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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조계종 5대 총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0. 9. 01:25

 

불교 조계종 5대 총림

[중앙일보] 입력 2010.10.07 00:27 / 수정 2010.10.07 00:27

6·25 때 화재로 첫 총림 취소된 백양사, 막내 총림으로 돌아왔죠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양산 통도사, 예산 수덕사, 장성 백양사. 이들 5개 사찰의 공통점은 뭘까요? 다름 아닌 ‘총림(叢林)’입니다. 이들 사찰이 대한불교 조계종 5대 총림입니다. 아무 사찰이나 총림이 되는 건 아닙니다. 참선 수행을 하는 선원(禪院),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는 강원(講院), 부처의 계율을 익히는 율원(律院)을 모두 갖추어야 총림이 될 수 있습니다. 각 총림의 가풍은 어떻게 다를까요.

백성호 기자

 

해인사
가야산 산세 험한 곳에 깃들어 수행 가풍도 박력


5대 총림은 ‘5인 5색’이다. 절이라고 다 똑같은 절이 아니다. 사찰마다 깃든 산세가 다르다. 어떤 산은 웅장하고, 어떤 산은 날카롭고, 어떤 산은 푸근하다. 그래서 사찰의 생김새도 달라진다. 사찰의 생김새는 절이 깃든 산세와 궁합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게 또 그 사찰의 성격이자 기질이 된다. 그래서 총림의 산세와 총림의 가풍은 서로 무척 닮았다.



경남 합천의 해인사에 들어서는 길은 가파르다.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해탈문을 지나는 길은 오르막이다. 가파른 오르막에 계단이 계속 깔려 있다. 숨이 턱턱 찬다. 해인사의 산세는 그렇게 거칠다. 해인사 스님들은 “가야산의 산세가 ‘행주(行舟)’ 형국이다”라고 말한다. 거친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배의 모양새란 뜻이다.

그래서일까. 해인사 스님들의 수행 가풍도 괄괄하다. 아무리 차분한 스님도 해인사 일주문만 들어서면 괄괄해진다. 그게 또한 해인사의 선풍(禪風)이기도 하다. 종정도 많이 배출했다. 성철 스님(6, 7대 종정)과 혜암 스님(10대 종정), 법전 스님(11대 현 종정)이 모두 해인사 출신이다. 스님들은 해인사의 가풍을 한마디로 ‘용맹정진’이라고 말한다. 하안거와 동안거 때 출가자와 재가자가 1주일씩 잠을 자지 않고 수행을 하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 때부터 내려오는 가풍이다. 용맹정진 중에는 좌선도 하고 포행(걸으면서 하는 수행)도 한다. 그런데 쏟아지는 잠에 취해서 포행을 하다가 기둥을 들이받는 스님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욱!” 하고 입술을 깨물며 화두를 드는 가풍이 해인사에는 흐른다. 심지어 해인사의 해우소에 있는 소변기 앞에는 進一步(진일보)라고 적혀 있다.

해인사는 염불에도 박력이 넘친다. 그래서 흔히 판소리의 동편제에 비유한다. “해인사 염불이 동편제라면, 송광사 염불은 서편제”라는 식이다.

송광사
잔잔함 속에 흐르는 엄격함, 스님 사관학교


전남 순천의 송광사는 무척 아름답다. 특히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과 울긋불긋한 단청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송광사가 깃든 산의 이름이 ‘조계산(曹溪山)’이다. 중국의 육조 혜능 대사는 광저우(廣州)의 남화선사에 주석했다. 남화선사가 안긴 산의 이름도 ‘조계산’이다. 그곳에는 ‘조계(曹溪)’라는 이름의 개울도 있었다. 조계종의 ‘조계’라는 종단명도 여기서 따왔다. 초조 달마 대사부터 육조 혜능 대사까지 내려오는 선종(禪宗)의 법맥을 잇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송광사의 좌우에는 산줄기가 흐른다. 좌측의 산줄기는 기운이 넘친다. 그게 ‘좌청룡’을 뜻한다. 좌청룡은 수행의 기운과 직결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송광사에는 올곧은 수행 가풍이 이어져 내려온다. 조계종 스님들이 상좌를 받으면 절집 교육을 위해 주로 송광사로 보낸다. 그래서 송광사는 ‘스님 사관학교’로 불린다.

반면 송광사의 우측 산줄기는 흐름이 끊어져 있다. 그게 ‘우백호’다. 우백호는 재물과 관련된다. 그래서 송광사는 재물의 기운이 약하다고 한다. 그런 산세 때문일까. 송광사의 살림은 늘 가난하다. 지역적으로 영남은 불교세가 강하고, 호남은 기독교세가 강하다. 그런 영향도 적지 않아 보인다. 송광사 스님들은 “절집 살림이 가난한 게 오히려 수행에는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송광사의 수행 가풍은 철저한 엄격함이다.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가풍은 없다. 대신 일상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잔잔한 엄격함이 있다. 조용하고 잔잔한 가운데 소름이 ‘쫙쫙’ 돋는 수행의 날선 칼이 송광사에는 있다. 그래서 송광사의 선풍을 ‘선검일여(禪劍一如)’라고도 한다.

통도사
동서남북 이름 다른 주법당, 불단 위에 불상 없어


경남 양산의 통도사는 무척 크다. “통도사에서 팥죽을 끓였는데, 얼마나 솥이 큰지 저을 수가 없더라. 그래서 할 수 없이 배를 띄워서 저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절집에 내려올 정도다. 통도사의 진입로는 1.5㎞에 달한다. 양 옆에 늘어선 노송(老松)이 품어내는 솔내의 운치가 그만이다. 마치 ’소나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다.

통도사의 매력은 주 법당이다. 주 법당의 이름은 무려 넷이다.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바꿀 때마다 이름이 달라진다.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네 개의 현판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보면 ‘적멸보궁’이다. 그런데 남쪽에서 보면 ‘금강계단’이다. 동쪽으로 가면 ‘대웅전’이 되고, 서쪽에서 볼 때는 ‘대방광전’이 된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대체 이 법당에는 어떤 부처님을 모신 걸까.

정작 법당 안에 들어서면 불상이 없다. 불단 위는 그냥 텅 비어 있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그 텅 빈 공간을 향해 끊임없이 기도를 하고, 절을 한다. 이유가 있다. 대웅전 뒤뜰에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통도사에는 법당의 빈 불단이 빚어내는 묘한 담백함이 있다.

통도사 스님은 “법계에 앞이 어디 있고, 뒤가 어디 있겠는가. 둥근 원처럼 어딜 봐도 정면이다. 앞뒤를 나누는 순간, 치우침이 생긴다”고 말한다. 통도사의 선풍은 그렇게 담백하고 자애롭다.

수덕사
덕숭산처럼 겉으로는 온화, 안으로는 실한 수행


충남 예산의 수덕사는 ‘덕(德)’이 넘친다. 수덕사를 안고 있는 산 이름이 ‘덕숭(德崇)’, 수덕사가 위치한 동네 이름은 ‘덕산(德山)’, 절 이름은 ‘수덕(修德)’이다. 그렇게 ‘3덕(三德)’이 모여 있다. 그래서 수덕사를 ‘덕숭총림(德崇叢林)’이라고 부른다.

덕숭산에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다름 아닌 ‘소(小)금강산’이다. 수덕사의 선풍도 산을 빼닮았다. 덕숭산의 겉만 보면 아담하고 온화하다. 그런데 땅을 1m만 파도 거친 바위가 나온다. 알록달록한 꽃나무와 녹음이 우거진 덕숭산의 피부를 살짝 들춰보면 무쇠 같은 바위가 버티고 있다.

수덕사의 선방도 그렇다. 안거 때 참선 시간은 하루 8시간이다. 며칠씩 뜬눈으로 버티는 용맹정진도 없고, 지르고 외치는 괄괄함도 없다. 선방은 그렇게 유연하게 열려 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수덕사에선 ‘강요 없는 정진, 우러나는 정진’이 이뤄진다. 선방 청규는 밤 9시 취침, 새벽 3시 기상이다. 그런데 새벽 1시면 수좌들이 다들 일어나 참선을 하고 있다. 그게 수덕사의 ‘허허’ 속에 숨겨진 ‘실실’이다. 덕숭산의 산세처럼 말이다.

수덕사에는 경허·수월·만공 선사로 내려오는 법맥도 두텁다. 오랫동안 끊어졌던 조선의 선맥을 경허 선사가 되살려 놓았다. 또 ‘참선과 농사일이 둘이 아니다’라는 선농일치(禪農一致) 가풍도 뚜렷하다.

백양사
백암산·백학봉·백양사 ‘3백’이 신록 누르듯 강한 기질


전남 장성의 백양사는 첫 총림이자 마지막 총림이다. 무슨 말일까. 1947년 백양사는 국내 최초로 총림이 됐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절집은 잿더미가 됐다. 결국 총림은 취소됐다. 그래서 96년에 다시 총림이 됐다. 총림의 맏이이자 총림의 막내가 된 셈이다.

‘봄 백양, 가을 내장’이란 말이 있다. 봄에는 백양사의 신록, 가을에는 내장사의 단풍이 최고란 뜻이다. 그만큼 봄날 백양사로 들어서는 길목은 절경이다. 갈참나무와 단풍나무, 비자나무가 빚어내는 거대한 신록의 파도에 입이 쩍 벌어진다.

백양사가 깃든 산의 이름은 ‘백암산(白岩山)’이다. 그 산의 대표적인 봉우리가 ‘백학봉(白鶴峰)’이다. 그 아래 절 이름이 ‘백양사(白羊寺)’다. 그렇게 ‘3백(三白)’이 모여 있다. 그래서 하늘을 덮는 신록의 물결도 백양사의 고고함을 누르진 못한다. 오히려 그 푸름을 배경으로 백양사는 더욱 돋보인다.

백양사에는 서옹 스님의 임제가풍이 흐른다. 일본 임제종의 총본산인 교토 묘심사에서 3년간 공부하기도 했던 서옹 스님은 생전에 임제록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강조했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공이 돼라. 서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란 뜻이다. 한때는 조선팔도에 ‘남 운문, 북 마하연’이란 말이 돌았다. 백양사의 운문선원과 금강산의 마하연 선방을 최고로 꼽았다는 얘기다.

삼백(三白)이 푸름을 누르듯이 백양사 스님들의 기질도 강하다. 백양사 스님은 “산(절)에 들어오면 융화가 안 되고, 산 밖에 나가면 열 사람 몫을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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