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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人誌의 과제와 전망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9. 24. 23:16

 

 

 

  

 

同人誌의 과제와 전망

- 시의 밭 10집을 중심으로

 

나호열(시인,『시와 산문』편집위원)

 

1.

  『시의 밭. 2012』에는 시인 12 명의 101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자리에서 목소리와 색깔이 다양한 시를 읽는다는 것이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흔쾌히 작품(원고)을 받아들고 얼마나 설레는 마음이었던가!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여유자적 몇 잔의 차를 마셨던 것 같은데 느닷없는 태풍이 바람과 비를 몰고 와 견고하고 친숙했던 것들을 할퀴고 날려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사라져 버린 것처럼 통독 通讀이후에 내게 남은 것은 지독한 두통이었다. 그렇다. “시의 밭”, “12명의 시인”, “101편의 시”는 ‘시 읽기의 괴로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나 오해 하지는 말자. ‘시 읽기의 괴로움’은 시의 정의에 대한 유연하지 못한 고착된 나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 글은 “시의 밭”, “12명의 시인”, “101편의 시”를 편향된 시각으로 나누어 보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궁색한 변명임을 고백한다. 이 말은 “시의 밭”, “12명의 시인”, “101편의 시”를 하나의 일관된 꼴로 정리할 능력이 나에게 없다는 뜻과도 상통한다. 그래서 “시의 밭”, “12명의 시인”, “101편의 시”를 어설프게 구분지어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2.

 

  “시의 밭”은 결성된 지 10년이 된 시 동인同人이다. 그러므로 『시의 밭. 2012』는 그들의 10번째 사화집 詞華集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우리 현대시사에서 ‘시동인’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밭”처럼 10년 이상 존속한 ‘시동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가들은 자의식이 강한 존재이다. 예술의 양식糧食이 고독인 까닭에 한편으로는 동조자를 구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개성을 타인과 동화同化시키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존재가 예술가인 것이다. ‘우리’라는 말은 ‘울타리’와 같은 어족 語族이다. 함께 어울리는 따뜻함과 울타리라는 폐쇄성과 강제성이 항존하기에 지속적인 동인 활동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시의 밭”의 10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듯이 10년 동안 지켜왔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도전이 “시의 밭”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어째든 이렇게 쉽게 얘기하지만 사실 ‘동인’ 이나 ‘사화집’의 말뜻을 아무렇지 않게 새겨 넘어갈 수는 없다. 동인이란 무엇인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경향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 동인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시의 밭”이 추구하는 문학적 성취욕구가 사화집이 의미하는 바의 경향 傾向으로서 확연히 드러나는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희망은 마땅한 것이며 따라서 『시의 밭. 2012』는 “시의 밭”의 존재이유를 독자들에게 보여주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짧게나마 앞 서 문제 삼은 “시의 밭”, “12명의 시인”, “101편의 시”에 대한 의미 규명을 해 보고자 한다. “시의 밭”의 12명의 동인은 계간 『시와 산문』으로 등단하거나 시작 詩作의 터전으로 삼은 시인들이다. 비판적인 입장에서 우리 문단은 끼리끼리 모이는 폐쇄성( 좋게 이야기한다면 다양성이라고나 할까?)의 중병을 앓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학지들이 표방하고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은 사라지고 유행과 헤게모니에 집착하는 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시의 밭”의 터전인 『시와 산문』은 어떤 개성을 가진 문학지인가? 『시와 산문』은 2012년 가을 호를 내면서 통권 75호를 넘어섰다. 문학지 발간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결호 없이 발간 20년을 앞둔 전통을 세워나간다는 것은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까닭에 여타 문학지와 달리 신인 등단의 심사 과정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문학에 매진할 의지가 있는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입명 立名의 가능성을 지녔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펴봄으로서 그런 기준을 통과한 사람들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시와 산문』의 특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모른다.(물론 이런 평가가 잡지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는 강점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모름지기 신인 新人이라 함은, 작품의 주제나 시를 운용하는 기법의 신선함으로 무장되어 있음을 뜻한다고 할 때 『시와 산문』이 배출한 신인들이 각기 개성을 지닌 시인으로 성장했는지의 여부는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시와 산문』의 강점 强點은 “시와 밭”과 같은 동인의 육성에 있다. 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시인들이 하나의 이슈 issue를 도출해 내고 새로운 창작의 방법론을 실험하며 우리 시사 詩史에 새로운 방점을 찍을 수만 있다면 『시와 산문』이 지향하는 동인의 활성화 작업은 문학운동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3.

 

  ‘틀 Form’을 향한 유혹은 근대 유럽 사상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데카르트 Descartes 이후의 과학정신은 사물과 현상을 나눌 수 있는 데 까지 나누고, 분석을 통하여 불변하는 본질을 찾는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분석과 분류는 인간과 자연을 질서지움에 있어서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지만 존재 자체를 획일적이고 단순화시키므로서 개개의 사물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 소멸해 버리고 마는 난점을 안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틀 속에 넣어 『시의 밭. 2012』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제 자리에 앉혀보겠다는 욕구는 멈춰지지 않는다. 12명의 시인을 등단 시점을 기준으로 구분할 수도 있고, 남성시와 여성시로, 또는 특색 있는 주제의식으로, 아니면 시를 만드는 기법을 중심으로 나눠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틀’에 시인과 작품을 규격화시키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이 이런 분류와 분석은 『시의 밭. 2012』를 읽는 독자들에게 유용할 것 같지는 않다. 12명 시인의 면면을 볼 때 2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몇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이 있는가 하면 올해 (2012년)에 시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도 있다. 오랜 시력 詩歷을 지녔다 해도 한껏 무르익은 가운데 덜 익어 풋풋한 시도 있을 것이며, 안정된 시법 詩法을 버리고 과감하게 새로운 창조의 길로 들어서는 과도기의 시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의도적 분석도 오류의 함정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도 『시의 밭. 2012』를 조망해야하는 잣대는 있어야 할 것이므로 이건청 시인의 「사람에게 유익한 가치를 전해 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을 염두에 두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인간의 영혼을 상승시키며 초월적인 힘으로 사물과 현실이 지닌 안일과 타성 속에서 ‘발견’의 지평을 열어 보여주는 시가 좋은 시이다. 시는 인간성의 핵심과 연관되어 있는 예술이다. 인간의 정서와 상상력과 사유에 기반하는 예술이며, 인간 영혼을 심오한 가치로 고양시켜 주는 예술이다.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피와 살과 뼈로 구성된 유한 존재이고 미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지만 정서와 상상력과 사유와 영혼을 통해서 영속하는 가치가 되기도 한다.

 

  시인은 말을 부리는 자이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에게 있어서의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서서 새로운 이미지를 파생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시는 언어로 쓴 그림이며, 그림은 붓으로 그린 시” (발레리)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시인의 생각이 촉발되는 곳은 저 무한한 우주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까지 무궁무진하다. 시인은 인간의 말이 무용한 곳, 소통할 수 없는 것에 까지 촉수를 뻗쳐 궁극적으로 자기 존재의 확인으로 되돌아온다. 이런 몇 가지의 전제를 얹어놓고 『시의 밭. 2012』의 얼개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4.

 

 조경옥은 시적 대상(소재)의 본질과 특성을 세밀하게 찾아내고 자아화 하면서 삶의 따뜻함과 생명의 고귀함을 규명하는데 능숙한 필치를 보여주고 있다. 박제된 나비(「박제로 날다」)를 통하여 현실에 박제되어 날지 못하는 삶을 보여주는가 하면 이끼, 청자, 돌, 설탕 등 일상에서 흔히 관찰되는 사물을 의인화하면서 긍정적이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비틀린 삶은 없다/ 그렇게 보는 눈이 있을 뿐.(「비틀린 삶」)' 건강함을 견지한다.

 

 이현애는 전통적인 시법을 탈피하여 사물과 현상의 추상화 抽象化에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시인의 인식계 認識界에 포착된 현상과 사물은 시인의 내면에 자리잡은 리비도Libido와 충돌하면서 비극적 서정의 심층으로 매몰되어 간다. 시 읽기의 코드가 내장된 시편들은 분절되고 파편화된 이미지를 통해서 해체되어가는 세계, ‘물의 관절 사이로 밀려드는/ 모래톱이 고개를 끄덕이며 숲을 건넜다/발바닥이 닿는 곳마다 방목한/시계의 혓바늘이 걸어 나왔다/수위를 낮춘 물의 허리춤을 지나갔다 (「시계의 혓바늘」)’ 인간의 눈으로 세운 가치와 질서의 혼돈을 증명하고 있다.

 

정승화는 이현애와 김명아가 즐겨 사용하는 산문시의 형태를 견지하면서 그들보다는 보다 활달한 상상력을 현실의 문제와 버무리는 재주가 탁월하다. 한 마디로 ‘명랑한 슬픔’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자유로운 필법은 발칙한 상상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가는데 무리가 없다. 노숙자를 묘사하면서 그 노숙자가 바로 ‘나’임을 넌지시 손가락질하는 시침떼기.

 

그는 가장 얇은 잠자리를 가지고 있다 박스가 깔리고 하루의 거짓 뉴스는 이불이 되었다 지상에 없는 주소를 적어 놓은 탓일까 달은 잠을 불러주지 않았다

- 시 첫 계단 아래」첫 연

 

김정자의 시는 서경 敍景과 서정 抒情의 경계를 유연하게 드나들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지 않게 곁들이는 솜씨가 도드라진다. 생활 속의 에피소드를 경쾌하게 풀어내는 즐거움은 시 「덤」에서는벚꽃 축제를 앞당겨 시작하겠습니다./ 막걸리 내음 묻어나는 시장님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경포대가 낳아버렸다, 벚꽃’ 으로, 시소금강」에서는 ‘큰 물고기는 큰 먹이를 먹었고/작은 물고기는 작은 먹이를 먹었고/ 늦게 온 물고기는 소나무 그림자만 먹었다.’ , ‘사월초파일 밝혀 두었던 먼 곳의 불빛에 다시 성냥불을 붙인듯, 산은 붉은 단풍으로 활활 타오르며’ 「설악산」 으로 관조의 여유를 보여준다.

 

강동수는 사진작가답게 유동하는 대상의 속살을 재빠르게 포착하고 안정된 묘사를 통하여 추억의 비애와 우수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고 있다. 사적이고 내밀한 애환을 보편적 서정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은 앞으로 시인으로서의 개화를 예감하게 한다. 시 「창문을 기억하며」은 창이 의미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아름답게 우리에게 선물로 전해준다.

 

내 어릴 적 작은 꿈처럼 하늘에 매달린 창문하나/ 아니 창문에 매달린 네모난 하늘 한 움큼’.

 

김명아는 철저한 외계 (풍경)에 대한 진술을 통해서 객관적 심상을 유도한다. 앞서 이현애, 정승화의 시에 빈번하게 드러났던 ‘~다.’의 서술은 주관의 개입을 차단하고 대상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심어주는데 힘을 얻는다. 그 중에서도 시 「합니다 사이에 팝니다」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시로 읽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자본주의, 물질주의에 길항하는 세태를 야유하고, 몸과 정신의 결합과 분리를 풍자하는 이 시는 시인의 새로운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조광자의 시는 세계에 대한 비극적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나를 잊어야겠다고 술을 마셨다/나를 찾으려고 다시 술을 마셨다/내가 누군지 몰라 또 술을 마셨다/마지막에는 술이 나를 마셨다// 누가 내 가슴을 풀어 줄 술이 되어 줄까’ ( 「술」 전문) 처럼 불가해한 나를 가해한 나로 바꾸어 줄 타자의 부재나 불신이 비극적 인식의 출발이지만, ‘생각하건대, 내가 살아온 날들에서/ 내세울 만한 가슴 떨리는 절정을 마주한 적 없어’ (시 「일출」)의 분투를 거쳐 돌고래와 대화를 나누는 실화를 통해 ‘바야흐로, 전 지구적 소통의 시대가 열렸다.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근력은 더욱 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장병환은 세련된 도시적 서정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도시적 서정이라고 해서 낭만에 경도된 서정이 아니다. 인공의 공원은 ‘기진한 넝쿨, 장미와 담장 사이/ 펼쳐 놓은 덫 하나 숨어있었다’ 「덫」, ‘출근길 비늘을 털어내고 있는 은행나무에서/ 에티오피아산 커피원두를 따는 아이를 보았다’ (「발목을 세우다」)에서처럼 피할 수 없는 도시화는 인간이 인간을 학대하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결국 ‘액자 속으로 귀가를 서두르는’ 일상으로 우리를 내몬다. 장병환의 이러한 도시 서정은 앞으로 여러 갈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앞에 있다. 아마도 그에게 시는 냉혈한 같은 도시에서 시멘트 틈새에서 돋아나는 풀들을 찾는 방황의 꿈으로 그려질 지도 모르겠다.

 

주영란은 조광자나 장병환이 그려내고 있는 현실의 조감이 좀 더 냄새나는 인간을 클로즈 업 시키는 기풍을 강조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로테스크하고 냉소적인 현실 인식은 ‘구두가 되기 전 가죽은 벗겨진 피묻은 살이었을 것이다’ (「산다. 멋을」)와 같은 과거에 축적된 눅눅한 추억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 눅눅한 과거에 대한 추억은 모든 시인에게 부여된 양식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다시 삶이라는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에너지를 재생산해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정은율과 하명순 김승희와 함께 2012년에 “시의 밭”에 합류한 시인들이다. 두 시인 모두 짧고 간명한 자연에 대한 묘사는 개인적 서정을 억제함으로서 시가 감상 感傷으로 빠지는 결점을 피해 가고 있다. 이 시인들의 시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평가는 합당하지 않아 보이지만, 소재와 시인간의 거리, 다시 말하면 시적 대상에 개입하는 화자話者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숙련하는 과정이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을 기대와 함께 건네고 싶다.

 

김승희의 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시화 詩化하려는 실험의식이 돋보인다. 시 「청량리 588」이나 「목욕합니다」에서의 도표의 사용, 「큰젖 할미」에서 보이는 에로티즘이 가미된 이야기 시의 시도는 그 성패를 이야기하기 전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의식의 발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5.

 

 

  제법 먼 길을 걸어간 것 같은데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다. 주마간산으로 12명의 시인을 만나고 101 편의 시를 읽으면서 이 글을 시작하면서 제기했던 문제를 다시 상기하게 된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101편의 시들은 때때로 같은 길을 걷기도 하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다양한 파장을 보여 주었다. 이제 일반적인 시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서 이 글을 마칠 때가 되었다.

 

  첫째, 앞에서 좋은 시의 예를 소개한 바 있지만, 시는 시인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진정성이 담보되어야한다.

이는 시가 독자에게 다가가기 전에 시인 자신에게 던지는 독백이며 자기치유(healing)라는 것을 뜻한다. 현실적 체험과 상상력의 결합이 시의 본령이지만 이것이 시인 혼자만의 중얼거림이 되어서는 보편성과 개연성이라는 시의 본질과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시는 이미지로 형상화 되지 않으면 안된다. 전통적인 어법이든 실험적인 어법이던 시에서의 리듬과 말을 아껴쓰는(생략과 압축)미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둘 째, 시동인의 의의와 역할에 대한 전망이 필요하다.

예전과 달리 시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통로는 독자들의 늘고 줄음에 상관없이 확대되어 가는 추세이다. 인터넷을 근간으로 하는 문학동호회 카페, 개인 블로그, SNS를 통해서 얼마든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 동인은 동인간의 소통을 통하여 공동의 문학적 이슈를 생산하고 이를 개별화하여 시작품으로 창출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만이 시동인의 의의를 되살리고 시동인의 필요성을 확고히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시의 밭”이 걸어온 10년이 개인의 시적 역량을 키워내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새로운 문학 담론을 활성화하고 전위에 서는 역할을 담당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책무는 『시와 산문』이 지향하는 바, 만들어진 시인의 배출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질주하는 시인의 양성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일이 될 것이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도 同道로서 『시의 밭. 2012』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시의 밭” 동인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2012년 초가을 고산재에서 나호열

 

 

 

 

덧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하여 필자가 좀 더 논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시 몇 편을 옮겨 놓는다. 시의 완성도나 예술성을 떠나서, 실험적 도전이나 안정된 시법을 지향하는 사람 모두에게 생각할 여지를 충분히 던져주는 시들이다.

 

박제로 날다

――회문산자연휴양림 곤충관에서

                                                  조 경 옥

 

날개 활짝 펴고도

날지 못하는 너와

날고 싶어도 날개가 없는 내가

회문산 자락에서 만났구나.

 

제비나비 너는 유리에 갇히고

일상을 맴도는 나는 통념에 갇히고

 

한 때는

네 날개 짓에

회문산이 들썩였을 테고

뭇 생명들도 덩달아 날개를 얻었을 테지.

 

자신의 꿈을 접고

누군가의 꿈을 위해

날개 짓을 멈추지 못하는 네 삶은

비상 저 너머의 순교자다.

박제된 삶은

네가 아닌 내가 살고 있다

 

한 걸음도 진보하지 못하는 내 날개를

활짝 편 네 날개에 살짝 올려놓자꾸나.

박제 되어 영원히 날고 있는

회문산 토종 제비나비.

 

 

 

 

시계의 혓바늘

                                   이 현 애

 

뜬눈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의 그림자를 안으면 건너갈 수 없었던

오래된 잠이 목구멍을 떠다니고 있었다

밤 내 참아내던 산꼭대기도

굽은 허리 늘어뜨린 아침도

좁은 통로를 따라 층을 쌓아갔다

 

마름질 끝내지 못한 빈손의 안전지대

오래 비어있던 어제의 뱃속에 출구를 만들고

제 몸의 껍질을 삼킨 아가미를 바라보았다

겨우 골목 끝에 서 있던 새는

더 이상의 사랑니를 뽑지 못했다

 

고기압의 기압골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못과 못 사이의 강물과 그 강물의 고리를 붙잡고

어머니는 칭얼대며 바다에서 첨벙거렸다

흙 마당에서 쏟아내는 붉은 접시꽃의 잠꼬대

조금씩 어둠을 숨쉬며 키를 높였다

 

물의 관절 사이로 밀려드는

모래톱이 고개를 끄덕이며 숲을 건넜다

발바닥이 닿는 곳마다 방목한

시계의 혓바늘이 걸어 나왔다

수위를 낮춘 물의 허리춤을 지나갔다

 

뜬눈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첫 계단 아래

                                  정 승 화

 

그는 가장 얇은 잠자리를 가지고 있다 박스가 깔리고 하루의 거짓 뉴스는 이불이 되었다 지상에 없는 주소를 적어 놓은 탓일까 달은 잠을 불러주지 않았다

 

벽을 긁어낸 자리 꿈이 지워진 그림자가 들어온다 고참 서산댁 옆구리에 손을 넣어본다 모르는 척 누워주는 날은 척추를 붙이고 연리지처럼 잠들었다 이동식 주소지의 운 좋은 날이다

 

건널목을 지나온 길은 집으로 이어져 있다 한 때 그의 정원에 수수꽃다리가 피었고 지팡이도 준비되어 있었다 잠을 반씩 나누어도 하나가 되는 아내가 있었다 저녁을 불러들인 스위치를 누르고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바람 곁에서 입덧하는 나무가 보였다

 

긴발가락참게처럼 집을 이고 여러 산맥으로 갈라진 발뒤꿈치는 후문을 출입하며 구석에서 뒹군다 그의 봄은 부정기간행물처럼 발행되었다

 

설악산

                   김정자

 

단풍을 업고 가을의 내리막을 달리려는 설악산은 신발끈을 단단히 고쳐맨다.

단풍을 입은 사람들은 가을의 언덕길에서 붉어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땅을 입에 물고 걷던 등 굽은 노인은 마중 나온 목탁소리에 두 손을 모은다.

굽었던 등뼈 속에서 노란 은행잎 후드득 떨어진다.

먼지 폴폴 날리는 흙비알 길을 황량한 바람이 쓸어올리자 설악산이 통일대불의 미소를 꺼내놓았다.

가뭄철을 지나온 논바닥 같은 다 늙은 몸이 휘청거리며 다시 두 손을 모았다.

사월초파일 밝혀 두었던 먼 곳의 불빛에 다시 성냥불을 붙인듯, 산은 붉은 단풍으로 활활 타오르며 휘어진 그 발걸음을 밝혀준다.

 

 

창문을 기억하며

                                    강 동 수

 

내 어릴 적 살던 집 골방은

언제나 북쪽으로 창을 달고 살았지

사람 얼굴하나 들이밀면 꽉 차버리는

꼭 그만한 크기의 하늘을 열고 닫았지

어떤 때는 고양이가 슬그머니 얼굴을 재고 가고

여름이면 귀뚜라미 여치가 수시로 무단출입 하는

그만한 하늘하나 달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방안에서

30와트 백열전구가 내 청춘처럼 바람에 흔들거렸어

비오는 날이면 푸른 하늘이 사라진 창 밖으로

빗소리를 안고 내리는 우울이 창문 틈으로 흘러내렸지

 

골방은 뒤꼍으로 난 좁은 길을 가졌지

하늘에 매달린 창문처럼 앞으로 낼 수 없는 길로

수시로 번져가던 소문들이 마을로 내달리고

동네를 떠돌던 소문이 오솔길을 지나올 때면

무작정 상경한 앞집 순이와 공장으로 떠밀려간

동네아이들의 발자국을 달고 왔었지

순이가 아이를 달고 다시 다녀간 소문을

제일 먼저 알려온 것도 창문이었어.

내 어릴 적 작은 꿈처럼 하늘에 매달린 창문 하나

아니 창문에 매달린 네모난 하늘 한 웅큼

 

 

합니다 사이에 팝니다

                                김 명 아

 

웃음이 남아 있는 볼트를 사고 화장이 지워진 너트를 팔았다 꿈이 깨는 날 톱니바퀴는 필요 없었다

 

짧은치마를 팔고 긴 다리를 샀다 배꼽티를 팔 때 배꼽을 사고 귀마개를 팔 때 귀를 샀다 안경을 팔면서 눈을 샀고 마스크를 팔 땐 입을 샀다 그러나 긴 다리를 살 때 발은 사지 못했고 배꼽은 사면서 말라버렸고 귀를 살 땐 들리지 않았다 눈을 살 땐 보이지 않았고 입 속에는 이가 없었다

 

바늘 없는 괘종시계가 울린다 오후 1시, 서둘러 문을 연다 ‘파마세일 합니다’ 등판을 지고 물결파마가 출렁이고 베이비파마가 기어 다녔다 눈썹을 짧게 심고 깜박이는 눈꺼풀 위로 ‘속눈썹 합니다’ 간판은 머리를 자르고 있다

 

안개꽃 한 다발을 안고 4D 영화를 볼 때 흔들리는 의자에 앉았다 타는 냄새 속에 물방울이 튀었고 안경은 벗지 못했다 물 묻은 선잠을 자다 자리에서 일어나 건강만을 판다는 간판을 내걸었다 잠가지지 않는 문을 열고 배달된 시래기뭉치를 볶아 비빔밥을 만들었다

 

접시를 깨뜨리며 냄비를 팔고 찌그러진 냄비를 펴며 접시를 팔았다 냄비우동에 조개를 빼고 시장을 오가는 행인의 다리를 걸고 젓가락을 들었다 멈췄다 불어터진 면발을 세며 귀퉁이로 몰려드는, 건너야 할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늘리며 넘어졌다

 

일출

             조 광 자

 

생각하건대, 내가 살아온 날들에서

내세울 만한 가슴 떨리는 절정을 마주한 적 없어

차고 오르는 환희의

뭉클거리는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이 없네

기호가 헤엄치는 바닷속으로

누군가 전송해 온 몇 컷의 이미지에 홀려

타오르는 저 붉고 장엄한 절정의 순간을 훑는다

무디어가는 육신을 데우기에는 이미 시들한 감각을 세워

푸른 관음觀淫의 가랑이 사이로 아득히 솟아나는 불꽃

부르르 탯줄이 떨어진다

피가 낭자하다

 

 

발목을 세우다

                                장 병 환

 

부리에 쪼여 잠을 깰 즈음

핸드폰 알람에 귀가 먼저 눈을 떴다

7시에 눈을 뜨고 8시에 자동차 시동을 걸고

구부러졌던 껍질을 벗기며

풍경이 되지 못한 아침 길을 챙겼다

 

출근길 비늘을 털어내고 있는 은행나무에서

에티오피아산 커피원두를 따는 아이를 보았다

앙상한 아이의 손가락이 눈을 찔렀고

발목은 잠시 엎어져 있었다

 

느린 걸음이 초침에 쫓겼다

그때 아이의 눈동자가 엘리베이터

숫자 버튼에 오버랩 되었다

어떤 버튼을 눌러야 저 눈동자가 감길까

어떤 눈동자를 감겨야 숫자 버튼이 보일까

커피원두를 따던 아이가 빌딩 숲에 갇혀있고

방치된 한 칸 퍼즐을 남겨둔 채

발목을 도시 한가운데 세워놓았다

 

 

산다, 멋을

                         주영란 

 

구두가 되기 전 가죽은 벗겨진 피묻은 살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발로 옮겨져 테너리에서* 털이 달린 거무죽죽한 살에서

 

노란, 빨간, 파란색 가죽으로 변신 시켰을 것이다

그 본연의 악어, 양, 소 시절엔

먹이를 구하려 온 몸으로 몸부림치다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로 곤두박질치다 부딪혀 찢겨 거나 물렸거나 데였거나

피부병 같은 것에 걸려 상처도 생겼을 것이다

살아남은 무늬였을 것이다

밀레의 낡은 구두 한 점, 뭉글어진 어느 노동자의 발

늘어진 가죽사이로 스쳤을 디딜 때마다 제 몸을 일으키기 위해

견뎌야 하는 보이지 않는 통점들

숨찬 가슴 턱턱 치며 한 숨 토해 내듯 스킨에 상처를 남긴 동반자들

 

정품이 아니라고

발등 알 수 없는 나선형의 상처

 

*테너리(Tannery) : 천연가죽염색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