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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내려가는시냇물(산문)

시인에게 쓰는 편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1. 30. 00:13

시인에게 쓰는 편지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꿈이 없는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으되 인간으로 살아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본능에 의해 움직여지는 삶은 의식이 없는 까닭에 생리적 현상에 얽매여 있는 것이지요.반면에 꿈이 있다는 것은 현재의 불완전성과 결핍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완성과 충족을 향한 의지와 열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끊임없는 자각이 현상을 넘어선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시인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꿈꾸는 사람'으로 부른다면 어떨까요? 오늘을 살면서도 어제를 반추하고 미래를 탐색하는 사람 말이지요. 부자가 되는 꿈, 명예와 지위를 얻는 꿈, 오래 살기를 열망하는 꿈을 넘어서 존재의 의미를 묻고, 인간다움을 탐색하면서 세상의 부조리를 넘어서 아름다운 세계가 도래할 것을 믿는 그런 꿈을 갖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인이라는 직업 하나로 생활을 영위했던 사람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 교사, 공무원, 학자, 회사원 등등 그 뒤에 붙어다는 수식어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시인의 눈은 맑고 깨끗하여 이 세상의 모든 티끌이 꽃송이처럼 보여져야 할텐데 분노와 독기로 가득찬 눈으로는 노래를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과 오만이 가득차 버린 눈으로 이 세상의 어여쁨을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시인은 방랑과 무소유의 만행을 거듭해야 하는 숙명을 기쁘게 걸머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수많은 직함 뒤에 시인이라는 명예를 덧붙이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공과 성취 뒤에 오는 여유라 할까요, 여적이라고 할까요, 그들은 겉으로는 겸양을 갖춘 듯 하나 속으로는 의기양양한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부른 다음에 오는 포만감 같은 것, 그런 포만감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참 아름다운 풍경도 많고 저절로 콧노래도 흥얼거리게 되겠지요.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시인으로 입신양명하려는 의지 하나로 힘 있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자기 자리를 차지해보려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래서 이 땅에는 수많은 문학잡지가 득실거리고 성 城 하나씩 만들어놓고 끼리끼리 성주城主가 되어 브루조아를 모집하는 일도 비일비재하지요. 수많은 문학상, 수많은 감투가 문학의 소도 蘇塗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아무렇지 않게 흙먼지를 일으키는 일들이 마당놀이처럼 흥청거립니다.

 

 아니,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숙성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명주 名酒처럼 자신의 독백과 한탄이 노래로 농익을 때를 기다리는 은둔자와 같은 시인들이 더 많지요. 그들은 세음 世音에 귀 세우지 않으며 세설 世說에 꿈적하지 않고 돌부처처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시가 노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바람이 자신의 노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 낯 선 곳 낯선 사람들의 가슴에 내려앉는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인 것입니다. 외롭고 쓸쓸한 시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워지지는 않습니까?

 

 바람 부는 먹먹한 겨울밤에 당신은 또 책상머리에 앉아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지요? 선인 先人들의 쓸쓸하고 무모한 공적비, 불망비를 생각하면서 시비 詩碑를 어디에 세울까 하고 공상에 빠진 것은 아니신지요?

 

 당신이 시인이라면 걸어다니는 시비 詩碑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읽고 당신을 지나칠 때 이 세상의 시비 是非가 분명해지는 일 말이지요..

 

어쩌면 이미 당신은 내 앞에 서 있는 시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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