드는 서나무 밑이 좋다

박달 까치박달 신갈나무도 괜찮다

메마르지 않은 계곡이면 더욱 좋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

예쁜 여인들이 더욱 좋아한다

시샘많은 파드득과 피나물*이

내 모습 흉내내며 부러워한다

 

오월의 태양이 따사로운 봄날

윤기여린 살갗 아래로 감추고

보드러운 아가씨 손길 기다린다

 

* 양귀비과 피나물은 모양이 참나물과 비슷하여 혼동하기 쉬운 식물이다.

 

 

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

 

서안나

 

지상에서 남은 일이란 한여름 팔작지붕 홑처마 그늘 따라 옮겨 앉는 일

 

게으르게 손톱 발톱 깎아 백일홍 아래 묻어주고 헛담배 피워 먼 산을 조금 어지럽히는 일 햇살에 다친 무량한 풍경 불러들여 입교당 찬 대청마루에 풋잠으로 함께 깃드는 일 담벼락에 어린 흙내 나는 당신을 자주 지우곤 했다

 

하나와 둘 혹은 다시 하나가 되는 하회의 이치에 닿으면 나는 돌 틈을 맴돌고 당신은 당신으로 흐른다

 

삼 천 권 고서를 쌓아두고 만대루에서 강학 講學하는 밤 내 몸은 차고 슬픈 뇌옥 나는 나를 달려나갈 수 없다

 

늙은 정인의 이미가 물빛으로 차고 넘칠 즈음 흰 뼈 몇 개로 나는 절연의 문장 속에서 서늘해질 것이다 목백일홍 꽃 잎 강물에 풀어 쓰는 새벽의 늦은 전언 당신을 내려놓는 하심 下心의 문장들이 다 젖었다

 

 

새의 팔만대장경

 

서안나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의 경판은 무르나 단단했다 나무를 바닷물과 뻘밭에 묻어 결을 달랜다고 했다 나무의 습성을 내려놓는 치목 治木의 시간이라 했다

 

겨울 천수만의 새들도 부드러우나 단단했다 뻘밭에 고개를 박는 새에게서도 산법나무 냄새가 났다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옹이가 없는 둥근 선을 지녔다

 

새가 새를 끌고 오르는 것은 몸 안의 팔만 사천 자를 지상에 탁본하는 순간이다 새는 뒤틀리거나 썩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는다 경판과 경판 틈새 바람이 잘 통하였다 서둘러 날아올라도 부딪치거나 새의 모퉁이가 상하지 않았다

 

팔만대장경을 읽는데 30년이 걸린다고 했다 당신도 그러하다 물속의 젖은 부처가 손을 내밀어 내 몸의 비린 경판을 읽는 것이 한 생이라면 사랑은 여기까지다 내 것도 당신 것도 아닌 기억이 시베리아 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천수만 겨울 오후 뻘밭 가득 쓰인 육필 경전 부드러우나 단단했다

 

 

나무들의 아버지

 

윤준경

 

산에 갔더니

나무들이 줄지어 서서 나늘 맞았습니다

 

서어나무 정금나무 층층나무 야광나무

예쁜 이름들을 목에 걸고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습니다

 

언제 사람들로부터 이런 환대를 받아보았나요

사람들의 환대는 쉬이 변하는 것

등지고 돌아서기도 하는 것

 

아그베나무 산뽕나무 물박달나무 호랑버들 왕괴불

다릅나무 모감주나무 졸참나무 가문비나무 물푸레나무

 

내 이름 지으신 이가 떠오릅니다

추억 속에도 안 계신

나의 아버지

 

이따금 세상이 아름다운 건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세상이 어두운 건

준경 俊卿처럼 잘 되라고 지어준 이름들이

빛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무들의 아버지는 누구신가요

참 훌륭한 자식들을 두셨습니다

 

 

 

첫사랑

 

임송자

 

감자에 잘 못 돋은 푸른 싹을 따내고

캄캄한 냉장고에 쳐박듯 밀어넣고 돌아서는데

어라, 나 어릴 적 봉자 언니가

빡빡머리로 쭈뼛 거기, 서 있네

 

‘이모의 아들과 또 이모의 딸이 사랑한기라’

‘그래서는 절 대 안되는기라’

 

날이 저물어서도 내촌 內村은 쉽게 잠들지 않았네

 

철 모르고 돋아난 싹을 독이라 여긴 아버지는

급기야 봉자언니 첫 사랑을 빡빡 밀어버리고

골방에 가두었는데

다음날 허술한 담벼락이 무너지고

언니도 바람처럼 사라졌네

홧병에 그만 아버지도 꼴깍 사라졌네

 

나, 한 때

한 스므날 그믐처럼 살고 싶은

그대 있었네

오지게 빠져서 늪처럼 머물고 싶은

그대 있었네

 

밀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맨처음 고백은 무척 힘들었을텐데

많이 아프기도 하였을텐데

생각하면

감자에게 미안한 마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