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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내강外柔內剛의 귀거래사 歸去來辭 / 오만환 『작은 연인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 17. 19:57

 

외유내강外柔內剛의 귀거래사 歸去來辭

- 오만환 시집 『작은 연인들』에 붙여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1.

 

오만환 시인의 시집 『작은 연인들』은 『칠장사 입구』(1990),『서울로 간 나무꾼』(1997)에 이은 그의 세 번 째 시집이 된다. 1980년 울림시 동인으로 참여하여 제 3집까지 꾸준히 시를 발표하면서 그 이후, 1988년 등단한 이력을 살펴볼 때 표면적으로 등단 이후의 그의 시작 詩作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과작寡作의 원인이 작품에 대한 염결성 廉潔性이나 문학에 대한 열정의 부족 때문이라고 섣불리 단정 짓기는 어렵다. 외면으로 드러난 시작 詩作의 게으름은 시심을 축적하는 숙성의 과정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시업의 성과에는 미흡했 을지라도 실제로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문예잡지에 꾸준히 시평 詩評과 詩論을 발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문인들과의 교유와 시단 활동을 펼치면서 인터넷문학신문 주간, 예술시대 작가회장, 문인산악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이러한 활동은 인간관계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인격수양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타고난 심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력은 평탄하지 않은 문단 사회에서 허명 虛名에 불과하거나 쓸데없는 과욕의 덧붙임일 수도 있으며, 이와 같은 징표들이 그의 과작寡作의 변명이 될 수도 없거니와 시인으로서의 자질이나 성과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반드시 지녀야 할 품성과 사유가 새삼스레 거론되는 요즈음의 실태에 되비추어 볼 때 그가 쌓아온 이력은 결코 외화내빈 外華內貧의 물거품은 아닐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은 시집『작은 연인들』에 실린 시들에 대한 감상과 짧은 비평과 더불어 이러한 단정 斷定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에 치중한다고 해도 소중한 몇 가지의 의미를 거두어들이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2.

 

시인은 미래를 예감하고(見者), 현실의 부조리를 증언하며 그 부조리를 척결하는 의무를 지닌 자라고 불리웠다. 또한 시인은 내밀한 감정의 순수를 뽑아 올려 세상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미학의 완성자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시인은 ‘시 자체가 인생’( 옥타비오 파즈)이라는 명제 앞에서 자신의 인격과 인생을 시에 일치시키려는 무모한 수도자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 시와 시인의 위의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더 이상 시인은 견자도, 투사도 아니며 내밀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돌출시키는 행위자로 만족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역설적이게도 시인은 시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는데 역점을 둘 때 그의 존재가 돋보이는 예기치 않는 역경에 처해진다. 무한 확장하는 디지털의 세계는 시인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초현실세계를 눈앞에 구현해 보이고 생생한 인터넷의 위력은 세상의 구석구석을 파헤치고 실상을 전파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런 역경에서 시로서 자신의 삶을 절차탁마 切磋琢磨하려는 시인은 매우 드물다. 그런 까닭에 시류에 휩싸이지 않는 시와 시인은 혼탁한 어둠의 세계를 비추는 등불과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기준을 세워놓으면 시집 『작은 연인들』은 매우 독특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3.

 

현대인이 과거 시대의 사람들보다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너무 빨리 변화하는 외계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과 그 변화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변화로 야기되는 불안정한 삶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전방위적이서 이제는 더 이상 새로워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변화에 재빨리 대응하여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도태되어버릴 지 모른다는 강박감은 시인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새로운 주제, 소재의 발굴과 기법의 특이함은 창조를 행하는 타당한 조건들이지만 그 조건에 함몰되어 버릴 때에는 시를 쓰는 주체인 시인과 시를 써야하는 당위성은 어느새 휘발되어 버린다. 그래서 굳건한 세계관(세상을 판단하는 주관적 인식)으로 시작에 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작은 연인들』은 『칠장사 입구』,『서울로 간 나무꾼』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시인의 일관된 세계관을 확인하게 하고 전통서정과 현대 전위시의 아슬한 경계에 우뚝한 시인의 풍모를 바라볼 수 있는 즐거운 해후를 마련해 주고 있다. 정창범 평론가는 시집 『서울로 간 나무꾼』의 발문에서 순진함, 고지식함, 성실함을 시인 오만환의 타고난 성품이라고 지적하면서 ‘시 속에 이야기를 담고, 대상을 맵게 풍자하려는 시도를 실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에 대한 평가는 시인 오만환에게 매우 타당하고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종 일관된 세계관이 그의 타고난 순진함, 고지식함, 성실함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생거진천 生居鎭川 死後龍仁)의 풍광에 힘입은 바도 있을 것이다. 『작은 연인들』들 뿐만 아니라 이전의 시집들에서도 고향산천에 대한 그리움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았음은 쉽게 드러난다. 나호열이 『서울로 간 나무꾼』의 시편을 분석하면서 ‘그의 세계관은 노자의 무위자연 無爲自然 과 박樸(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순수 본질)에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공동체의 와해와 자연회귀」,1997)’고 한 점이나 ‘순결한 이미지를 기초로 한 사물시, 도시 서민의 일상적 삶, 그리고 조용하고 순박한 농촌현실 혹은 시골생활의 풍미를 노래한 시’( 조명제, 「흐르는 물의 높이와 깊이」, 1990)라고 그의 첫 번째 시집 『칠장사 입구』를 조명한 것이 그 예증이 된다. 반평생이 넘는 세월을 서울에 살면서도 그는 인공 人工을 혐오하고 자연을 경외하는 삶, 개인적 이기주의가 넘실대는 파편화된 고립이 아니라 두레에 연원을 둔 공동체의 복원을 희구하는 삶을 꿈꿔 왔다. 그 예증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①

빽빽한 칠부능선 방어(防禦)벽이 무너지고 있소 물과 식량이 급하오. 삼삼에 특공대를 보냈으니 지진(地震)이 나도 꼼짝 말고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라 사수하라- 영토(領土)분쟁에서 돌아갈 길을 잃은 병사들 누가 포로인지? 소설과 수필이 몸을 낮춰 강을 키운다. 철조망(鐵條網) 걷고 악수도 나누었는데 아직 비극(悲劇)이 남았는가? 통쾌함이든 아쉬움이든 손을 놓아야 맑게 보이는 삶의 들판. 고개를 끄덕이고 흐흐 허허. 지금 비가 내리고 돌 던질 곳을 찾고 있다.

 

         동에서 소리지르고 서쪽으로 쳐들어가기

         적의 급소가 내 급소

         약점을 노려 갈라치며

         두점 머리는 두드리고

         온갖 술수를 다부린다

         옆구리를 간질러도 보고

        산맥과 바다를 넘나들며

        온 세상 다 가지려

        좋은 시절 데이트도 못하고

        힘을 쏟는다.

        난세엔 방어가 최상의 공격

        반집 남아도 확실히 이기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그 욕심 때문에 듣지 못했다

        도요새의 맑은 노래를

        눈 감았다. 밭둑에서 손흔드는

        달맞이꽃 씁쓸한 시

 

   위의 시들은 다 같이 「바둑」이라는 동명의 시로서 ①은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이고 ②는 「서울로 간 나무꾼」에 실린 시이다. 두 편의 시 모두 바둑에 입문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바둑의 수를 알 수 없기에 어려운 광경이다. 그러나 가로 세로 19줄의 반상에서 ‘누가 많은 집을 가졌는가’ 로 승패를 가리는 바둑은 흔히 인간사의 축소판이라고도 하고 반상에 명멸하는 탐욕과 지략의 대결이라는 점은 상식으로 알 수가 있다. 시인도 바둑을 두면서 ‘옆구리를 간질러도 보고/ 산맥과 바다를 넘나들며/ 온 세상 다 가지려’는 삶의 방식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하고 ‘통쾌함이든 아쉬움이든 손을 놓아야 맑게 보이는 삶의 들판.’이라는 관조의 세계와 마주하기도 한다. ①의 시는 언뜻 우리 민족이 처해 있는 분단과 갈등을 바둑에 빗대어 놓은 듯도 하고 개인의 일상의 간난 艱難을 상징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중국(압록강, 두만강)과 백두산 여행에서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몇 편의 시로 미루어 보았을 때 ②에 비해 시의 외연이 확실히 넓어진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②가 개인의 욕망의 부질없음을 시화한 것에 비해 ①의 시가 보다 풍부한 다의성을 띄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와 같은 시의 외연 문제가 아니라 두 편의 시가 시간적 이격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도가적 사유가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집 남아도 확실히 이기는 것을./버리지 못하는 그 욕심 때문에 듣지 못했다/도요새의 맑은 노래를/눈 감았다. 밭둑에서 손 흔드는/달맞이꽃 씁쓸한 시’의 사유와 ‘통쾌함이든 아쉬움이든 손을 놓아야 맑게 보이는 삶의 들판. 고개를 끄덕이고 흐흐 허허. 지금 비가 내리고 돌 던질 곳을 찾고 있다.’는 욕심 버림의 토로가 단순한 말놀음이 아니라 시인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토로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기고 지는 냉엄한 바둑의 승부의 세계는 이 시대를 점령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삶, 제로섬 Zero Sum 게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경쟁을 통하여 더 많은 재화를 얻는 것이 행복이라는 허상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자신을 검증하고, 반성하며 자기갱신을 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은 쉬우나 회사후소繪事後素는 타고난 성품과 후천적 도야가 아니면 성취할 수 없는 경지이다. 이 글의 서두에 잠깐 언급했지만 시인 오만환의 폭넓은 교유와 원만한 인간관계는 결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만은 아니다. 시인도 인간인 이상 무조건적인 인간에 대한 신뢰와 무한정한 사랑을 품는 존재가 아니다. 시인 또한 타자로부터 상처와 불이익을 받고 괴로워하는 존재인 까닭에 그에게도 안식의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시 「야간 산행」은 그의 인간 됨됨이가 어떠한 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시가 아닌가 싶어 전문을 옮겨 본다.

 

        남들이 집으로 갈 때 반대로 간다

랜턴은 없어도 무방하다

두려운 것은

어둠이 아니라 사람이다

언제 부턴가

속으로 흘리는 땀

바람에 찔리며, 불끈 주먹을 쥔다

가슴에 낡은 집 부수며

깊은 산 낯선 소리 들으러

추운 날

혼자서 간다

 

범인 凡人들과는 달리 시인은 그에게 유,무형의 상처를 준 사람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받은대로 돌려주기' tit for tat의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시에 드러난 ‘가슴의 낡은 집’은 필시 삶에서 얻어지는 편견과 증오일 터이다. ‘깊은 산 낯 선 소리’는 때묻지 않은 자연의 소리, 원융의 세계의 잠언일 것이다. 시인은 야간산행을 통하여 끊임없이 인간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고 자아의 건강성을 회복하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경은 「작은 연인들」 연작중 금선사(金仙寺)의 부제가 붙은 시를 읽으면 ‘낯 선 소리’가 독경, 냇물소리, 바위 위에 살짝 얹힌 꽃송이로 구체화 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소리가 가득한 숲은 ‘늙지 않는 믿음의 숲/영원을 向하고/나는 간다/그 집에 간다/어쩌면, 아주 간다’(「작은 연인들」 - 금선사 마지막 연). 아! 생각해보니 아주 오래전 장마가 진 여름날 퇴근 무렵 금선사에 그와 함께 갈 기회가 있었다. 옆에는 세차게 계곡물이 넘쳐 흐르고 초보운전을 면하지 못한 나는 그 아슬한 좁은 길을 지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차를 돌렸던 기억이 있다. 시인은 그 때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는 그저 이렇게 말했을까? “길이 험하니 그냥 돌아가지요.” 그의 인품은 이런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상대방이 그 헤아려 준 마음을 무안해 하지 않게,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것.

 

4.

 

시인 오만환의 세계관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정의를 좆되 불의를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하죄우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경지, 그래서 그의 풍모는 외유내강으로 나타난다. 외유外柔와 내강內剛은 결코 하나로 뭉쳐진 개념이나 현상이 아니다. 말하자면 외유는 내강(스스로 유연해지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을 거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외유(자신이 강하지 않으면 타자를 포용할 수 없는 경지)는 단순한 유약함으로 수식될 수 없다. 이런 외유내강의 시심은 출가와 가출이, 철학적 용어로 이야기 한다면 양상론적 사유( 어떤 현상을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인식의 결과 달라진다)로 이행되어 자연스럽게 도가적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

 

경전을 읽어 주시던 山

피리를 불며 혼자 즐거웠다

출가와 가출

東과 西 ,남과 북

집이 보이지 않아도 돌아오는 길

어디 사느냐고 묻지 않는다

                                                                       - 시 「방죽에서」 2연

 

  도가적 관점에서 자연은 인간을 추구 芻狗로 여길 뿐이며, 무차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시인은 ‘장마’라는 자연현상을 우스꽝스런 우화의 형식을 빌어 인간사회의 무상함을 아래와 같이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산과 바다와 들, 배고파서 우는데

일은 안하고 살이 쪄서 탈

쌀, 시간, 돈, 사람

귀(貴)한 줄 모르고

놀러, 놀러, 놀러가, 놀러와!

빨리 안가도 되는데

도시 농촌 가리지 말고

날 세워 밤 새워 우루루 꽝!

강, 광! 꽝꽝, 꽝!

그래도 뒤는 보셨어야 했는데

마구잡이로 꽝! 꽝 !

기다려봐

 

- 시 「장마」 마지막 연

 

도가 道家들은 심산유곡에 찾아들어 인간사와 절연했다. 중국의 화산 華山에는 도가들이 절벽을 타고 넘어 수도에 전념하던 유적이 산재해 있다. 불교에서의 선 禪도 그러하겠지만 자연과 호흡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들은 광막한 독백으로 그들만의 경전을 채워나갔을 것이다. 언어도단, 언전言詮은 언어의 숙명인, 뜻에 얽매이는 그물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험여이履險如夷(험한 길을 아무렇지 않게 쉽게 간다)는 뛰어넘고 생략하는 지극한 경지이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나 시행과 시행 사이, 혹은 연과 연 사이의 발전관계 및 문법적 연결고리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라고 오만환의 몇몇 시를 평한 조명제의 언급에 동의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시적 발언을 거두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위의 든 예문시를 통해서도 이미지의 형성이나 문법적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필자는 도가적 사유를 언급하기는 하였으나 그 사유를 일으키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을 깨닫는다. 『도덕경』의 저자가 노자 老子이건 아니건 간에, 『장자 莊子』 의 저자가 장자이건 아니건 간에 노자나 장자가 『도덕경』,이나 『장자 莊子』 를 읽고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유를 하려면 그들이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사물이나 현상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세간과 절연한 상태에서 그들의 사유대상은 무엇이었을까? 자연과의 대화? 의식과의 대화?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1: 1의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언어는 문법도 논리도 필요하지 않은 직설 直說이 아니었을까? 『작은 연인들』에 수록된 이야기를 담은 시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시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청자 聽者를 향해 있다. 이 청자는 시를 읽는 독자가 아니라 시인 자신이다. 시인이 시인 자신에게, 의식을 가진 시인이 의식이 없는 꿈의 시인에게 내뱉는 직설에 이미지나 문법적 논리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 시인 오만환에 있어서 시의 정의가 무엇이며 그가 시를 써야만 했던 이유가 선연하게 드러난다. 그는 그가 삶에 회의를 느낄 때, 인간세계를 벗어나고 싶을 때, 그의 내강 內剛이 위태로울 때 스스로 던지는 위로의 말을 시로 빚었다. 그가 과작일 수밖에 없던 까닭도, 근래에 이르러 수없이 많은 국내외 여행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 맞닥뜨릴 때에도 그 여행의 풍광과 역사적 사실이 그의 삶에게 던져지는 질문에 다름 아니었고 그만의 대화법으로 자신에게 대답했을 것이다.

 

5.

 

시인 오만환은 스스로를 ‘서울로 간 나무꾼’이라고 불렀다. 나무꾼은 사냥꾼과 달리 뭇 생명들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생명이 다한 고목이나 가지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존재이다. 반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왔으되 그는 생가가 있는 고향에 틈틈이 내려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다.

 

옛날과 폭포를 찾아

바닷바람을 가득 담고서 갔다

청옥산과 두타산

화강암과

부서진 화강암이 부둥켜안고

가슴에 꽃과 새

노루도 키우고

물과 어울려 놀다가

별유유천지(別有天地)

 

 

넓지 않아도 누울 곳

앉을 데가 많아요

이름과 옷, 버리기가 어렵지요

가족이랑 오시지 그랬어요

신선(神仙)이 되려 말고

그냥 사람으로 사세요

그런가. 걱정을 다 받아주는

모래와 자갈

반석에 얹혀서

한나절 햇볕과 웃는다

 

- 시 「무릉계곡」 전문

 

위의 시는 강원도 동해 두타산의 풍경과 정취를 읊은 시이기도 하지만 그 풍경과 정취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충청북도 진천 회안리 고향의 그 것과 다르지 않다. 무릉도원은 이미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실체인 것이다. 그는 40년 넘게 도시생활에 몸을 담았지만 결코 그의 고향, 무릉의 세계를 잊어 본 적이 없다. 이제 시인 오만환은 30년 교편생활을 접고 그 고향에 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려고 보니 문득 누란의 한 세상을 살다간 도연명 陶淵明이 생각나고 그의 시 귀거래사가 생각난다. 높은 지위를 탐하지 않고 자신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도연명은 풍족하지 않았으나 고향에 돌아가 정신적 만족을 누리며 살았다.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부귀비오원 제향불가기)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 (회양진이고왕 혹식장이운)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등동고이서소 임청류이부시)

 

       부귀영화는 본시 내가 원한 것이 아니며

       신선으로 득도함 역시 내가 기대한 것이 아니지 않던가?

      아름다운 날에는 홀로 밖으로 나가 지팡이 옆에 두고 잡초 뽑고 밭을 메자

       동녘 물가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며 맑은 물 바라보며 시를 읊자

 

 

시인 오만환과 필자는 20대 초반에 만나 40년의 세월을 따로 또 같이 걸었다. 비슷한 시기에 어버이가 되고, 어느 날 바라보니 머리가 세고, 어느 날 바라보니 돋보기가 코에 얹혀져 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면서 반갑게 만나고 헤어진 세월이 40년이었다. 앞으로 10년 뒤 시인 오만환은 어떤 시를 들고 세상에 나올까? 그것이 또 다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