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세상으로 내려가는시냇물(산문)

고백과 감동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2. 14. 01:07

고백과 감동/나호열

 

 

  음지에 나는 익숙하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나 씩씩하게 늙어가고 있는 형제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 삶도 누구만큼 눈물 비치게 할 만한 사연은 있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며 시를 써본 적은 없지만, 생태니 환경이니 내 몸 바치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적당히 목소리 드높일 줄 도 알지만 어째든 이미 남이 자리 차지한 곳을 기웃거릴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음지에 있다. 이 세상의 음지는 치사하고 더럽지만 치사하고 더럽기 때문에 벗어나고픈, 탈출하고 싶은 강열한 욕구를 느끼기도 한다.

 

 

  뭔 초장부터 심드렁하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내가 왜 시를 써야 하고 앞으로도 시를 계속 쓰려고 하느냐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준비하기 위한 맛보기라고 해두자. 잘 쓰지도 못하고, 그래서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주절주절 누에고치를 뻬듯, 힘없는 국수가락을 뎅겅뎅겅 잘라내는 것은 잘 쓰지도 못하고, 남이 알아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 편을 쓰더라도 명작을 뽑아내면 그 포만감으로 며칠, 몇 달, 몇 년은 게으르게 늘어질 것 이다. 단 한 편의 시리도 텔레비전에 나오고 방송 전파를 탄다면 창조의 고통 운운하면서 힘겨운 창작의 포즈를 한껏 보여줄 것이다. 그 때까지만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시를 버리고 싶다.

 

 

  글이란, 문자로 행해지는 표현이란 어차피 남에게 보여지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몰래 혼자서 자위하듯 글을 읽을 때 그 때의 나는 글 쓰는 나와는 별개의 나이다. 글 쓰는 나는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고해성사를 하듯이 백지에 대고 머리를 찧어대는 것이다.고해를 하는데 타자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고해는 통렬해야 하고 뼈를 부숴 버리는 아픔이 따라와야 한다. 고해는 그래서 자기를 비움으로서 얻어지는 위무이며 글쓰기는 위악적인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지난 주 토요일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두 군데 문학판 송년회에 다녀왔다. 한 군데는 쓸쓸했고 또 한군데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80년대 초만 해도 세종문화회관 1층 연회장 하나면 내로라하는 이 땅의 시인, 작가들을 다 채울 수 있었다. 그들은 외롭고, 힘든 문학의 길을 걸어가며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며 따스한 눈길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저기 이 파로 갈리고 저 파로 나뉘어 판들을 만들고 있다. 힘 있고 영향력있는 문학판에는 문전성시를 이루는 반면에 힘 없고 그저 그런 글들을 쓰는 사람들은 그림자처럼 흔들거린다. 누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 했던가! 누가 인간을 권력에의 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했던가! 도토리 키재기를 하거나 열심히 자신의 성과와 득도에 대해 침을 튀기는 것은 이 판이나 저 판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같이 모여 있으나 속셈이 다르므로 외롭고 어쩔 수 없는 단독자의 형상을 벗어날 수 없다. 한 공간에 갇혀 있으나 '따로 또 같이'의 슬픔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유명시인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시를 쓸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구질구질한 자신의 삶, 내력을 하소연하거나 음풍농월하는 글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말씀이 되겠다. 그렇다! 쓰여진 글은 보여지는 숙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혼자만의 중얼거림을 시라고 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어줍잖은 계몽정신으로 독자를 훈도하겠다는 생각도 작금의 지식사회에서는 씨도 악 먹히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 자신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감동을 로또처럼 안겨줄 수 있을까?

 

  나는 이 밤도 곰곰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참 이쁘기도 하고 가엽기도 한 나를 보듬을까..버릴까 망설이고 있다. 마침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린다.

 

 

  사랑이란 물거품같은것 죄송해요 그냥 흘러가는 바람이라고... 난 ...됐어 됐어요..술 안 마시는 분이나 술 마시는 나나....나 사랑 거부할래요. 정중히...

 

 

  시가 내게 하는 말이다.

 

 

 

'세상으로 내려가는시냇물(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헌신과 봉사의 진실한 고백   (0) 2011.10.29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  (0) 2010.12.28
시인에게 쓰는 편지   (0) 2010.11.30
아름다운 이별  (0) 2009.12.28
가족에 대하여. 2  (0) 2009.05.10